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적이며 다수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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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적이며 다수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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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창대 / 제주녹색당 운영위원 

10월 29일에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 소식을 들으며 큰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한 편으로 이번 참사 현장에 장애인이 있었다면 어떠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 서울이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그룹에 들었다고 경제 10위 대국이라고 말들이 많지 않았던가? 그런 나라의 최고 도시라고 하는 서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까?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 처음에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외국에서 발생한 참사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발생한 참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필자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4.16 참사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이러한 느낌이었다고 기억된다. 4.16 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러한 큰 인명피해의 참사가 발생한단 말인가? 우리 사회는 4.16 참사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었을까? 참으로 슬프고 답답한 일이다.

더욱 필자를 답답하게 한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10.29 참사 현장에 장애인이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상이므로 어떻게 되었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그 장애인은 비장애인들 보다는 더 큰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이번 참사에서 여성들의 피해가 더욱 크지 않았던가? 우리는 알고 있다. 참사 현장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장애인, 여성, 어린이, 노인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이들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쪽으로 설계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참사를 방지하고 참사가 일어났을 때 피해를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개인적 경험을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다. 필자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몇 년 전 서울 지하철을 안내자와 함께 이용해 본 적이 있다. 지하철을 이용한 시간이 퇴근 시간이어서 그야말로 지옥철이었다. 그런 상태의 지하철에서 목적지로 이동하다 계단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큰 사고는 없었지만 필자는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위험을 느꼈다. 10.29 참사 소식을 들으며 서울 지하철에서의 경험이 떠오르며 그때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시스템이 약자의 안전부터 보호하려 한다면 10.29 참사 같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효율을 중시한다. 어떤 일을 할 때 적은 비용과 짧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효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경우에는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이 사용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너무 편향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이 우리 사회에는 소수적인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큰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이러한 질문이 필요한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너무나 큰 희생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커지는 빈부격차, 많은 부분에서 나타나는 사회 갈등,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은 결국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소수적이고 비정상적인 것들로 생각되는 부분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있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폭력성이 줄어들 것이다. <김창대 / 제주녹색당 운영위원>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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