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발전은 역행치 않는 것이며 인민의 역량은 불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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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발전은 역행치 않는 것이며 인민의 역량은 불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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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용식 /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장
부용식 /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장
부용식 /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장

현상호(玄尙好, 1914~1971년)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출신으로 사회주의 운동가이며 사상가이다. 하도사립보통학교를 졸업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전협(일본 노동조합 전국협의회)의 조직 지도자로 활동하였던 인물이다. 이것으로 인해 그는 1933년 일본 나라(奈良) 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의 형을 선고 받았으며 1936년에는 오사카 주물공으로 일하면서 항일활동을 해 오던 중 마찬가지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이 선고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근 해녀박물관에서는 현상호가 저술한 ‘제주도 해녀 투쟁의 사실(史實)’이라는 논문을 제주항일기념관으로부터 대여받아 입수하였다. 6.25가 발발한 해인 1950년 9월에 발표된 이 논문은 ‘제주해녀항일운동’과 관련한 각종 자료에 1차적 인용이 자주 되는 것으로 ‘제주 해녀 항일운동’의 동원 인원수 17,000여명과 집회 횟수 230여 회의 근거를 이 논문에서 찾고 있다. 
 
이 논문의 의의를 찾는다면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역사적 자료라는 것이다. 과거 제주인의 항쟁과 일제의 수탈정책, 해녀투쟁의 원인과 발단, 그리고 그 항일운동의 의의를 나름대로 해석해 놓았다.

또한, 실형 선고와 관계없이 ‘제주해녀항일운동’과 관련한 검거자와 당시 이 운동에 방해 공작을 일삼은 친일 부력자의 명단이 실려 있으며, 이 운동이 일어나기 전 해인 1931년 12월 20일, 하도 해녀들이 바다로 출항하여 제주읍 소재 제주어업조합 농성 점거를 계획하던 모습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것도 이채롭다.

이와 함께 이 운동과 관련한 삽화(揷話)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은 강창보(1902~1945)의 경찰서 탈출기(脫出記)와 ‘제주 해녀 항일운동’의 총괄과 교훈을 담아 놓고 있다. 
 
내년이면 ‘제주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난지 정확히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것에 맞춰 해녀박물관에서는 ‘제주해녀항일운동’ 9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전을 계획하고 있다. 1931년 12월 20일부터 이듬해인 1월 27일까지의 구좌 성산 우도 지역의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 전개과정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을 다가오는 특별전에 담아 보고자 한다. 거친 환경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제주인의 강인함과 제주인만이 갖고 있는 특징인 공동체적 연대감을 통해 강한 외세에 저항하는 제주인의 단결된 ‘저항정신과 힘’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특별전을 계기로 해녀문화의 산실인 ‘해녀박물관’이 질적으로 성장하여  제주 동북부 지역의 <해녀문화 타운>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현상호 선생의 논문 문구중의 하나가 떠 오른다.
‘이 기록을 내게 된 것은 기억에서 사라질려는 투쟁사실을 바로 소개하여 인식시킬려는 미지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이 금후의 보다 정확한 사실기록이 나와 그 토대가 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제주해녀항일운동’ 특별전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한다. <부용식 /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장>

*위 제목은 ‘현상호’의 논문중 한 문구를 따 온 것이다.(기고자 주)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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