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 흐르던 만년 전 제주, 예술의 숨결로 다시 태어나다
상태바
용암 흐르던 만년 전 제주, 예술의 숨결로 다시 태어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1 제주세계유산축전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 현장답사
대지.자연미술 등 '대규모 야외아트' 전시...축전 핵심 콘텐츠로 주목
강경모 부감독 "일회성 아닌 제주만의 브랜드로 만들어야"
이응우 작가의 '불과 바람'. 작품을 오랫동안 음미하다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가령 바람, 햇빛 등도 보이는 듯 하다. ⓒ헤드라인제주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거문오름용암동굴계 트래킹 구간 중 4코스에 전시된 이응우 작가의 '불과 바람'. 용암이 흐르다 바다를 만나며 하늘 높이 치솟게 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헤드라인제주

화산섬 제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2021 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총감독 김태욱)'이 지난 1일 온라인으로 개막한 가운데, 이번 축전의 백미로 꼽히는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불의 기억, 자연.인간.생명의 길'이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워킹투어 구간에서 '자연미술', '대지미술' 등 다채로운 예술 장르로 전시되고 있다.

올해 제주세계유산축전은 오는 17일까지 한라산,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세계유산마을,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일대에서 '불의 숨길'을 주제로 한 19개 콘텐츠를 중심으로 현장 중심 프로그램이 아닌 가지각색의 온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개최 전날 모든 프로그램이 온라인으로 전환됐지만 메타버스, 유튜브, 지상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미디어 축전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며 안전하면서도 신선하게 관람객들에게 다가섰다.

특히, 축전 중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불의 기억, 자연.인간.생명의 길'은 만년 전 용암이 흐르던 '불의 숨길'을 생생하면서도 몽환적으로 연출해 이번 축제의 핵심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동시에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이로부터 탄생한 제주만의 독특한 신화 및 전설 등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화산섬 제주의 가치를 상기시킬 수 있는 예술작품들로 준비돼 많은 사람들에게 절절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7일 오후 2시부터 약 4시간에 걸쳐 제주세계유산축전 강경모 부감독, 강나경 큐레이터와 함께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거문오름용암동굴계 트래킹 구간 중 4코스(돌과 새 생명의 길)를 중점적으로 답사하며 만년 전 화산섬 제주와 오늘날 예술이 조우하는 생생한 순간들을 직접 살펴봤다.

세계자연유산 제주의 소중함과 가치를 다시금 짚어보고 나아가 현대 트렌드의 예술과 결합한 제주의 자연이 일회성으로 휘발되지 않고 제주만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잡을 수 있는지 그 지속 가능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2021 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거문오름용암동굴계 트래킹 구간. 총 4코스로 구분되며, 이곳에서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하단의 빨간점이 1코스며 위로 순차적으로 2,3,4코스다. 이번 현장 답사는 파란색으로 표시된 4구간에서 진행됐다. ⓒ헤드라인제주
'2021 세계유산축전-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거문오름용암동굴계 트래킹 구간. 총 4코스로 구분되며, 이곳에서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하단의 빨간점이 1코스며 위로 순차적으로 2,3,4코스다. 이번 현장 답사는 파란색으로 표시된 4구간에서 진행됐다.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김가빈 작가의 '순례자를 위한 드림캐쳐'. 순례자들에게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헤드라인제주

만장굴에서 시작하는 4코스는 김가빈 작가의 '순례자를 위한 드림캐쳐'로 포문을 연다.

강 큐레이터는 "김 작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전통 주술품인 '드림캐쳐'에 영감을 받아 이번 작품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불의 숨길을 순례하는 이들이 만년 전 화산섬이 지녔던 숭고함과 불의 기운을 받고 안녕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해당 작품은 만장굴의 웅장함과 그 주변 들판과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도 않으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는 듯하다.

ⓒ헤드라인제주
이문호 작가의 '분홍길' . '분홍색'은 심리적인 안정을, '길'은 순례객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곳을 잠깐 되돌아볼 여유를 준다. <사진제공=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축전 사무국>ⓒ헤드라인제주

만장굴 입구에서 해변을 향해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김녕굴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문화적, 지질학적으로 보존 가치가 매우 높아 현재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김녕굴은 오랫동안 인적이 드물었던 탓인지 그 입구가 어딘가 쓸쓸하다. 

이문호 작가는 이 쓸쓸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작품 '분홍길'은 특별한 테크닉이나 꾸밈없이도 색감과 설정으로만 김녕굴의 가치를 한껏 드높였다.

강 큐레이터는 "해당 작품의 '분홍색'은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며, '길'은 불의 숨길을 걸어온 시간들을 정리해 볼 여유를 준다"고 말했다.

숨을 고르며 순례를 하던 이들은 '분홍길' 위에서 문득 눈앞에 있는 김녕굴의 신비와 자연이 주는 위로에 안도감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김녕굴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헤드라인제주
최용선 작가의 '꺼지지 않는 불꽃'. 서로 상극인 나무와 불을 이용해 생과 멸의 조화를 표현했다.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작품을 가까이서 관찰하면 불길의 역동성, 표현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헤드라인제주

김녕굴에서 조금 더 해변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작은 샛길 하나가 있다. 그 길을 따라 걷고 걸어도 풀과 나무 이외에는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때쯤,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굴 하나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최용선 작가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최 작가는 나무로 용암이 흐르던 불의 통로를 연출했다. 서로 상극인 나무와 불을 이용해 생과 멸의 조화를 그려낸 점이 인상 깊다. 

