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벵듸마을 '감수굴 밭담길'에 가치를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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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벵듸마을 '감수굴 밭담길'에 가치를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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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농업유산 제주밭담] (1) 평대리 고홍기 이장이 전하는 성과와 과제
"밭담 보전.가치 주민 공감대가 먼저...마을협의체 가동돼야"
감수굴 밭담길 전경. <홍보 리플릿 사진>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전경.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주밭담은 10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제주 선인들의 노력으로 한 땀 한 땀 쌓아올려진 농업유산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2014년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지역의 밭담은 지역별 토양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이루며, 그 길이는 약 2만 2000km에 이른다. 그 장대함에 흔히 흑룡만리(黑龍萬里)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세계농업유산 등재 이후 소중한 문화유산인 제주밭담의 가치를 보전.관리하면서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마을공동체와 연계한 '밭담길'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까지 조성된 밭담길은 △구좌읍 월정리 '진빌레 밭담길' △구좌읍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애월읍 수산리 '물메 밭담길' △한림읍 동명리 '수류촌 밭담길' △한림읍 귀덕1리 '영등할망 밭담길' △성산읍 신풍리 '어멍아방 밭담길' △성산읍 난산리' 난미 밭담길' △애월읍 어음1리 '공세미 밭담길' 등 8개소에 이른다.

이 중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은 마을공동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더 없는 좋은 곳으로 꼽힌다. 제주만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고, 농촌의 문화, 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평대중동회관 앞 전경. ⓒ헤드라인제주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평대중동회관 앞 전경. ⓒ헤드라인제주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시작이자 종점인 평대중동회관.ⓒ헤드라인제주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시작이자 종점인 평대중동회관. ⓒ헤드라인제주

감수굴 밭담길은 지역행복생활권 선도사업(연계협력사업)으로 추진하는 FAO세계중요농업유산 제주밭담을 활용한 농촌마을 6차산업화사업으로 지난 2016년 조성됐다. 6차산업은 지역 농산물을 가공한 뒤 외식, 숙박, 치유나 체험관광 등과 연계해 부가가치를 높여 나가는 것을 말한다. 

평대리를 아우르는 '제주올레 20코스', '뱅듸고운길'과 더불어 새로운 마을투어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감수굴은 평대리 중동 마을의 옛 명칭이다. 이곳에는 '단물'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물맛이 너무 좋아 '감수'라 불렸다. 이 물은 인근 주민들까지도 관혼상제에 정화수로 쓰일 만큼 귀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동이라는 명칭이 정해지기 전, 감수굴 동네라 불렸던 지역문화를 살려서 이곳 마을 밭담길 이름도 '감수굴 밭담길'로 정해졌다.

감수굴 밭담길에는 '아름다운 벵디마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벵디'는 평평하고 널따란 지대를 뜻하는 제주어로, 평대리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밭담길은 중동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마을 안길과 연계해 1.5km 구간에 걸쳐 조성됐다. 걸어서 약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옛 중동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한 '평대중동회관'은 감수굴 밭담길의 시작점이자 끝나는 지점이다. 

이곳은 밭담 6차산업 사업의 일환으로 예산이 지원되면서 처음에 식당으로 운영됐다. 현재는 사진 전시 등의 문화공간과 커피숍, 마을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평대중동회관과 더불어, 혹하르방이 살던 초가와 도깨동산, 삼총사하르방, 감수굴물통 등은 감수굴 밭담길 코스에서 중요한 요소로, 마을의 문화.역사와 관련해 스토리텔링화 되어 탐방객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감수굴 밭담길은 월정리 진벌레 밭담길과 유사한 '사구(沙)형 밭담'으로 그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고 외담 위주의 밭담 안에 토양은 모래가 많은 게 특징이다. 

해안도로를 경유하고 있어 바다를 마주보며 걸을 수 있고, 마을안길을 경유하고 있어 올레, 집담(울담), 밭담 등의 조화를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점도 감수굴 밭담길만의 매력이다. 해안도로에는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해 있다.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헤드라인제주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헤드라인제주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헤드라인제주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헤드라인제주

감수굴 밭담길이 조성된지 4년.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헤드라인제주>는 고홍기 평대리장(54)을 만나 감수굴 밭담길 조성의 성과와 과제를 들어봤다. 

고 이장은 "제주밭담은 농업과 문화.생태경관 등이 하나로 어우러진 고유한 가치체계를 지니고 있다"면서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밭담을 잘 보전하고 전승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 및 대안에 대해 폭넓게 고민하고 논의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감수굴 밭담길은 기존 밭담의 원형과 마을길을 거의 그대로 살려서 조성됐다"면서 "새로 복원되거나 쌓은 밭담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원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마을의 문화와 역사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감수굴 밭담길은 세계중요농업유산 제주밭담의 지속가능한 보전.관리, 그리고 이의 활용을 통한 농업.농촌 활성화를 위한 기초적 하드웨어 부분이 마련됐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며 이를 밭담 보전사업의 성과로 들었다.

