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의 '행복한 미술'](15) 잘 안 나가는 화가 강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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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의 '행복한 미술'](15) 잘 안 나가는 화가 강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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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렌즈로 보는 세상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이런 인물을 선택하는가!

제도와 관습으로부터 탈피하여 선택한 것은 무엇인가!

강형구 화가에게는 ‘10’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10’이라는 숫자가 주는 목표의 기대치와 완성은 전부 채워진 것 같지만, 새로운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 하도리 작업실의 화가 '강형구'. ⓒ헤드라인제주
제주 하도리 작업실의 화가 '강형구'. ⓒ헤드라인제주

강형구(b.1954, 부산) 화가는 중앙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자마자, 한 회사에서 10년 동안 샐러리맨으로 살았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화가의 생활로 들어섰다. 그림을 한참 그려야 할 때 단 한 장도 그릴 수 없었다가 10년 만에 그림을 그리는데 모든 것이 단절된 상황이었다.

그는 또 다른 10년 동안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린다.

마음을 다듬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진실을 어떻게 예술로 표현할 것인지를 연구하면서 오직 ‘자화상’을 그렸다.

‘나쁜 비’를 안 맞았다고 생각하는 그는 예술의 환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도권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표현하고 싶은 것은 표현해야 했다.

예술도 제도권에서 규정을 받고 있다.

‘이것이 예술이다.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강형구에게는 방해만 될 뿐이다.

소위, 남들이 예술이 아니라는(안 팔린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자유를 느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캔버스의 규격은 커졌고, 이를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 오목렌즈로 바라본다.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다잡았던 시간을 용수철에 비유하는 강형구는 현재도 용수철을 누르고 있다.

“용수철이 튀어 오르려면 눌러져야 한다.

반작용이 끝나면 또 눌러야 한다.”

용수철을 누르는 힘은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것에 있다. 과거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지만, 비현실적인 미래는 반드시 오는 현실이다. 진실에 방향을 둔 강형구가 자화상을 선택한 이유이다.

◇ 자화상을 그리는 예술가

강형구가 자화상에 대한 집착을 보인 것은 ‘나의 연구’이다. 진실한 삶과 예술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아우른다.

삶에도 의무와 권리가 있는데 의무라는 제도적 요소에서 자유스러워지는 과정과 권리로 이동해가는 갈등을 이겨내고 지나면서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자화상은 이력서이자 계획마저도 그려져 있다.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주고 있지만, 이 메시지를 처음 보는 사람은 자신이다. 예술을 거론하기 전에 자신의 삶에서 진실을 바로잡고 실천하자고 외친다.

강형구가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나아가는 장치이다.

혹독한 무게이지만, 봐야 할 것을 알리고 있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자화상을 그린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상을 돌이켜 봤으면 좋겠다.

자신의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로 살아가니까 소신 없는 전문가들이 많이 나온다.

자화상의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화상의 역할은 자기의 속마음을 스스로 판단해보는 것인데, 자신을 해부하지 못하고 자화상을 들여다보지 않으니 반성의 여지와 계획이 짧아진다.

“나는 진실하기 위해서 진실을 흉내 내지만,

언젠가 진실이 나를 흉내 낼 때가 있을 것이다.”

강형구는 배수진을 쳐놓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좌) 화가 ‘강형구’ 사진(우) 강형구, <self portrait>, 2016, oil on canvas, 218x291cm
(좌) 화가 ‘강형구’ 사진,
(우) 강형구, <self portrait>, 2016, oil on canvas, 218x291cm

한국에서 자화상이 나타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여, 18세기 조선시대 문예 부흥기에 활발하게 그려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자화상에서 가장 관심의 대상은 ‘공재 윤두서(1668~1715)’이다.

조선시대 자화상과는 달리 몸을 생략하고 얼굴만 강조한 점에서 유일하고, 대부분 측면의 얼굴을 그린 점과 달리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윤두서 <자화상>이 많은 예술가와 감상자에게 감화를 주는 이유는 ‘눈(eye)’에 있다.

