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정답만을 종용하는 프레임에 딴지 거는 시간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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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정답만을 종용하는 프레임에 딴지 거는 시간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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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뭐가 제일 좋아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곤 했다.

딱 한 가지를 짚어내어 말해야 하는데, 좋은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것의 우위를 결정할 결정적인 기준이 없었고, 기준이 딱히 없었기에 좋은 것은 그저 좋은 것이다 보니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세상에, 좋은 것에도 우열을 가려야 한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것은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수학은 경이로웠고 과학계열은 즐거웠으나 화학은 지겨웠다. 문학을 사랑했으나 영어 교과는 재미없었고 한국사는 지루했으나 세계사는 호기심을 자극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문과 갈래, 이과 갈래 하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수학도 음악도 시도, 도구만 다를 뿐 상징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것인데 나눠서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가 싶어 그런 것들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웃음만 나는 귀여운 에피소드 같지만-그렇다, 알아챘겠지만 내가 힘든 모든 이유는 내가 귀여운 탓이다-당시에는 이 모든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당장 내게 정답 같은 대답을 원했기 때문이고, 망설이는 모습은 답답하게 비칠까 두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는 누가 무엇이 좋으냐 하면 하늘도 좋고 바다도 좋고 구름도 좋고 달도 좋고 무지개도 좋고 바람도 좋다고 말한다. 좋은 이유가 각기 다르니까 우열을 가릴 수 없어서 다 같이 좋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수학과 문학과 음악 등으로 나눠진 행정 편의적 진로 선택방식이 비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질문하는 세상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거기에서 나와 질문을 되돌려줌으로써 나름의 정답을 얻게 된 것이다.

사람을 대함에서도 같다고 생각한다. 다 다른 이유로 그들은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하거나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거나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깃들어 있으면 경청하고 들여다보려 애쓴다. 세상일이 얽히다 보면 더러는 서둘러 판단을 종용할 때도 있어서, 정답을 정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오히려 비난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좋은 사람들은, 섣불리 정답을 유도하지 않는다. 유보된 시간을 기다려주고, 본인과 다른 대답을 내어놓아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마음 깊은 곳이 따스해지는 걸 느낀다. 상호존중은 사실 어려운 일이어서, 나 역시 매번 헤매기 때문인데, 그걸 당당하고 당연하게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감사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조롱과 혐오의 언어로 비난하고 낙인찍고 조리돌리면서, 서둘러 본인이 원하는 정답을 내어놓으라 말하는 이들을 경계한다. 분노를 풀어내는 방식이 타인의 인격을 조롱함으로써 획득되는 거라면 인권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야를 의심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정답이라 내미는 손길은 두렵다 못해 거절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명백하게 피해와 가해로 구분할 수 없는 많은 사건 속에 있을 때가, 명백하게 피해와 가해로 구분되는 사건들보다 많다. 얽히고 설킨 뭉치들은 자신의자신의 입장과에서 본 것들로 편집되고 정리될 수밖에 없고, 때론 중요한 것들이 침묵 되곤 하니까. 그리고 또 때로는 그 어떤 이유가, 행간으로도 표현되지 못할 무엇이 있을 때도 있으니까.

섣불리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판단을 밀어내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정답으로 구성된 언어들보다 값진 것이다. 요즘은 내 좋은 사람들이 건네준 기다림을 떠올려 보며, 이제는 밀어 놓고 기다리려 노력해 본다. 그러다 보니 내게 전달된 유보된 시간과 그 기다림에 감사하는 시간이 드리우고, 그들의 어질고 넉넉한 마음에 감동하는 시간이 스며들곤 하는 것이다. 그 시간은 정답을 종용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단단한 프레임 자체를 깨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정선/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은...

한정선 /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헤드라인제주
한정선 /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헤드라인제주

'작은 사람'이란 사회적약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차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인, 아동, 청소년,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장애 성인 남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 하의 남성은 '맨박스'로 괴롭고 여성은 '여성혐오'로 고통을 받습니다. 빈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공장식 축산은 살아 있는 생명을 사물화하고 나아가 단일 경작 단일 재배 등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될수록 더욱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는 커집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겪고 바라본 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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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ison Kim 2022-06-28 12:30:47 | 125.***.***.186
잘 읽었습니다. "정답을 종용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단단한 프레임 자체를 깨어버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