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일상이야기] (4) 백색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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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일상이야기] (4) 백색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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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순결하고 순수함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병원생활을 많이 했던 탓에 코를 찌르는 듯한 강한 소독약 냄새와 의사나 간호사들이 입은 하얀색 가운을 보면 마치 나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처럼 보여 많이 울었다고 한다.

한 번은 어머니 친구 분들이 집에 놀러왔다가 아들인 내 얼굴을 보고 귀엽다며 쓰다듬어 주고 볼에 입맞춤까지 하면서 안았는데, 품에 안기자마자 내가 울어버린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바닥에 도로 눕혀놨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닌 친구들에게 자초지종 얘기를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고 나를 더 귀여워 해줬다고 했다.

이렇듯 다른 옷들은 괜찮은데, 유독 흰옷을 입고 온 사람은 방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정말 그랬었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집에서 어머니가 직접 의자에 앉혀놓고 머리를 잘라주셨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전문적인 미용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흰색 옷만 입고 있는 사람만 보면 울었기에 할 수 없이 머리를 자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주임 선생님이 각 반을 돌며 소지품을 검사하면서 두발 검사도 같이 하였다. 뒷주머니에는 무시무시한 가위를 가지고 다니면서 장발인 학생을 찾아내어 1차 경고를 하고 나서 밖으로 나가다가 나에게 “어디서 머리 자르니?”하고 물었다. 난 웃으면서 “집에서 어머니가 잘라주십니다.”고 했더니 화들짝 놀라며, “어머니가 미용일 하시냐?”고 재차 물어보셨다. “어머니가 대단하시구나.”라는 말을 들으니까 왠지 나도 모르게 기분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고 미용실을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그 전에는 집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나서 거울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스타일이 나오지 않아 돈을 지불하면서 주인 앞에서는 마음에 드는 양 웃으면서도 미용실을 나와 집에 와 어머니에게 먼저 선보이면 “다음부터는 내가 잘라 주마. ”라는 말을 할 정도니 어머니 마음에도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니는 “헤어스타일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이미지가 많이 좌우된다.”고 말씀하신다.

하기야 30여 년 동안 어머니가 내 머리를 잘라 주다 보니 아무리 베테랑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겨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자르는 게 마음 편하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머리 스타일이 이상하다는 소리는 이제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언제던가 자주 가는 미용실 주인이 “아드님 헤어스타일을 보니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고 하면 웃고만 계신다.

이렇듯 전문가도 어머닐 칭찬할 정도이다. 어머니가 만약에 미용 기술을 배웠다면 지금쯤 유명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내가 어렸을 때는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했었는데, 이제는 병원 출입이 적다. 자주 가는 곳이라고 해봐야 치과 정도이고, 특별히 아파서 병원을 찾지는 않는다. 어머니는 가끔씩 “네가 몸 아프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으니까 병원비 걱정 않고 편안하게 살고 있는 거다.”하고 말을 하시곤 한다.

요즘에는 흰색 옷을 입고는 있는데, 단점은 너무 빨리 더러워져 오래 입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넘기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 무섭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수필가 이성복>

이성복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이성복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이성복 수필가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지체장애 2급)으로,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연재를 통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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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2022-04-18 10:39:58 | 39.***.***.143
어릴적 순구했던 시절이 떠오르는 글이네요. 잠시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