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온 청년들의 좌충우돌 제주 '농촌살이'...그들이 꿈꾸는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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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온 청년들의 좌충우돌 제주 '농촌살이'...그들이 꿈꾸는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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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그룹 '짓다', 구좌읍 평대리서 유기농 농산물 재배.판매...'협동' 가치 주목
농촌사회 기반, 인문학 모임.마을 소통공간 운영 등 코로나 시대 '대안적 삶' 제시
ⓒ헤드라인제주
프로젝트그룹 '짓다' 대표 3인. 왼쪽부터 김지수.조준희.박정숙 씨.

이들은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서 유기농 농산물을 재배.판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해 주민들의 '놀이터'로 운영하고 있으며 '칸트의 식탁' 등 인문학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도시'의 대안 공간으로 '농촌'을 선택한 이들은 "농촌도 도시만큼이나 화려하다. 그리고 또 바쁘다. 코로나19를 느낄 새가 없다"고 했다.ⓒ헤드라인제주

"적어도 농사에는 사기, 잔머리 이런 거 없잖아.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 야"

도심에서 무한경쟁,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다 지쳐 농촌으로 도피한 청년들의 삶을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등장하는 주인공 재하의 대사다.

현재 제주에도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며 육지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섬의 시골마을로 이주해 농사를 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 프로젝트 그룹 '짓다'를 운영하고 있는 청년 대표 3인 조준희(38), 박정숙(39), 김지수(27) 씨가 그들이다.

물론 현실은 영화만큼 빛나는 순간보다 막막할 때가 더 많다. 머리보단 마음으로, 지식보단 지혜로 풀어가야 할 일이 많은 것이 농촌일이다. 가뜩이나 제주도는 날씨가 변덕이고 화산섬의 특성으로 인해 지형과 토질 관리도 타 지역보다 까다롭다.

그러나 이들은 "도시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을, 위기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삶'을 섬의 다채로운 자연과 일차원적인 노동을 통해 발견하고 있다"고 했다.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지난 24일 '짓다' 대표 3인으로부터 좌충우돌 제주 농촌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제주 고유의 환경과 청년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결합해 농산물을 재배.판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촌을 기반으로 한 대안적 삶을 살며 코로나19 상황을 의연하게 극복해 나가고도 하다.      

◇개발, 도시, 자본의 대안으로 선택한 '제주'와 '농사' 그리고 '청년공동체'

이들 3인은 모두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조 대표는 중국에서 청년대안학교 교사로 일을 했다. 개발, 도시, 자본의 대안으로 '제주'와 '농사' 그리고 '청년공동체'를 생각해왔다. 그는 "환상적인 자연, 비자가 없어 세계 각국 청년들이 쉽게 모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제주를 주목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제주에 정착했다. 

박 대표는 서울에서 문화예술 교육자 겸 기획자로 일을 하다가 조 대표의 중국 학교 후임으로 인사를 나누게 됐다. "하라는 일은 안하고 조 대표와 사랑에 빠져" 결국 그를 따라 제주로 이주하게 됐다. 

김 대표는 조 대표가 운영하던 대안학교 제자였다. 또 중국에서 대기업 사원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빠르게, 기계처럼 움직이는 대기업 근무에 실망했다. 마냥 단순하게, 재밌게 살아보자고 지난 2019년 조 대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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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심고 있는 '짓다' 대표들과 마을 주민들. 이들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마을 주민들이 자신들 일보다도 더 열심히 도와주신다(웃음)"고 했다.ⓒ헤드라인제주

이들은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모였다. "제주의 풍경을 다 갖고 싶었다. 제주다운 곳을 찾았다. 농촌에 적합하고 밭담으로 유명하고 1차 산업을 기반으로 한 곳이 평대리였다"고 설명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청년이 그것도 셋이나 뜬금없이 마을에 등장하니 마을 할망들은 궁금했다. 할망들은 "너 누게니(너 누구니)?" 물었다. 셋은 "농사하러 왔어요!"라고 답했다.

이들은 "농사를 소재로 대화가 이어지는 곳이 평대리였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친구들이 늘어났고 친구들이 늘어나니까 이곳에서는 굶어죽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굶어죽지만 않는다면 그냥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좌충우돌 시작된 농촌살이..."400평 땅에서 감자 캐다가 너무 힘들어서 도망쳤어요"

"평대리에 방치되어 있는 땅이 있길래 약 400평 땅에 무단으로 30여 가지 작물들을 심어봤어요. 이후 다들 먹을 수 있는 작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감자를 심었죠. 처음엔 호미 한 자루로 400평에 감자를 일궜어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줘서 잘해내겠다 싶었는데...결국 너무 힘들어서 감자 캐다 말고 도망갔어요(웃음)"

농사를 처음 해본 터라 상상도 못한 시행착오를 숱하게 겪었다. 이들은 "지난 2019년 낮과 밤을 지새며 2년 동안 재배한 '감자밭'이 한 해에 몰아닥친 9번의 태풍으로 일순간 '쑥대밭'으로 변했다"며 "가진 것 없이 농사를 지으면서 지역에 정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도시에 살면서 '힘들면 농사나 짓고 살지 뭐'라고 했던 말이 얼마나 우매한 말이었는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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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수확하는 '짓다' 대표와 마을 주민들. "네이버스마트스토어에서 '소농로드'라는 이름으로 직접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유기농감자' 판매 1위를 달성했다"고 말했다.ⓒ헤드라인제주

또 "농부로 인정받고, 농사를 지으며 살기 위해 진입하는 과정은 꽤 험난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농업경영체 등록이 되는 땅을 빌려야 하는데 다들 직불금 제도나 매매시 양도세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해 주지 않아서 농사를 짓고 산다 해도 농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부로 인정받지 못하면 다양한 지원들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초기 인프라 구축도 어려웠다"며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면 산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지만 농사로 실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도전했다. "푸른 들판에서 새 소리를 듣는 일, 다양한 생명과 공존하면서 삶의 신비를 천천히 느끼는 일, 맛있는 것을 나눠먹으면서 함께 사는 일, 이 모든 것이 농사의 일부였다"며 "너무 힘이 들 때 이 섬을 떠나야 하나 수없이 고민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일들이 훨씬 더 많아서 남아있게 됐다"고 했다.