밭담길이 조성된 후 탐방객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묻자, "정확한 수치로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많이 늘었다"면서 "꼭 밭담길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해안도로, 올레길, 뱅듸고운길 등과 연계해 관광객들이나 탐방객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의 성과보다는 아쉬움, 앞으로 해야 할 과제를 언급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먼저 밭담길이 조성된 후 후속 프로그램이나 논의가 미진한 부분을 아쉬움으로 들었다. 밭담길과 연계한 지역주민 문화예술 프로그램, 탐방 프로그램 운영, 지역 주민 소득 창출 부분에 대해서도 "'일의 순서' 때문이기도 한데, 아직 그 부분은 활발히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일의 순서'는 마을 책임자로서 '제주밭담 보전'과 관련한 것이었다. 제주밭담 보전관리의 필요성 속에서 밭담길 운영 내지 지원사업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하나, 순서가 바뀐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사실 제주밭담의 보전문제는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세계농업유산에 등재된 배경은 무엇인지, 등재 후 어떻게 보전 관리해 나가야 하는지, 이러한 공익적 가치에 대한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하죠. 그런데 사실 밭담길 조성 과정에서는 마을 주민들간 이러한 공감대가 다소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고 이장은 "밭담길의 보전관리에 대한 주민 인식이나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6차산업화 사업 관련 지원이 이뤄지다보니, 주민들의 관심도 밭담 보전에 대한 고민보다는 마을 수익과 관련한 '젯밥'에 관심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밭담길을 만든다면, 밭담 가치 및 보전 중요성에 관한 공론화를 먼저 하고, 그 다음 후속사업이 진행됐어야 했는데 순서가 바뀐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고 피력했다.

또 밭담 보전의 공론화 과정에서는 논의할 사항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관리방안과 관련해, 밭담길 A지점과 B지점을 중점 관리하겠다고 한다면, 나중에 토지주가 바뀌더라도 어떻게 할 것이냐의 지속적 보전의 문제 등에 대한 사전 논의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서 "이제부터라도 왜 제주밭담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누군가 계속 제안을 해줘야 하고, 그러면서 주민들이 그 내용을 인식하게 하고 공론화를 해 나가면서 밭담에 대한 마을공동체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이장은 "사실 주민 인식 확산은 쉽다. 조금만 더 정확하게 설명을 하게 되면 주민들은 다 이해를 할 것을 생각한다"며 "그 다음 어떻게 보전.관리를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제부터라도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된 목적에 맞게 해 나가야 한다"면서 "(6차산업화의) 식당.커피숍 등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밭담의 문화적 가치, 왜 보전하고 전승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주민들과 생각을 공유하며 인식 전환을 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대리 고홍기 이장ⓒ헤드라인제주
평대리 고홍기 이장 ⓒ헤드라인제주

평대리 차원에서는 문화적 가치 및 활용가치를 높이기 위해 마을 해설사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고 이장은 "평대리에서는 밭담길 사업과 별도로, 올해말까지 생태관광협회와 마을 내 역사.문화 지도를 다시 만들려고 한다"며 "누가 오더라도 제대로 된 해설을 하기 위해 현재 해설사 양성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해설사를 양성하는 것은 문화적 가치에 컨텐츠를 입히는 일"이라며 "마을해설사들의 역할이 크다. 현재 4명인데, 이들이 밭담이나 문화적 가치를 대내외에 알려 나갈 것"이라고 피력했다.

밭담길이 조성된 8개 마을의 '제주밭담 보전관리 주민협의체'도 하루속히 가동돼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주민협의체는 지난해 10월 27일 7개 마을을 중심으로 'FAO세계농업유산 제주밭담 마을연합회'를 결성하고, 한차례 모임을 가졌으나, 이후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후속 모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협의체 구성 후인 지난해 12월에는 애월읍 어음1리 '공세미 밭담길'이 조성되면서 현재 8개 마을이 된 셈이다.

고 이장은 "밭담길이 조성된 마을에서 대표자들이 모여 밭담 보전 및 활용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해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그 속에서 행정지원이나 자체 추진사업 등에 대한 안이 나와야 한다. 마을에서 먼저 고민하고, 요구할 사항을 정리해서 행정에 요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평대리 고홍기 이장ⓒ헤드라인제주
평대리 고홍기 이장이 이사무소 앞 마을 이정표에서 감수굴 밭담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그러면서 하루 빨리 마을협의체를 출범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제주도에 바라는 점을 묻자, "(밭담길 조성) 사업이 끝나니 행정당국도 관심도나 사업 지속성이 약해진 듯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비 지원을 통해 밭담길 조성사업이 마무리된 후 후속 사업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던 점을 지적한 것이다.

고 이장은 "행정당국에서도 앞으로 어떻게 후속사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세계농업유산 등재를 왜 했는지, 최초 목적과 취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윤철수, 정리=원성심,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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