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24) 세희(細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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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24) 세희(細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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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휭휭 거리며 음산한 겨울의 한기를 뽐내는 소리에 움찔움찔...

지레 겁을 먹고 “추워, 추워...” 를 외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려댄다.

‘따르릉...’
침대 속 어딘가로 던져두었던 전화기를 찾아 난리를 한바탕 치르고 나서야 겨우 받게 된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평범한 동네아저씨. 난 속으로 알만한 얼굴을 떠올려보지만 민망하게도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여보세요?”
“강윤미씨, 되십니까?”
 
“네, 제가 강윤민데요?...”
“택배회삽니다. 댁으로 소포가 왔는데 지금 가도 되겠습니까?”
 
“아! 예. 오세요...”
“금방 도착하겠습니다.”

대답은 해놓고서도 “소포 올 게 없는데...” 또 혼자 쭝얼쭝얼...
그러고 정말 10분도 안돼서 현관 벨을 누른 택배직원은 납작하고 널찍한 소포상자 하나를 집안에 떡하니 들여놔주고는 갔다.

소포상자위에 붙은 딱지를 들여다보고서야 겨우 기억이 난다.

주문을 하고도 취소를 할까?...
몇 번이나 망설이고 후회하면서 소심한 병아리마냥 종종거리는 동안에 배달이 되어 온 그것은 쫀쫀하고 조글거리는 소심병을 앓는 내 심장의 크기에 대결이라도 하듯 어마어마한 크기로 마루 끝에 벌렁 누워 내게 혀를 내밀며 놀리는 것만 같다. 
 
몇 달 동안을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두 눈 질끈 감고 ‘에이,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사게 된 물건.

그런데 막상 내손으로는 어찌 할 도리가 없는 묵직한 무게.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직접 조립을 해야 쓸 수 있는 조립식 책상.

말똥말똥...
눈을 굴리며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택배직원이 두고 간 그 자리에 고스란히 뉘여 놓고 입맛만 쩝쩝,.. 다시다가 밤을 재웠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어렵게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게 된 지 겨우 2달째...

며칠에 한 번씩 집으로 찾아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내손과 발이 되어 함께하는 활동보조인 친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을 열어 내 얼굴을 보기도 전에  

“언니! 이 박스 뭐?” 하며 소리를 친다.

“응... 책상! 지난주에 불러신디 어제 밤에 완. 근디, 너무 무거워. 내 힘으로는 밀어도 꼼짝도 안허멘. 조립해사 헐건디...”
 
“기이?..”

하더니 상자를 훌쩍, 들고 와서는 방에 앉아 테이프 뜯고, 박스 포장 풀고...

부시럭부시럭... 비닐포장 벗겨내고...

널찍한 판데기 아래에 받침대를 세워 끼우고는 이것저것 제짝들을 뒤적뒤적 찾아 여기 맞춰 돌리고 저기 맞춰 끼우고 뚝딱거린 지, 채 30분도 안되어 멀쩡한 모습을 한 책상을 코앞에 밀어준다.
 
“언니, 이거 컴퓨터 책상 헐 거 아니?”
“어?... 응.... 침대에서 책상으로 허잰...”
 
멍청하게 풀린 시선으로 입 벌리고 앉아 구경하다가 바보같이 대답했더니 방구석에 밀어둔 밥상위의 컴퓨터를 휙, 하고 들고 와 올려놓고 전기선을 꼽아준다.

“언니, 컴퓨터 한 번 켜봐...”
“어?...  어.... 알안...”
 
몇 달을 고민하면서 사야 했던 책상 하나를 이 친구는 뚝딱! 뚝딱! 하더니 몇 분 만에 어느새 내 눈앞에 번듯하게 앉혀주었다.
 
겨우 책상 하나지만 그걸 사기위해 나는 몇 달을 고민해야 했다.

날이 추워지고 바닥 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진 뒤로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도, 책을 들여다보는 것도 힘들던 참이기도 했고 또, 비용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조립을 하려면 누가 도와주어야 하는데...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걸 사서 어떻게 조립을 해야 하는 지 등의 이유로 매일 살까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엔 아파트에 관리실 직원 분들이 계시니 ‘도와달라고 해봐야지...’ 하는 뻔뻔하고 무대포의 ‘대책 없음‘의 마음으로 주문한 거였다. 그런데 너무 쉽게 해결이 되는 바람에 조금은 조바심쳤던 게 억울하기까지 하다.
 
“야아! 너, 되게 잘 한다...“

“응, 나 이런 거 되게 좋아해... 뭐 만들고 붙이고 그러는 거...”

눈가에 이쁜 동그라미를 그리며 친구는 웃으며 말을 한다.

어렵게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신청하면서도 될까를 고민했던 작년 말에서야 겨우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집으로 찾아와 내 손과 발이 되어 활동보조를 하게 된 친구가 오늘따라 시간 맞춘 듯이 와서는 뚝딱 거리며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책상을 턱! 하니 만들어주고 앉아서는 침대에 앉아 컴퓨터를 하며 아이처럼 헤벌쭉하게 웃는 나를 보면서 웃고 있다.

내가 하도 좋아서 입이 함박만 해진 게 재밌는가 보다.

“야! 이게 얼마 만에 해보는 인터넷이야!... 으하하!!!...”

그저 평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상의 소소로움조차 쉽게 할 수 없는 내 손을 대신해준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신나 죽겠다는 듯이 소리치며 커다랗게 웃는 것으로 오늘도 고맙다는 인사를 얼버무리고 만다.

‘고마워 친구야...’

쉽게 ‘고맙다’ 입으로 뱉을 수 없지만...
중증의 장애인과 일상을 함께 하는 활동보조인은 우리장애인에게 평범한 ‘감사’함이 아닌 육신의 존재입니다.

당신은 나의 육신입니다.
당신은 나의 정신과 함께 하는 ‘하나’입니다.
늘 존재할 수 있음에 오늘도 나는 평범한 일상이 행복합니다. 
 

강윤미 그녀는...
 

   
▲ 강윤미 객원필진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훈훈하게 해 줍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갓 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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