◇유기농감자 판매 '1위'부터 어벤져스 삼촌들과 함께 '마을 커뮤니티 공간' 마련까지 

이들은 "지금도 부모님들이 유학에, 석사까지 공부해놓고 결국 농사를 짓는냐고 혀를 끌끌 찬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 감사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평대리에는 정 많고 능력 많은 마을 삼촌들이 계시다"며 "매번 감자농사를 망치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한 삼촌은 자신의 당근밭을 척하니 내어주시면서 '같이 다시 해보자'라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마을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과 배려 덕분에 이들은 유기농 감자 농부로 나름 입지를 세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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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진행된 '수확페스티벌'. 도내외 청년들과 함께 농촌체험뿐만 아니라 도시, 대안공간, 공동체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도시와 농촌을 연결짓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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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아이들과 냇가에서 놀고 있는 '짓다' 대표들. 자연 앞에서는 나이, 성별 구분없이 모두가 즐겁다. ⓒ헤드라인제주

이들은 "네이버스마트스토어에서 '소농로드'라는 이름으로 직접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유기농감자' 판매 1위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뿌듯했다. 그런데도 마을 분들은 아직도 우리가 사는 걸 우리 자신보다 더 걱정하신다"며 "삶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가끔씩 '우리 참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농사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됐고 마을 사람들과도 가까워졌겠다, 이들은 보다 체계적으로 일을 확장하기로 했다. 일은 돈 버는 일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고 그래서 다 같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지금 평대리에는 우리가 직접 수리하고 꾸민 이름도 없는 작은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마을 사랑방이자 놀이터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공간에서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를 더 끈끈하게 연결하고 싶었다"며 "삼춘들이 편하게 오고가며 커피도 드시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점점 지대가 높아지고 공간 계약기간도 만료돼 공간 운영에 잠시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평대리 어벤져스 덕분"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들은 "마을 삼촌들 중에는 포크레인 작업자, 돌쌓기 전문가, 조각가이자 목수인 분 등이 계시는데 이분들이 인건비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도와주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성심성의껏 도와주실까 싶어 대놓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마땅한 말씀도 없이 도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품고산다"고 설명했다
 
◇"농촌사회, 코로나19 위기 속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실마리 있어" 

"농사를 지으면서, 그것도 작게 지으면서 살아도 '잘' 살 수 있어요. 아주 부유한 삶을 꿈꾸지 않습니다. 작지만 스스로 해야 할 일을 꾸준히 만들면서 주변의 사람들과도 행복을 나누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삶' 아닐까요?"

이들이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삶이란 그리 거창하고 무거운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여유, 시간의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 '관계의 여유'다.

이들은 "양심에 반하지 않는 수익활동으로 농사일은 제격이다. 현재 멤버 3명이 기본소득의 형태로 수익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니 마을의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짓다 대표들은 '우리'만이 아닌 '마을'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역 청년들이 스스로를 돌보면서 함께 경험을 나누 술 있도록 돕는 '자기돌봄농장-소농로드'를 준비하고 있고 '칸트의 식탁'이라는 시골마을 인문학 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또 도시 청년들과 농촌을 연결하는 '수확페스티벌'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했다. 

이어 "거창한 학문적 담론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갖고 모여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지역을 풍성하게 하자는 취지"라며 "그 안에서 배움과 성장, 나눔의 가치를 주고 받는다. 마을을 더 다채롭게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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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가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모임 '칸트의 식탁'. "무거운 담론보다는 소소한 삶의 얘기가, 화려한 말보다는 진솔한 말이 오간다"고 했다ⓒ헤드라인제주

코로나19가 국가, 사회, 마을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 곳곳에 침투해 삶에 대한 가치관을 흔드는 요즘, 이들은 오히려 "작고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며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해 더욱 믿음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쉐어하우스에서 3분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집터, 일터, 삶터에 전부 갈 수 있다"며 "세계화와 초연결 사회라는 복잡다단함 속의 피로도를 느낄 새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일상 속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이 가능한 지금, 로컬에서의 삶이 코로나를 맞은 우리, 그리고 코로나 이후 세대가 살아갈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나누곤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여전히 농촌일이 쉽진 않다. 변수가 상수인 것이 농사다. 하나를 알게 되면 둘을 모르게 되는 상황은 매번 발생하고 그래서 없던 성실함과 끈기는 저절로 생기게 된다. 

이들은 "'로컬의 미래'를 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지역에서 농사도 하고, 공부도 하고, 손수 지은 밥상을 친구들과 나누며 단순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현실은 농산물을 잘 길러내기도 바쁘다(웃음)"며 "특히 제주는 날씨가 따뜻해서 감자도 이모작이라, 농한기가 특별히 없는 것 같다. 매우 바쁘고 부지런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짓다' 3인 대표는 "우리 말고도 각 지역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재미있게 농사를 짓는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각자의 환경, 각자의 색깔로 다양한 방식에서 차별점을 만들어가고 있는 친구들이 저마다의 가치를, 목표를 세우고 농사를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며 "땀흘려 일하는, 수확한 것을 아낌없이 나눠먹는,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사는 친구들과 깊이 교류하는 것이 우리의 향후 목표"라고 말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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