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토양의 제주 전래 농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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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토양의 제주 전래 농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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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58) 역사속의 제주농업문화

제주도의 밭은 대부분 적은양의 토양에 자갈이 깔려 있고 강우량은 많지만 화산토의 지질관계로 물이 지하에 스며들었다가 해안가에 이르러 솟아나기 때문에 자연히 논보다 밭이 많게 마련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생산되는 식량작물은 보리 종류의 나맥, 대맥, 맥주맥 등이 있었고 잡곡으로는 조, 메밀이 있으며 두류에는 콩, 팥, 녹두가 있고 고구마, 쌀 등이 있었다. 나맥은 1970년대 토반까지도 제주도의 주요작물로서 제주도민의 주식량이었으며 맥주맥은 환금작물로 재배되기도 하였다. 조는 제주도 잡곡 중 주 작물이었으며 동절기 도민들의 주식량이 되어 왔다. 그러기에 도내 어디에서나 재배하였으나 환금작물인 고구마가 들어온 이후에 급격히 줄어들었다. 메밀, 산뒤, 팥, 피 등 잡곡은 주로 중산간마을에서 재배되었는데 중산간에서의 경작이 줄어들면서 거의 생산되지 않고 있다.

농경 생활과 관련하여 사용하였던 농기구는 화산 활동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토양을 경영해야 했기 때문에 제주 지역만의 독특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제주 전래 농기구는 농경에 이용하는 과정에 따라 파종구(播種具), 재배(栽培)·수확구(收穫具), 운반구(運搬具), 탈곡구(脫穀具), 도정구(搗精具), 저장구(貯藏具)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제주의 농기구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보면 1601년 김상헌(金尙憲)이 “내가 밭가는 자를 보니 농기가 매우 좁고 작아 어린 애 장난감 같았다. 물어보니 말하기를 ‘흙 두어 치 속에 들어가면 다 바위와 돌이므로 이 때문에 깊이 갈 수 없다’고 하였다”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당시 농경의 어려움과 농기구의 열악함을 파악할 수 있다. 제주 지역의 농업 형태는 토양의 대부분이 전형적인 화산회토로 구성되어 밭농사 중심의 농경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 지역 농기구가 지닌 특성은 자갈이 많은 밭을 경작했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농기구는 ‘섭’이 넓으면 잘 긁어지지 않으므로 형태적으로 뾰족하며 비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말테’, ‘남테’, ‘돌테’로 파종한 밭을 밟아 주었다. 또한 지게의 경우 돌이 많은 제주의 특성을 반영하고 밭담을 넘어 다니기 쉽도록 지게의 발을 특히 짧게 하였다.

우선 파종구를 살펴보면 제주 지역에서는 농토를 갈고 경작하는 데 효율적인 농기구로 특히 가는 연장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개간 용구로는 코끼리 이빨형의 쌍따비와 주걱형의 웨따비, 뾰족형의 벤줄레가 있으며 이 외에도 목괭이, 섭괭이, 쟁기의 보섭 등이 있다. 소를 이용하는 쟁기는 돌이 많은 땅을 일구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손잡이는 내륙 지방과는 달리 양손을 이용하는 양지머리를 두었다. 그리고 소의 방향을 가름하는 가린석으로 좌우 방향을 조종하도록 하였다. 남테는 여름작물인 조를 파종한 후 지반을 다지는 농기구이며 메마른 땅에서 씨앗이 잘 발아되도록 다지고 작물의 도복(倒伏)과 흙의 유실을 방지하는 데 이용하였다.

제주의 파종용 농기구(왼쪽)와 제주의 재배·수확 농기구
제주의 파종용 농기구(왼쪽)와 제주의 재배·수확 농기구

재배·수확구는 제주의 경우 온난 다습한 해양성 기후로 다른 지역보다 잡초 제거에 더욱 힘써야 했다. 육성구로는 토양에 자갈이 많고 토심(土深)이 얕으므로 김을 매고 작물을 솎아 주는 농기구로 ‘갱이’ 단 한 종류가 전해진다. 갱이에는 자갈밭용과 점토질인 질왓용의 두 종류가 있다. 그중 자갈밭용은 끝이 가느다란 모양으로 돌 틈의 풀 뽑기에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곡식이나 풀을 베고 나무를 치는 데 사용하였던 낫이 있는데, 다른 지방에서 낫이라 하는 것을 제주도에서는 ‘호미’라 부른다.

운반구는 짐을 운반할 때는 전통적으로는 인력(人力)을 사용하여 지고 들고 날랐으나 다량의 수확물 또는 무거운 농기구 등을 운반하거나 먼 길을 이동할 때는 축력(畜力)을 많이 이용하였다. 운반구로는 지게, 베, 마차, 질메, 산태 등이 있었다. 지게는 큰 농기구나 다량의 작물 등 들고 다니기에 어려운 것들을 운반하는 데 썼으며 마차나 다른 운반구가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옮기는 데 이용하였다. 짐은 가지에 올려놓고 등허리에 지고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베는 물건을 묶을 때나 섬피 등을 끌 때 쓰는 밧줄을 가리킨다.

