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27) 장애인 편의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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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27) 장애인 편의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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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27) 장애인 편의시설

정신없이 수업시간에 맞춰 빠듯하게 학교를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과방'에 가서 동급생들이랑 인사한번을 못해보고, MT에 개강파티, 과모임 같은 행사들엔 '그림의 떡'이 되어 가지도 못하고 참석하라는 연락엔 “(_ _)꾸벅..^^ 죄송해요.” 요따위 문자나 날리고 앉아서는 한숨 쉬며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된다.

사람 사귀는 일에는 젬병에 맥주병인 내가 그러지 않아도 없는 주변머리에 학교생활조차 이따위니 왕따도 이런 왕따는 없다 싶게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한심스러울 때가 많다.

작 년 1학기에도 그렇게 정신없이 지냈지만 역시나 이번학기에도 과친구하나 못 사귀고, 노닥거릴 시간하나 없이 집과 학교만을 들락거려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늘 동동거리고 있다가 수업시간에 가끔 한 번씩 늦게 되면 심장이 다 벌렁거린다.

한번은 강의시간에 맞춰 강의실로 가다가 경사로 앞을 차가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는 바람에 결국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내려와 강의실이 있는 곳으로 일부러 돌아서 올라가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날은 또,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늦지도 않으신다.(--;;; 아... 민망, 뻘쭘...)
휠 체어를 탄 채, 강의를 받는 나는 그 무게도 튼실한 철재책상을 한옆으로 치우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야 하는데 수업이 시작된 뒤에 들어가면 함께 수업 받는 친구들과 교수님께 정말 미안해진다.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뒷문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지각안한 척, 티 안내고, 시침 뚝, 떼고 앉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최소한 10분에서 아무리 늦어도 5분전에는 강의실에 도착하려고 굳은 결심을 하건만... 장애물이 이렇게 예상을 못하고 생기게 되면 할 말이 없어진다.

가끔 내가 늦게 수업에 들어가서 예상치 못한 시끄러운 소음을 발생시키게 되는 날.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_ _)꾸벅... 제 본의는 절대로 아니에요!!!^^”

그리고 함께 수업 받는 친구들...
“정말 미안해!^^”

이 런 일이 종종 생겨 불편이 잦아지자 슬슬 짜증이 나던 참에 우연히 학교 홈페이지에 교내의 시설물을 보수해달라고 신청 글을 올리도록 마련된 게시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없던 용기를 꾹꾹 쥐어짜 그 게시판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경사로 앞에 최소한의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과 경사로에서 너무 멀리 있는 장애인주차 칸의 활용도가 낮으니 주차 칸을 경사로와 가까운 곳으로 마련해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러자 며칠 되지 않아 학생복지과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얘기를 들어보시고는 시설과분들과 의논하신다고 하시더니 어느 날, 내가 자주 이용하는 학생회관 후문출입구의 경사로 앞에 떡하니 장애인 주차 칸이 파란 색으로 반듯하게 그려져 있다.

“어! 장애인주차 칸이 이사 왔네!!...^^"
새파란 주차 칸을 보는 내 눈과 입이 귀에 걸렸다.

외 출을 거의 하지 않아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불편이나 불평은 거의 없던 나였다.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부터야 장애인편의시설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게 되는 요즘, 조금씩 장애인이 정말로 편하게 이용하도록 설치된 편의시설이 우리 주변에 과연 얼마나 될까하는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

지금 내가 느낀 불편은 아주 사소한 일이다. 경사로 앞에 차를 세우는 일. 그것은 비장애인에게 일상이니까. 솔직히 나 역시도 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는 경사로를 이용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꼭 제주대학교 내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편의시설을 큰 마음먹고 선심 쓰듯이 하는 마땅치 않고 귀찮은 쓸데없이 성가신 일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제도적으로도 강제가 아닌 여전히 권고의 효력만을 지닌 채, 완전한 법의 효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또, 고발민원이 접수될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조항이 있다고는 하지만,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추는데 필요한 비용이나 공간적인 문제 등을 생각하면 벌금을 내는 게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듣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막상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추었다 해도 억지로 공간을 만들어 설치되는 장애인편의시설들은 정작 이용당사자인 장애인의 이동편의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당황스러운 일들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

제주대학교에는 ‘제주대학교 장애인학생인권위원회’라는 중증의 장애인대학생 몇몇을 주축으로 해서 장애인학생의 친구인 비장애인학생 서포터와 함께 어렵게 꾸려가는 단체가 있다.

그 단체에서는 제주대학교 봄 축제인 ‘대동제’ 기간 동안 장애체험프로그램을 한다. 그 내용은 시각장애인의 ‘점자로 이름 써보기’나, ‘보행체험’, ‘휠체어체험’등 비중이 큰 프로그램들이다. 올해에도 그들은 여전히 학교 내 어느 비탈진 곳에서 ‘휠체어체험’과, ‘점자이름쓰기’ 또, 흰 지팡이를 짚고 눈을 가린 채 걸어보는 ‘시각장애체험’등을 진행한다.

행사에 참여하는 많은 학생들이 휠체어를 끙끙대며 밀고 갔다 오기도 하고, 점자로 자신의 이름을 써보거나, 장애물이 있는 건물 안을 눈을 가리고 흰 지팡이만을 의지한 채 걸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다녀와서는 메모장에 ‘정말 힘들다.’, ‘이렇게 휠체어를 타는 게 어려울 줄 몰랐다.’, ‘장애인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등등의 평소에는 잘 알지 못했을 경험들을 쏟아낸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시끌벅적한 교정 한복판에 말끔하게 앉아 그들이 땀 흘리며 장애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 행사를 하는 지? 이 행사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나는 과연 변화하고 있는지? 에 대한 고민도 해보게 되기도 한다.

사회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한 행사로 여기겠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란 사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생각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클 수도, 1mm도 되지 않는 흔한 종이 한 장의 차이일수도 있다. 그 생각의 두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는 사람일까? 기계일까?
 

강윤미씨 그녀는...
 
   
▲ 강윤미 객원필진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하지만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훈훈하게 해 줍니다.

그 의 나이, 이제 마흔이 갓 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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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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