그러면서 예술적인 세심함까지 잊지 않았다. 나무의 원래 제 모양을 그대로 이용해 불길의 역동성을 묘사했고 나무와 나무를 매듭짓는 철을 꼬아 작은 불꽃들을 그렸다.

작품은 하나의 작품이면서 각 부분들은 또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자연의 본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앞으로 그 본성을 잃지 말라는 작가의 바람까지 담겨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강 큐레이터는 "작품명에서 '꺼지지 않는'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헤드라인제주
강술생.김미숙 작가의 '우후석순2-달무리'. 작가와 마을주민의 협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바람에 모래가 흩날리며 '유'와 '무'를 연출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염분기 있는 바닷바람에 더욱 단단해졌다. 결국 작품의 완성은 자연이 했다. <사진제공=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축전 사무국>ⓒ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임승균.송율 작가의 '걷다가 흘린 세 덩어리와 한조각'.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이 역시 강인한 제주인의 정신을 보여준다. ⓒ헤드라인제주

해변의 끄트머리가 보일 때까지 걷다 보면 중간에 오름보다 더 작은 오름 몇 개가 보인다. 그리고 하늘 높이 치솟는 돌탑도 보인다.

강술생.김미숙 작가의 '우후석순2-달무리'와 임승균.송율 작가의 '걷다가 흘린 세 덩어리와 한조각'이다.

우후석순은 지난해 제작된 작품이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들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작가와 주민들이 한 웅큼씩 모래를 쌓아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었다. 오름이 화산 폭발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작가와 마을 주민들이 시간과 정성을 쏟아 제작한 것이다.

강 큐레이터는 "원래는 바람이 불면 자연스럽게 모래가 흩날리며 사라지는 것을 의도하며 만들었는데 염분기가 있는 바닷바람이 되려 그것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 상태로 남아있게 된 것"이라며 "작품의 완성은 결국 자연이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들이 기획하고 마을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완성은 자연이. 그러나 자연은 명확한 끝이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걷다가 흘린 세 덩어리와 한조각'은 작은 흰색 돌들로 높게 쌓여졌다. 제주 밭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상대적으로 연약해 보이고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나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창공을 향해 끝까지 뻗어있는 모습은 굳건한 화산섬 제주와 강인한 제주인의 정신과도 닮아있다.

ⓒ헤드라인제주
이응우 작가의 '불과 바람'. 불, 하늘, 바다, 바람 등 제주를 구성하는 자연의 요소들을 모두 연출하고자 했다. ⓒ헤드라인제주

마침해 해변에 도착한다. 순례자들은 김녕 바다 끝자락에서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게 푸른 하늘과 청명한 바다가 닿아 있는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을 때쯤 어디선가 불길이 치솟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응우 작가의 '불과 바람' 때문이다. 

강 큐레이터는 "이 작가는 용암이 흐르고 흐르다 바다를 만나며 하늘 높이 치솟게 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이번 작품을 제작했다"고 했다. 만년 전 생동하던 불길이 오늘날 예술이라는 옷을 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작품은 바다, 불, 하늘, 바람을 모두 담으며 제주 자연을 이루는 기본 요소를 다시 재현한다. 보이지 않아 무심코 외면했던 제주의 소중한 자연유산들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화산섬 제주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설명하고 있는 강경모 부감독.  강 부감독은
화산섬 제주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설명하고 있는 강경모 부감독.  강 부감독은 "이번 아트프로젝트는 일회성으로 끝나면 안된다. 제주만의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헤드라인제주

만년 전 화산섬 제주와 현대 예술과의 짧은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되지만 끝은 또다른 시작을 알리기 마련이다.

이날 현장답사를 동행한 강경모 부감독은 "이번에 진행된 불의숨길 아트프로젝트는 결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강 부감독은 "제주의 소중한 자연유산을 다채롭게 부각시킨 아트프로젝트는 축전이 끝난 이후에도 독립적인 콘텐츠로 이어져 제주의 지속 가능성을 실현함과 동시에 제주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며 "이제부터는 마을 사람과 제주 예술가들이 보다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예술과 제주의 자연은 무궁무진하다. 제주세계유산축전 아트프로젝트 역시 다양한 시도로 더 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며 "축전이 계속 이어진다면 아트프로젝트는 축전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아트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확장'과 '로컬' 두 가지로 설명했다.

강 부감독은 "다음번 아트프로젝트에서는 참여작가를 국내작가로 한정하지 않고 해외작가도 모집할 계획"이라며 "새로운 시선에서 제주를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제주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럼에도 전제 조건은 제주다움, 제주의 가치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제주보다 작가 또는 작품이 확연하게 돋보이거나 제주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과는 함께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외연을 넓힌다 하더라도 최소 절반의 인원은 제주 예술가로 구성할 것"이라며 "제주를 사랑하는 로컬 예술가들의 진솔함이 축전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불의 기억, 자연.인간.생명의 길'은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일대에서 1코스-시원의 길, 2코스-용암의 길, 3코스-동굴의 길, 4코스-돌과 새 생명의 길에서 진행되고 있다.

1코스에서는 박종호 작가가, 2코스에서는 함현영 작가 등 6명이, 3코스에서는 조세진 작가 등 6명이, 4코스에서는 김가빈 작가 등 6명이 전시에 참여했다.

온라인 전시는 유튜브와 축전 홈페이지를 통해 10월 한달 내내 관람 가능하며,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는 제주도립미술관 제2전시장에서 오는 12일부터 다음해 1월 9일까지 진행된다.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제주세계유산축전 지상파 방송 및 유튜브 송출 시간표. ⓒ헤드라인제주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