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제주의 아름다움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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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제주의 아름다움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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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첫 직장은 구좌 쪽에 있었다. 오가는 길이 마땅찮아서 상사와 함께 카풀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야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멋진 길을 보여주겠다며 좀 돌아서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좋다고 했다.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직장이 중산간이라 매일매일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잃곤 하던 터였다. 그가 차를 몰고 간 곳은 비자림로였다. 밤이라서 잘 보이지 않겠지만 한동안 쭉 이어지는 이 길이 아름다워서 자신은 자랑스러워하는 길이라고 했다. 정말로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길고 높게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신령처럼 서 있는 그곳을 지나오면서 나는 감탄에 감탄을 이어갔다.

한번은 겨울이었다. 눈이 많이 내렸고 새벽까지는 내가 있는 중산간까지 교통이 통제되었다가 막 풀려났던 터였다. 눈이 내려서 평소보다 더 이른 아침에 나를 태우러 온 다른 상사가 우스갯소리로 조금 늦을 각오를 하고 좀 돌아서 사려니를 거쳐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너무 좋았다. 그렇게 조심조심 사려니를 거쳐서 가면서 상사와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눈의 여왕처럼 아름답고 위엄있게, 나무들은 눈꽃을 온몸에 휘감고서 하나하나 빛나는 광경은 지금도 눈을 감고도 떠오른다. 산에서 내려와 이른 길가, 초록 풀이 가득한 땅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희미한 풍경 속에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날 본 모든 풍경이 몽환적이어서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하는 가난한 언어를 탓한다. 제주 토박이는 그는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자신도 처음 보았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나뭇잎들이 윤이 나고 억새가 풍성한 곳에 햇살이 비치면 안녕 안녕 손 흔드는 나무들과 바람에 자신을 맡겨 흔들리는 억새가 모조리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마치 그 모든 곳에 은하수를 흩뿌려 놓은 듯 영롱하면서도 따스하게 초록과 베이지 빛을 반사해서 중산간 갈대밭을 지날 때마다 나는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가슴이 벅차게 황홀한 풍경은 새벽이나 저녁노을이 내릴 무렵 최고조에 이르렀다. 노을의 주황빛, 붉은빛이 서쪽 하늘을 메우면 하늘을 둥글게 감싸듯 분홍빛으로 물들던 비너스 벨트, 하늘 중앙의 파란 빛의 오묘한 변화. 지상과 하늘이 어우러져 눈부신 하모니를 일으키는 순간 하나하나 등불처럼 켜지던 별빛을 바라보며 침묵이 가장 큰 찬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면서 이토록 멋진 바다는 내게 처음 본 바다인 곽지는 내가 본 어떤 바다의 빛과도 달랐다. 연둣빛, 초록빛, 청록빛 마침내 파란빛에 이르는 빛깔은 서로의 다름을 분명히 나누면서도 경계가 없이 어우러져 있었다. 용천수가 콸콸 넘쳐서 바다에서 실컷 놀고 뛰어 들어가면 너무 차가워서 30초를 버티기 힘든 맑고 차가웠다. 그 힘찬 물줄기가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바다도 좋고 용천수도 좋아서 그렇게곽지가 좋았다. 한번은 용천수에서 비누를 쓰는 사람에게 그러지 마시라고 제재를 한 적도 있었다. 아마도 여행객인 듯한데 그는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이 물이 흘러 어디로 흘러갈지 뻔한데 무심하게 자신의 청결을 위해 비누를 쓰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주를 지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용천수에서는 누구도 세제를 사용해서 씻으면 안 된다. 아름다운 갈대와 나뭇잎을 지킬 수 있게 함부로 꺾거나 포장된 길을 내어서는 안 된다. 사려니를 만들어내는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가져가선 안 된다. 제주의 허파가 되어주는 비자림로를 함부로 베어서는 안 된다. 제주도민들은 저 모든 것을 지키고 있다. 바다를 지키고, 갈대를 지키고, 사려니를 지키고, 가을에 재개 예정된 비자림로 확장 공사에 맞서 저지하고 싸우고 있다. 비자림로를 자른 도청의 입장은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서라지만 그 길이 제2공항으로 연결되는 지름 길목임은 도민이면 다 안다. 그 길을 공권력에 맞서 끝까지 싸운 도민의 힘으로 지난 20일, 국토교통부가 재보완한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반려’ 결정이 내려졌다.

제주의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은 파괴하고 건설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계발만이 제주를 발전시키는 게 아니란 것을 우리는 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저 빛나는 제주만의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감동하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제주도 도민도 상생할 수 있는 길임을 우리는 정말로 잘 알고 있다.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은... 

한정선 웹매거진_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한정선 웹매거진_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작은 사람'이란 사회적약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차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인, 아동, 청소년,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장애 성인 남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 하의 남성은 '맨박스'로 괴롭고 여성은 '여성혐오'로 고통을 받습니다. 빈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공장식 축산은 살아 있는 생명을 사물화하고 나아가 단일 경작 단일 재배 등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될수록 더욱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는 커집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겪고 바라본 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작은 사람 프리즘'의 글은 <웹매거진_멍Mung>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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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2021-07-28 07:31:15 | 14.***.***.203
글 잘 읽었어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더라구요.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쁜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들이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쁜 사람이라고.

돈만 되면 어디든 자르고 파고 무너트리는 인간들,
브라질에서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세계의 허파라는 아파존을 파괴했지.
저들은 환경파괴로 인한 물난리와 가뭄으로 가족들이 죽어가도 지 배만 부르면 모른 체 하겠지?
사고가 나는 도로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속도를 줄이면 되고, 돌아가는 길이 있으면 돌이가고 차가 갈 길이 아니면 좀 걸으면 되지 뭐가 문제일까?
꼭 빨리가야 하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인간이 인간의 소중함을 알까?

낙연이를 생각하며 2021-07-27 18:05:07 | 118.***.***.129
사고나서 뒤지든 말든 아름다우면 끝이네

성산투기꾼 2021-07-27 17:49:48 | 118.***.***.129
지속가능한 아름다움이 맹꽁이랑 사이좋게 잘사는 모습보여주는거여? 쭈욱 아름답게? 너무 너무 아름답네. 오늘따라 맹꽁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