강렬한 눈동자는 무표정하지만 강인함이 있다. 힘을 주고 있는 입술과 얼굴 근육까지 윤두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반드시 받아야 할 것 같은 진검승부의 집중력이 있다.

눈과 함께 화면의 절반가량을 ‘터럭’이 차지하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터럭 한 올도 빠트리지 않고 그렸을 법한데, 양쪽 턱의 끝자락 터럭은 길게 곡선처리 되어 있다.

눈 다음으로 응시하게 되는 터럭의 섬세함은 윤두서의 꼼꼼하고 인자한 선비 정신이 느껴진다.

화면에 균형을 제공하는 대칭성과 정확한 묘사력까지 윤두서의 자화상은 당대와는 다른 화면을 담아내었으며, 인물화에 있어서 시각적 긴장감을 주는 최고의 작품이다.

강형구가 2013년도에 회색으로 완성한 <윤두서>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에서 적외선으로 조사한 사진과 닮아있다.

적외선을 투시한 결과 눈으로 보기 힘든 옷깃과 옷 주름 선이 어깨 부분에서 확인되었다.

현미경으로는 양쪽 귀와 목, 그리고 상체에 붉은색의 윤곽선이 남아있고, 이외에도 채색의 흔적도 나타났다.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영향을 받은 강형구는 18세기 조선의 선비 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 현대미술에서의 자화상으로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좌) 강형구, <Yun Du-seo>, 2013, oil on canvas, 244x120cm(우) 윤두서, <자화상>, 1710년, 종이에 색, 38.5×20.5cm, 국보 제240호, 해남 녹우당 소장
(좌) 강형구,<Yun Du-seo> , 2013, oil on canvas, 244x120cm
(우) 윤두서, <자화상>, 1710년, 종이에 색, 38.5×20.5cm, 국보 제240호, 해남 녹우당 소장

자화상(self-portrait)은 화가가 자신을 모델로 해서 그린 초상화로서, ‘자기를 끄집어내거나 밝힌다’라는 뜻이다.

자화상의 목적은 ‘화가들이 스스로 가장 돈이 안 드는 모델이 되는 것’과 ‘자신을 불멸화하는 이상적인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두 가지 목적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욕구는 ‘자신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다.’

서양에서 자화상이 엄밀하게 나타난 시기는 15세기이다. 르네상스 이후 화가의 신분이 점차 상승하게 되고 근대적 자아의식이 싹틈으로써 자화상이 활발하게 그려졌다.

주로 종교화나 스토리화 등의 넓은 화면 한구석에 작가가 자신을 그려서 서명의 역할을 했다. 혹은 화가 자신이 그림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면서 그림 서명을 했다.

자화상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예술가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이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10여 년간 40점 이상의 자화상을 그렸다.

강형구 자화상의 콘셉트(concept)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빨간색 얼굴로 나타난다.

자유를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각인시키는 과정으로 세상에 경고를 보내기 전, 자신에게 미리 ‘레드카드’를 보내는 것이다.

멋지게 늙어가고 싶은 마음은 다빈치의 자화상을 닮아있고, 가상의 강형구 자화상도 그린다.

강형구, <self-portrait>, 2010, oil on canvas, 300x690cm
강형구,< self-portrait> , 2010, oil on canvas, 300x690cm

동양과 서양의 인물화에서 크게 구분 짓는 것은 남북조시대 ‘고개지’의 「전신사조」 여부이다.

동양의 초상화 및 자화상도 대상의 인물을 닮게 그리는 사실적 표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인물이 지닌 성격, 교양, 학문 등이 얼굴에 배어나도록 내면 의식을 드러내는 전신이 담겨 있다.

강형구 그림의 특징은 정면성에 있다.

대부분 얼굴(face)과 눈(eye)의 방향이 정면을 향하고 있어서 감상자들의 시선과 일치하게 된다.

