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피성' 중심 판단하며 관대한 결정...법적다툼 여지 커
불가결정 번복, 시민 배제, 인.허가 사전모의 의혹 짚고 넘어가야
도시 숲 한 가운데 대단위 아파트를 건설하는 제주 오등봉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에 대한 첫 법적 판단이 나왔다. 결론은 모두 위법성은 없다는 것이다.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취임 직후 감사원에 청구했던 공익감사도, 도민 공익소송단이 제주시장을 상대로 법원에 제기한 행정소송도 기각됐다.
이 개발사업의 공동시행자인 제주시 당국 입장에서는 사업 추진의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이미 사업부지 내 토지 강제수용 절차에 돌입한데다, 조만간 속도감 있게 밑어붙일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반면 이번 법적 판단을 계기로 해 지난 2년 여간 이어져 온 파장이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위법성 논란에 대한 판단 결과는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고,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사업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행정 과오에 대한 책임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법적 다툼의 여지는 기각 결정의 사유가 대부분 행정행위의 '불가피성'을 중심으로 접근하며 판단을 내리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특히 법원의 판결은 그렇다 하더라도, 공익감사 청구에 대한 감사원의 검토 결과는 매우 의아스럽다.
이 공익감사 청구는 민선 8기 제주도정 출범 직후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오등봉공원 관련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이뤄졌다. 오등봉공원 민간특례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난 2016년 최초 '불수용' 결정을 내렸다가 이후 재추진 결정을 한 이유가 적정한지 여부를 비롯해 △민간특례사업 추진 시 비공개 검토 지시 적정성 △민간특례사업 지침 변경 사유 적정성 △민간특례사업 수익률 8.91% 적절성 △제안심사위원회 구성 및 평가 적정성 △사업자 선정 및 협약체결 과정의 의혹 등 10가지 사항에 대해 감사해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10개 사유 모두 기각...단 '1'도 인정 안돼
그러나 감사원은 공익감사 청구 자체를 기각했다. 현재까지 제기된 내용만을 놓고는 위법.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본 감사를 수행한 것도 아니고, 감사 청구를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검토한 단계임에도 감사원은 '위법성 없음' '부당하다고 볼 수 없음' 등의 확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제기된 10개 사항 중 단 1개도 '감사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모두 감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시종 행정행위의 '불가피성'을 들고 있다.
이 민간특례사업은 제주시와 민간 건설업체인 호반건설 컨소시엄이 공동사업시행자로, 2025년까지 사업비 약 8100억 원을 투자해서 전체 공원면적 중 70% 이상은 공원 시설을 조성해 제주시에 기부채납 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비공원지역으로 지정해서 1400여 세대 규모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그간 추진 경위를 보면, 호반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지난 2020년 1월 말이다. 그해 6월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 공람을 거쳐, 9월에는 제주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받았고, 그해 12월 18일 제주시와 민간사업자간 민간특례사업 협약서가 체결됐다.
이어 지난해 1월 공원조성계획 결정.고시가 이뤄졌고, 그해 3월에는 재해.교통.환경영향평가 심의를 통과했다. 제주도의회가 6월 임시회에서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을 통과시키자 제주시는 7월28일자로 실시계획을 인가.고시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실시계획 인가까지 소요된 기간은 1년 6개월 남짓했고, 협약서가 체결된 후에는 불과 7개월만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는 여타 개발사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이고 거침없는 속도전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사업이 결정되는 과정도 의문이었고, 인허가 절차가 '묻지마식' 통과가 이뤄진 정황이 그대로 드러났음에도 감사원 조차도 이에 대해 전혀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불가' 결정의 번복만 해도 그렇다. 제주도정과 제주시는 최초 민간특례사업 제안 당시에는 내부 검토를 통해 오등봉공원의 경우 난개발 우려 등의 문제로 민간특례사업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다며 사업 불가 결정을 내렸다.
제주시가 2016년 9월 기안한 행정문서 '오등봉근린공원 민간조성특례사업 사전검토 요청 관련 검토결과'에는 분명하게 '불수용'이라고 적시돼 있다. 이곳에 민간특례사업이 추진되면 공원의 본질적 기능이 상실될 뿐만 아니라, 대규모 주택 및 상업지역을 개발할 경우 전체적인 경관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대규모 교통량 유발에 따른 교통혼잡 가중, 지역주민 반대 등을 불수용의 핵심 사유로 제시했다.
하지만 2017년 7월, 당시 도지사는 이 민간특례사업 추진계획을 다시 보고받은 후 비공개로 검토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고, 2019년 9월 사업을 확정해 강행 모드로 전환했다. 행정 스스로 내린 '불가' 결정을 그대로 뒤집은 것이다.
아파트 개발규모는 최초 제안서 검토 당시보다 갑절 가까이 확장됐음에도, "난개발은 아니다"는 엉뚱 논리를 펴며 사업을 밀어붙였고, 지난해 환경단체에서 공개하기 전까지는 종전 '불가' 결정이 이뤄졌던 사실도 철저히 숨겼다. 이는 위법성 여부를 떠나 행정의 일관성과 신뢰성 문제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시민들을 기만하고 속인 것이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재정투입으로 공원시설 일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재정투입만으로는 현실적으로 공원시설 매입이 어려워 정책적으로 민간특례사업을 재추진한 것만으로 업무처리가 위법.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공익감사 청구를 기각했다.
