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했던 기억, 생생하고 담담하게 그림으로 담아
70여 년 전 평화의 섬 제주에 끔찍한 피바람이 불었다. 국가폭력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잔혹하게 희생됐다. 수 십 년이 지나 이에 대한 실체와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지만 책임자 처벌,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문제 등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죽은 자는 죽어서도 편치 못하다.
살아 있는 자도 마찬가지다. 살아서도 죽은 것만 같다. 어쩌면 살아 숨쉬는 것이 죽은 것만 못할 수도 있겠다. 살아서도 그날의 비극, 사무친 슬픔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감내하고 삭여도 다시 움트고 되살아나기만 할 뿐이다.
4.3유족 현상지(91.노형동 개진이 왓 출신) 어르신은 용기를 내 그날의 생생한 상황을 그림으로 담았다. 기억을 솎아내고 아픔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더 깊은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전해야만 하는, 남겨야만 하는 기억이었다. 현 어르신은 4.3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고 묵묵히 지금 남겨진 자리에서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평화와 인권 그리고 상생과 연대의 꽃이 그의 손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4․3트라우마센터(센터장 정영은)는 4․3당시 고난의 피신생활 중 8명의 가족이 희생당한 현 어르신의 '4․3기억 그림전 – 청산이도의 기억'을 4․3트라우마센터에서 전시한다는 소식을 8일 전했다.
전시회의 핵심은 현 어르신의 4․3의 기억 속에 각인된 것으로 가장 생생한 이미지인 가족과 고향마을 사람들의 죽음이다.
1948년 11월, 불타는 고향마을 노형을 등지고 해안마을 이호리로 강제 소개된 후 1948년 12월 6일 호병밭에서 큰형이 토벌대에게 총살되는 장면과 고향마을 사람들이 집단학살 되는 충격적인 장면은 현 어르신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고통으로 남아있다. 현 어르신은 이를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이후 피난 행로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남동생, 두 명의 조카가 토벌대의 철장에 맞아 유혈이 낭자한 모습도 너무 생생하다. 10명의 가족 중 자신과 어머니를 제외한 8명이 희생됐다.
현 어르신의 기억 속에 각인된 또 다른 중요한 이미지는 눈 덮인 한라산에서의 처절한 생존이다.
피난민으로 한라산으로 내몰린 그는 '폭도'로 규정되어 생사의 길을 넘나들었다. 한라산 정상부 근처인 '청산이도'(작은 두레왓 인근)까지 모두 7차례의 피난 생활을 하면서 산속의 동굴과 움막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치열한 이미지는 박격포와 미군 비행기까지 동원된 토벌대의 집요한 추격과 청산이도 토벌 작전이었다.
한라산의 피난 생활은 여러 증언이 있지만 현상지의 그림에 등장하는 피난 생활의 처절하고도 생생한 이미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파편들이다.
현 어르신의 그림전은 역사는 스토리가 아닌 한편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4․3의 처참한 죽음과 생존을 위한 필사의 탈출을 이미지로 기억한다. 현상지 4․3 기억 그림전이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4․3기억 그림전은 4․3의 진실을 전하는 한편의 기록영화라 할 수 있다.
전시 개막행사는 오는 9일 오전 11시 4.3트라우마센터에서 열린다. 전시는 오는 12월 10일까지 진행된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센터에 전화(721-4330)로 문의하면 된다.
현 어르신은 이번 전시회에 대해 "동시대의 수많은 제주인의 고단했던 삶에 이 작은 전시를 바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생존희생자협회가 후원한다.<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