눈은 세상을 보는 기능도 있지만, 눈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준다. 매개체로서 중심 역할을 위해 얼굴이 커지고 캔버스가 커졌다. 그림이 완성되어 간다는 것은 그림 속에 눈이 나를 쳐다본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그림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강형구이다. 그의 뿌리가 동양에 있다는 것으로, 사실적인 표현과 함께 인의예지의 내면을 담는 전신사조와 함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핍진(verisimilitude)의 형상화

강형구는 주로 인물화를 그린다. 크게 나누자면 ‘자화상’과 ‘초상화’이다

초상화는 인물을 묘사하는 것으로 동·서양 모두에서 사진에 의한 초상이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초상조각과 함께 많은 흔적을 남겼다.

강형구는 ‘마릴린 먼로(1926~1962)’를 자주 등장시킨다.

강형구가 그림을 그리는 데 진실한 것과 함께 자유를 선택한 것은 ‘제도권에서 멀어지는 것, 남들이 안 하는 것, 예술성이 없다는 가치판단과 상관없다.’이다.

이러한 시도는 마릴린 먼로를 선택하게 했다. 비난 혹은 걱정과는 다르게 먼로의 그림은 많은 소장자에게 향했다.

강형구의 초상화는 공통점이 있다.

종교, 국가, 언어, 인종, 직업, 예술의 방향성과 상관없이도 역사에서 위대한 평가를 받았거나,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한다.

윤두서, 손기정 선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반 레인, 빈센트 반 고흐, 오귀스트 로댕,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아인슈타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 테레사 수녀, 마하트마 간디, 에이브러햄 링컨, 윈스턴 처칠, 존 F. 케네디, 관우, 등소평, 루이 암스트롱, 오드리 헵번, 소피아 로렌, 마릴린 먼로 등이 있다.

마릴린 먼로는 할리우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섹스 심벌(sex symbol)’의 아이콘이다. 근대 이후 성적 매력이 있는 유명인으로 해석하면서 섹시한 스타를 일컫는다.

그녀는 우울한 과거가 있었고 전성기에 명쾌하지 않은 죽음으로 마감했다. 풍만한 아름다움과 생기를 간직한 채로 멈춰버린 먼로의 얼굴에서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강형구의 화폭에서 먼로가 자주 등장한 만큼 그녀의 표정은 다양하게 연출되었다. 2015년 <SAINT MONROE>는 정면성이 있다고 해도 먼로의 눈꺼풀은 거의 아래로 내려왔고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강형구를 통해 거룩한 사람이 되었는데, 이윽고 깊은 잠에 빠질 것 같은 표정이다. 중요한 역할의 눈을 배제하는 얼굴이 등장한 것은 강형구와 먼로의 관계가 꽤 깊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형구, <SAINT MONROE>, 2015, oil on aluminum, 240x240cm
강형구, <SAINT MONROE> , 2015, oil on aluminum, 240x240cm

강형구는 선택한 인물의 사진, 영상, 도서, 자료를 면밀하게 조사한 후 작업을 시작한다. 인물의 내면과 함께 전신사조를 포함하고 같은 인물이라 해도 매번 다른 그림으로 완성한다. 이점은 자화상도 마찬가지이다.

송대 문인화가 ‘소식’의 「사의론」은 내면적 정신, 이치, 의취를 외면적 형상과 대립시키고, 오히려 “형상의 닮음을 추구하지 않는다.” 주장하였다.

강형구의 그림에는 「전신사조」와 함께 「사의론」까지 더해져서 초상의 표현이 풍부해졌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풍경화와 초상화(자화상)를 남겼다. 그가 예술가로 활동한 기간은 1880~90년의 10년이었다.

고흐의 삶은 처연했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해소하는 정화를 남긴다. 미술사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존재하는 고흐에게 10년 후의 삶이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2007년의 <Vincent van Gogh in blue>에서 고흐는 정면성을 버리고 측면의 방향이 나온다. 하지만 눈동자는 정면성을 유지한다. 얼굴의 각도는 아래를 향하지만, 눈이 치켜 올라가니 고흐의 불안정한 감정이 전해진다. 입술 사이로는 흰 연기가 흩어지고 있다.