마차는 조랑말을 이용하여 짐을 실어 나르는 운반 수단으로서 각종 수확물은 물론 땔감 목초를 운반하는 데 이용하였다. 질메는 소나 말의 힘을 얻어내는 데 쓰였으며 ‘길마’라고도 한다. 산태는 돌·흙·곡물 따위를 올려놓고 들어 운반하는 데 썼던 도구이다. 산태에는 세워서 사다리와 같은 용도로도 쓸 수 있었던 산태와 둥근 테두리를 만들고 끈으로 얼맹이처럼 엮어 만든 돌산태가 있다.

제주의 탈곡용 농기구(왼쪽)와 제주의 도정 농기구
제주의 탈곡용 농기구(왼쪽)와 제주의 도정 농기구

탈곡구로는 클, 도깨, 작데기, 글겡이, 솔박, 얼맹이, 푸는체, 당그네, 마께 등이 있었다. 클은 알곡을 훑어내는 데 사용하던 농기구로 앞발과 뒷발을 꽂아 세워서 사용하였다. ‘보리클’과 ‘산디클’을 구분하여 썼으며 ‘홀태’ 또는 ‘가래기클’이라고도 한다. 도깨는 조, 콩, 유채 등의 알곡을 털어낼 때 사용하였던 타작용구로 ‘도께’ 또는 ‘도리깨’라고도 한다. 작데기는 도깨로 마당질을 할 때 흩어진 섭이나 보릿대, 깨낭 등을 케우릴(뭉치거나 모여 있는 물체를 헤집어 이리저리 흩어지게 함) 때 사용하였다. 글겡이는 도깨 작업 때 생기는 지푸라기 같은 것을 가려내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로 ‘글게’ 또는 ‘갈케’라고도 한다. 솔박은 탈곡한 알곡을 바람에 불리어 정선할 때 사용하였던 농기구로 주로 여자들이 사용했으며 ‘좀박’ 또는 ‘좀팍’이라고도 한다.

얼맹이는 보리, 조, 콩, 메밀, 깨 등을 탈곡한 후 벙데기를 쳐내는 등 곡식의 쭉정이를 분리하는 데 사용하던 농기구로 주로 여자들이 사용하였으며 ‘어레미’라고도 한다. 푸는체(키)는 탈곡 작업을 할 때 껍질이나 알갱이를 분리하는 데 사용하였던 농기구이다. 주로 여자들이 사용하였으며 남원, 서귀 등 도내 남쪽 지역에서는 대나무를 엮어 짠 것을 사용하였으나 북쪽 지역에서는 졸갱이 줄로 짠 것을 주로 사용하였다. 당그네는 보리 등의 탈곡한 알곡을 건조시킬 때 사용하는 농기구로 ‘근데’ 또는 ‘군데’라고도 한다. 마께는 이삭을 두드려서 알곡을 털어 내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로 ‘덩드렁마게’ 또는 ‘던드렁마께’라고도 한다.

도정구는 탈곡한 곡물을 도정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도구로 몰방에, 절구, 방에, 고레 등이 있으며, 몰방에를 사용하기 위해 곡물에 물을 축이는 데 사용하였던 ‘물통’도 있다. 탈곡한 곡물을 저장하는 데 사용하였던 저장구로는 두립, 뒤주, 항, 멱서리 등이 있다. 두립은 정미한 알곡이나 탈곡과 건조가 끝난 알곡을 보관할 때 사용하였다. 굵은 통나무 속이 저절로 썩어버린 것을 잘 다듬은 후 바닥이 되도록 나무 조각을 깔아 고정시켜 밑판을 데어 사용하였다. 항은 고팡에 두고 알곡이나 정미한 쌀 등을 보관하는 데 사용하였으며 높이가 낮고 입구가 넓으며 아래가 좁고 배가 부른 형태 등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 멱서리는 탈곡해 들인 곡식 등을 멍석에 널어 말릴 때나 상방에 보관할 때 곡식을 담아 옮기거나 보관하는 데 사용하였다. ‘망텡이’, ‘멕고리’, ‘망테기’라고도 한다.

그 동안 제주에서의 농경방식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그 속에서 농업 현장에서 역할을 하였던 농기구도 변화해 가고 있다. 농기구는 농업의 발전에 따러 농업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쓰이다가 자취를 감추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IT기술의 발달로 어느 시대 보다 빠른 변화가 농기구 분야이다. 중요한 건 아무리 좋은 기술도 농업현장에 접목되지 못하면 사장되어 왔던 게 농기구의 변천사이다.

※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김동섭(2004), <제주도 전래농기구>; 제주대학교(2009), <제주의 농기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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