2018년 8월 수립된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종합대책'에 따라 5757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장기미집행 공원시설 보상을 할 계획이었으나, 이후 보상비가 8912억원으로 증가했고 열악한 재정여건으로 불가피하게 오등봉공원에서 민간특례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는 것이다.
철저히 행정 중심의 시각이자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 정책 결정과정에서 시민이 빠져 있는 부분이나, 합리적 소통 과정없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번복한 부분에 대한 지적도 전혀 없다.
민간특례사업 추진 시 비공개 검토 지시가 적정했는지에 대해서도, "공개될 경우 지가 상승, 투기 우려 및 주민 혼란 발생 등을 우려해..."라며 도정의 입장만 두둔하고 있다.
도시 숲은 시민들의 일상 및 환경권과 밀접한 관련이 돼 있음에도, 감사원은 이의 정책결정과정에 공론 필요성을 철저히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정책 결정은 오직 행정기관에 주어진 권리인양 해석하는 듯 하다.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감사원의 판단은 "문제 없음"으로 귀결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결여된 부분이나 행정의 신뢰성.일관성 상실 등의 행정 과오에 대해서는 한 없이 관대한 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모든 행정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매우 아쉽고 실망스럽다.
감사원의 이러한 판단은 비단 이번 민간특례사업에 한정하지 않고, 앞으로 추진되는 각종 개발사업에 있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갖게 한다.
◇ 법원 절차적 위법성 소송도 기각...환경영향평가협의회 '주민대표' 판단은?
절차적 위법성 문제에 대한 법원의 판결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토지주 및 사업 예정지 인근 지역주민, 시민 등 284명이 공익소송단을 꾸려 제기한 '오등봉공원 도시계획시설사업 실시계획인가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법원은 실시계획 인가 처분이 적법하다며 사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단은 재판 과정에서 △민간특례 기준 미충족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불이행 △환경영향평가서에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미반영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미비한 상태에서의 사업승인 △환경영향평가 전문기관에 대한 검토 의뢰 미이행 등 절차적 위법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소송 막바지에는 이 사업 관련 환경영향평가협의회에 주민대표가 빠진 부분이 쟁점화되기도 했다. 환경영향평가법에서는 환경영향평가협의회에 '주민 대표'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이번 민간특례사업과 관련한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운영에서는 주민 대표 참여가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피고인 제주시측은 최초 "주민대표가 없어도 문제가 없다"는 반박하다가, 이후 환경영향평가위원장이 '주민대표'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면서 논란을 샀다. 이는 명백한 절차위반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시계획을 무효화시킬 만큼 위법성은 없다고 본 것이다. 아직 정확한 판결취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이 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크다.
환경영향평가위원장을 '주민 대표'로 제시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억지 중의 억지다. 그럼에도 법원이 이를 인정한다면, 앞으로 각종 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과정에서 이러한 편법이 계속해서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다. 주민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환경영향평가법의 취지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공익감사과 공익소송이 잇따라 기각 결정됐지만, 법적 다툼의 여지는 여전히 크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제주도정과 제주시 당국이 기각 결정을 명분으로 사업 강행 모드로 전환하면서 매우 우려스럽다.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행정의 과오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남아 있다.
◇ 의견수렴 절차도 없고, 행정 절차는 '짜고치는 각본'?
이번 공익감사와 공익소송의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행정 절차상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코로나19 시국에 속전속결 추진하면서 최소한 시민의견 수렴절차도 없었다. 시민들과의 소통은 커녕, '불통행정'의 극치를 보여줬다.
행정당국과 민간사업자가 한 통속으로 작당해 인.허가 절차를 밟아온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2020년 3월 열렸던 제주도 관련회의 결과 문서를 보면, 당시 도시공원 개발사업 부서뿐만 아니라, 환경영향평가 관련 부서 관계관, 심지어 건설업자까지 회의에 참여토록 한 후 환경영향평가에서부터 도시계획위원회 등의 인.허가 절차는 단 1회에 통과시키거나 약식으로 밟는 것으로 사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 농단'이 아닐 수 없다.
도시계획위원회는 물론 환경영향평가 심의가 도정의 직접적 개입 하에 한낱 요식적 절차의 '통과 의례'로 진행됐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도의회 상임위원회 심의도 단 1회로 통과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짜고치는 각본'이었다는 말이다.
비록 공익감사와 공익소송에서 위법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하더라도, 엄격하게 이뤄져야 할 '인.허가 절차'를 스스로 무력화시키며 행정의 일관성과 원칙, 신뢰성을 저버린 일련의 행태에 대한 문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제주도가 추가적으로 의혹 규명을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 진정이라면, 공익감사 청구 사유로 제시된 쟁점을 다시 포함하는 것은 물론, 관계부서의 '인.허가 절차 사전 모의' 부분도 감사위원회에 의뢰해 조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공익감사 청구 이후 제기된 사항만 갖고 하겠다는 것은 적당히 하는 척 하고 매듭짓겠다는 것에 다름 없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