캔버스의 색채는 어둡고 선명하지 않은 파란색과 회색이 섞여서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대신, 고흐가 잘라버린 왼쪽 귀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고흐의 귀 절단 사건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지만, 강형구가 이 작품에서는 진실 보다 화가의 자유를 선택했다. 그리고 가십(gossip)에만 흥미를 보이는 관객들을 대신해서 고흐의 치유를 돕는다. 붕대도 없이 그대로 나타난 왼쪽 귀는 마치 사물을 붙일 때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매끄럽다.

고흐가 말한다.

“당신이 알고 싶은 진실을 말할 수 없지만, 나를 이해해줘.”

강형구, <Vincent van Gogh in blue>, 2007, Oil on canvas, 259.1x387.8cm_L
강형구, <Vincent van Gogh in blue>, 2007, Oil on canvas, 259.1x387.8cm_L

강형구가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개인을 조명하는 것보다 인물에 담겨 있는 역사적 의미, 상황, 시대를 설명한다. 일제 강점기를 그리고 싶어서 손기정 선수를 그린 것처럼.

동·서양의 전통적인 초상화는 비슷한 맥락으로 모두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까지 유지하고 있다. 초상화를 제작하는 것은 인간의 신앙 및 숭배와 관련한 의식, 제도들이 권력으로 이전되면서 초상화도 권력을 위한 미술이 되었다. 초상화는 지배계급이 선호하는 양식이었다.

한국의 ‘어진’과 중국의 ‘황제상’ 같은 지배계급의 초상이 있었으며, 서양에서도 ‘교황’과 ‘귀족’ 계급에서 주문하고 제작하는 형식을 갖는다.

강형구의 초상화에는 전통적인 것과는 다른 구조가 있다.

주문 제작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는 초상화의 인물을 직접 선택한다.

초상화는 타인을 그리면서 ‘실존 인물’과 ‘존재하지 않는 인물’까지 표현한다.

실존 인물은 지난 역사 속 인물이 많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은 신화와 동화 속 주인공들을 탄생시킨다.

실존했던 인물이 대부분이지만, 존재 여부를 떠나서 대상을 모델링(modelling) 하지 않고, 강형구가 선택한 인물을 ‘진실, 감정, 시간’으로 재탄생시킨다.

인물은 ‘진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강형구가 해석하는 의미와 양식이 덧붙여진다.

강형구의 초상화는 ‘핍진(verisimilitude: 실제의 보편적 사실과 일치하는 것)’의 형상화로 재탄생한 개념, 역사, 예술, 철학이다.

◇ 빛의 향연

1839년 프랑스의 ‘다게르(L.J.M. Daguerre)’가 발명한 ‘사진’은 대상을 똑같이 재현해 내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1840년대에는 중국과 일본에 수용되었고, 한국에는 1860년대부터 그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사진은 점차 초상화를 대체하면서 빠르게 수용되었으며, 초상화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에도 자극을 주었다.

강형구의 인물화를 감상하면 익숙한 환경이 보인다.

그는 만난 적도 없는 인물과 자화상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로, 모든 얼굴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면서 전신론과 사의론까지 담아낸다.

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비밀의 과정이 있다.

이들 인물은 화폭으로 옮겨지기 전에 강형구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히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는 그들에게 대체로 붉은색, 파란색, 회색, 노란색으로 구성한 한 가지 색채의 필터를 끼워 넣는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을 때 흔히 생기는 빛의 반사 현상으로, 눈동자에 흰 점이 생기는 것을 강조하여 그려 넣는다. 화룡점정과도 같은 의식이다.

우리가 강형구의 그림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던 것은 ‘매우 작은 흰 점’ 때문이다.

불투명한 혹은 투명한 작은 흰점, 테두리를 더 밝은 흰색으로 처리하여 흰 띠가 있는 점, 눈동자를 중심으로 두 개 혹은 세 개의 작은 흰 점이 주로 그려진다.

작은 흰점은 눈동자의 정 가운데 있기도 하고, 눈동자의 위와 아래 혹은 삼각형 구도 등으로 나타난다. 왼쪽과 오른쪽의 눈에서 다른 형식의 ‘흰 점’을 혼합하기도 한다.

강형구는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을 섞어서 감상자를 그림으로 다가오게 하고, 드디어는 인물의 눈동자와 눈 맞춤을 하도록 교감의 장을 마련했다.

