제주4.3, 남겨진 가족들에게 가해진 '연좌제'...."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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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남겨진 가족들에게 가해진 '연좌제'...."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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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스물두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4.3재심과 연좌제'
"원망하며 방황도 했는데...무죄판결 내려진던날 목이 메었어요"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아버지를 원망하며 방황도 많이 했는데, 아버지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지던 날, 목이 너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 보고 제사 때 판결문을 낭독하라 했습니다."

31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열린 '4·3, 재심과 연좌제-창창한 꿈마저 빼앗겨수다'를 주제로 제주4·3 제75주년 기념 스물두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에서는 4.3으로 인한 '연좌제'에 대한 유족들의 사연을 가슴을 울렸다.

4・3으로 인한 연좌제는 살아남은 유족들에겐 또 한 번의 길고 긴 트라우마와 창창한 미래마저 앗아간 사슬이었다. 연좌제는 가족들만 아니라 먼 친족들까지 고리를 뻗친 것이 되어 섬을 떠난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고, 이를 피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픔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냈다.

이날 본풀이 마당에서는 연좌제 피해와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유족 5인이 나서 자신들의 아픈 경험을 풀어놓았다.

먼저 연좌제로 처음의 꿈을 접고 삶의 방향을 바꾼 양성홍(남·1947년생)씨가 아버지의 재심을 통해 마침내 명예회복을 이룬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1949년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 양두량씨(당시 27세)의 아들이다. 아버지 양두량은 경찰의 추적을 도피생활을 했다. 어머니 김열은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집까지 기어올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1949년 4월 경찰에 잡힌 아버지는 주정공장에 수용되었다. 어머니는 3살된 아들(양성홍)을 데리고 계속해서 면회를 갔다. 아버지에게 아들을 보여주려는 마음이었다. 그 후 아버지는 불법 군사재파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행방불명되어, 생사를 알 길이 없었다.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에서 증언하고 있는 양성홍씨. ⓒ헤드라인제주

4.3으로 인한 연좌제로 설움을 겪은 양성홍씨는 "한 때 아버지를 원망하며 방황도 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동네 형이 딱 말해주는 거에요. 같이 학교로 걸어가는데 연좌제라는 거를 얘기하더라고. 나는 모르니까 연좌제가 뭡니까 하니까 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육지 형무소 끌려가서 거기서 희생당했대요. 그래서 너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공무원이든 은행이든."

실제 연좌제는 현실로 다가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한지 6개월쯤 될 무렵이었다고 했다. 그는 "선관위 과장이 신원 조회에 내가 뭐 나왔다고 너 그만둬야겠다고 하는 거야. 그때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많이 했지..."라고 회고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던 지난해 8월30일, 4.3직권재심으로 아버지는 마침내 '무죄'를 선고 받았다. 70여년만에 명예회복을 이룬 것이다.

아버지가 무죄판결을 받던 날, 그는 치미는 감정에 차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형무소로 끌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고통을 겪은 아버지를 생각하니 너무 목이 메어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아버지 무죄 받고 발언기회 얻었을 때 말을 잘 못하연. 목이 너무 메어가지고. 그래도 아버지 무죄 판결 받은 판결문 지난 아버지 제사 때 우리 아이들한테 낭독하라 했지. 판사님도 좋은 분으로 만나서 이렇게 아버지 무죄도 받고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몰라."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에서 연좌제로 겪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 ⓒ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에서 연좌제로 겪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강상옥씨. ⓒ헤드라인제주

강상옥(남·1949년생)씨는 '연좌제'의 고통을 이야기했다. 한때 관공서를 피해 다녀야 했고, 경찰만 보이면 돌아서 가야 했던 아버지의 삶을 토로했다. 오희숙(여·1937년생), 계숙(여·1944년생), 오기숙(여·1946년생) 세 자매는 아버지로 인해 사위들의 앞날까지 연좌제 피해를 당해야 했다고 한다. 

그는 1949년 6월 주정공장에서 태어났다. 한라산으로 피신했던 아버지 강학반(당시 24세)이 만삭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귀순한 뒤 주정공장에 수용됐기 때문이다. 얼마 뒤 아버지는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마포형무소는 북한군에 의해 문이 열렸다. 아버지는 북한군에게 끌려다니다 지리산까지 들어가게 됐다. 지리산에서 1년 정도를 지낸 뒤 전라남도 담양경찰서로 귀순했다. 담양에서 잠시 생활하다 육군으로 입대했고, 1960년대에 제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다 세상을 떠났다.

강상욱씨는 30세 되던 때 취업을 하려다 신원조회에 걸려 탈락했다고 한다. 이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정을 제대로 알게 됐다. 
 
"경찰로 근무하던 동창에게 연락해서, 이만저만 하니 좀 알아봐달라고 했거든. 그러고 얼마 뒤에 그 친구에게 연락이 온거라. ‘너네 아버지가 반공법으로 무기형을 받았고, 형무소에서 옥사한 걸로 되어있다.’ 하는거야."

"그런데 이게 나만 문제가 있는게 아니구나. 동생들이나 자녀들도 문제가 있겠다 싶은거라. 그래 친구한테 말을 한거라. 이거 어떻게 헐 방법이 없겠냐. 그러니 친구가, 그럼 돈을 좀 마련해서 가져와라. 윗분들 밥도 먹이고 술도 먹이고 하면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하는거라. 그래 돈을 마련핸 건네줬지."

경찰로 근무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아버지 기록에 문제가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경찰의 의견서를 첨부하면서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 강학반은 2021년 3월 16일 4·3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제사 정말로 신원조회니 뭐니 하는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거라."라며 지나 온 세월을 돌아보며 탄식했다.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 스물두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에서 연좌제 피해 사례를 설명하고 있는 오희숙씨, 오계숙씨, 오기숙씨. ⓒ헤드라인제주

이날 오희숙(여·1937년생), 오계숙(여·1944년생), 오기숙(여·1946년생) 세 자매도 아버지로 인해 사위들의 앞날까지 연좌제 피해를 당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전했다.

한편, 생생한 증언을 통해 4·3의 고통과 진실을 전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해마다 열고 있는 4·3증언본풀이 마당은 4·3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들에게는 4·3이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역사임을 전하는 한편 유족들에게는 공감을 통한 치유의 마당이기도 하다.

제주4·3연구소(소장 허영선)가 주최한 이날 본풀이 마당에서는 시인 김성주씨의 시낭송과 민중가수 최상돈의 노래공연이 펼쳐진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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