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는 인구 5만의 섬이다. 신라왕조 때 장보고의 청해진이 해상물류기지로 성세를 느렸던 과거의 영광이 너무 낯설 정도로 완도는 변방이다. 전복 양식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완도는 개발에 목 마르다. 인구도 좀처럼 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완도군민은 항차 서울제주KTX가 완도를 경유하기를 한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완도군민들은 제주도민들이 서울제주KTX 건설에 왜 미온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난 5월 14일 완도에서 개최된 '완도 경유 서울~제주 고속철도 교통망 구축 토론회'에서도 전문가들은 원희룡 지사가 너무 지나치게 성산 제2공항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하려면 보다 더 통큰 행보를 보여야 하지 않느냐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내년 제주도지사 선거에 원희룡 지사가 불출마 한다니, 다행이라는 희망도 개진되었다.
하긴 서울제주KTX토론회 자리이기도 하고, 또 KTX 찬성론자들만의 자리인지라 온 통 KTX가 미래라고들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행간에는 제주의 미래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보는 KTX를 제주도는 왜 백안시 하는지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편한 마음이 진하게 전해왔다.
잘 나가는 제주가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한반도의 서남권과 공생공영을 하는 데서 제주다운 멋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함께 했다. 더불어 함께 같이 미래로 나아가는 탈지역주의적 세계시민의식이 제주국제자유도시와 세계평화의섬을 추동시켜 나가는 기본적 힘일 것이기에.
신임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함에 따라 문재인정부 막바지에 성산제2공항 추진 여부가 어떻게 판가름 날 지 관심이 많다. 이와 관련 필자는 '무결정의 결정'도 하나의 대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혹 제2공항 추진으로 결정될까 보아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4년간 결정을 미루는 동안 성산 제2공항 추진 관련 찬반 의견은 충분히 개진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과 도지사가 머리 맞대고 풀어나가도록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제2공항 추진을 1년 늦게 결정한다고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제주를 오가는 도민이나 관광객이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과 지선에서는 제2공항만이 아니라 서울제주KTX도 제주의 미래찾기의 한 전략으로 다시 논의되었으면 한다. 제주의 접근성을 다양화한다는 일반론적 견지에서만이 아니다. 제주가 항공보다는 더 친환경적인 철도를 통해 청정 세상으로 나아가는 전향적 흐름에 동참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상원 통과의 절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최근 프랑스 하원에서는 기후복원법안이 가결되었다지 않은가. 여기에는 기차를 타고 2시간 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서는 국내선 항공운항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 정도로 이제 항공산업은 대기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
문제는 해저고속철도에 들어가는 돈이 16조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만이 아니라 서남권과 함께 국토균형발전을 꾀한다는 장기적 큰 틀에서 보면, 정부가 이 정도 예산 투입을 못할 것도 없다. 철도는 민생을 위한 인프라이지 돈벌기 위한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도군은 1단계로 목포까지 와 있는 KTX를 완도까지 연결하고, 추후 제주도가 OK하면 완도에서 제주로 2단계 철도망 구축을 내걸고 있다.
완도군 번영회와 청년회의소가 철도망 연결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바로 완도군 경제살리기 때문이다. 21세기 장보고의 청해진은 해상만이 아니라 철도를 통해 서남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목포부산KTX와 서울제주KTX가 교차하는 곳에 완도를 자리매김하려는 미래 청사진인 셈이다.
군수와 군의회 그리고 군민들이 서로 손을 잡고 완도의 미래찾기에 애쓰는 걸 보면서, 제주특별자치의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하루빨리 기초자치단체로서의 위상과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인구 5만의 완도가 경제살리기를 위해 국회로까지 가서 대국민 홍보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인구 50만이 되는 제주시가 법인격이 없어서 독자적 행보를 책임감 있게 하지 못하는 현실에 제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함과 함께 분노를 참기가 어렵다. 제주를 졸로 보고 특별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의 기초를 없애버린 중앙 정치권의 횡포와 제주 정치권의 무분별에 대해서.
당연히 KTX가 모든 건 아니다. 오히려 서울제주KTX로 제주로의 전전후 접근성이 확보되면, 이른바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해 제주가 몸살을 겪게 될 가능성도 크다. 청정제주와 섬 정체성 같은 제주다움을 지켜 나가기가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주가 국제관광도시를 기약하는 한, 과잉관광의 가능성과 폐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행복한 고민이다. 과잉관광을 어떻게 조절하고 피해를 줄일 것인가의 대책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않는다면, 어찌 미래가 있고 발전이 있겠는가. <양길현 / 제주대학교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