‘눈과 눈동자’의 표현과 함께 볼 것은 ‘감정’과 ‘시간’이다.

얼굴에서는 화, 분노, 무서움, 걱정, 그리움, 기다림, 인자함, 눈물, 웃음, 오르가슴, 무표정으로 많은 감정을 드러낸다.

시간의 표현은 미래를 계획하고 마중하기 위해 노년의 모습을 그린다. 강형구는 첫 개인전에서 2022년의 자화상을 그렸고, 존재하지 않는 늙은 먼로를 그렸다.

‘본다는 것’은 서사이다. 희로애락을 간직한 인류의 일상처럼. 강형구는 시대의 풍경을 그렸다. (한정희 예술감독)

<참고문헌>

『한국미술의 역사』, 김원용·안휘준 지음, ㈜시공사, 2004 (초판 2쇄)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발행, 2011.09.27.~2011.11.06. (전시도록)

『세계미술 용어사전』, 월간미술 엮음, ㈜월간미술 발행, 2001 (초판 3쇄)

#에필로그

‘진실한’ 것의 욕망은 작업 과정에도 드러난다.

강형구는 첫 개인전을 할 때부터 통상적으로 200호 이상의 규격으로 작업을 한다.

작품이 커질 때는 높이 7m가 되었고, 1000호의 작품을 완성했다.

큰 작업일수록 조수/보조작가(assistant)를 고용하기 마련인데, 진실에서 멀어진다는 이유로 모든 작업을 스스로 완성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한국과 중국에서 큰 규모의 작업을 ‘라이브 페인팅(live-painting)’으로 완성했다.

붓(brush)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도구부터 전통에서 벗어났다. 주로 에어브러시(airbrush), 면봉, 지우개, 전동드릴로 그린다. 붓은 여러 종류가 있어서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선호하게 되는데,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일부러 선택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강형구의 그림에 적외선 조사를 한다면 2021년도를 기점으로 30여 점의 ‘이중 그림’을 발견할 것이다. 완성한 그림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덧칠하고 다시 그린 작품이다.

진품을 확인할 유력한 방법은 작품마다 강형구 작가의 DNA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명과 함께 그의 머리카락을 바니시로 붙여 놓기 때문이다.

‘팔포(팔기를 포기한) 작가’는 오래된 별명이다.

친구들이 전화 와서, “요새, 강형구 잘나가데?”

강형구는 예전과 같은 대답을 한다.

“나는 지금도 작업실에서 잘 안 나가.”

강형구는 다가오는 10월경 베이징의 초대 개인전 준비로 작업실에서 바쁘게 지낸다.

한편, 자신이 그린 인물화의 주인공처럼 스타작가로 큰 이슈가 된 사건은, 2007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자화상과 고흐의 작품’이 추정가보다 최소 7배 이상 높게 팔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자화상이 잘 팔리는 작가로 유명해진 그는 홍콩 크리스티에서 매해 만날 수 있다.

글을 멈추기 아쉽지만, 그의 치밀하고 독특한 에피소드가 분량이 넘치는 관계로 시간이 지나서 다시 소개하려고 한다. 미리 팝콘을 준비해놓고서.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코너는?...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은 다양한 기관의 전시 · 기획자 · 작품 · 작가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지위를 향상하면서 미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취지에서 연재합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미술이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읽고 작품을 감상하는 계기 마련과 미술을 통해서 개인의 행복한 일상을 마주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정희 아트 디렉터가 총괄 기획한 전시로는, 2020 아트페스타in제주(5th), 2019 제주국제평화센터 ‘평화의 꿈’ 및 'DMZ 평화 생명의 땅', 2018 제주해짓골아트페어, ICC JEJU 제주2015쇼케이스 '아트&아시아', 2015 서귀포예술의전당전시실개관기획전 '서귀포에 살다', 2015/2016 서귀포시교육발전기금마련전 등이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 기획, 언론 기고, 미술 연구조사, 미술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정희 예술 감독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과 졸업

예문사 「학예사를 위한 소통하는 박물관」 공저

제8기 제주특별자치도 축제육성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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