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화훼 재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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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화훼 재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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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46) 재배작물 도입의 역사

고대이집트(BC 2800∼BC 28)시대에는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적인 삼원색의 색감을 좋아했으며 꽃, 잎, 과일 등을 반복해서 엮은 갈란드나 리스 등은 고대 이집트의 화훼장식물들이었다. 화관, 꽃다발 등도 이집트의 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의 꽃 재배에 관한 첫 기록으로 『동사강목』에, 백제 진사왕 때인 390년에 궁실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여러 종류의 꽃을 많이 심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4년 경주에 안압지를 만들고 궁정에 꽃을 심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훼에 대한 유래는 문명의 정착과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 이전의 꽃은 왕을 중심으로 한 궁정 원예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취미 원예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1886년(고종 23) 최초로 우리나라에 근대 교육기관이 생기고 농학(農學) 중에 꽃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꽃이 상품산업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도 시장에는 화원이 있고 상품거래가 있었지만 꽃시장이 개설된 것은 1969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였다. 그 뒤 서울 서초동에도 여러 꽃재배농가가 모여 꽃마을단지를 형성하였다.

제주도에서는 1970년대부터 동양란·양란 생산단지를 이루었다. 1980년부터 서귀포지역에 본격적인 절화생산을 시작하여 나팔나리·숙근안개초 등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초에 서울 근교지역을 중심으로 성남, 고양시 등에 큰 화훼농업단지를 이루었고, 운반이 용이한 화훼류 동계생산은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 여름생산은 강원도 고랭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꽃 생산은 꾸준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수요증가가 일어나 1980년대 후반부터 꽃의 문화와 산업화가 현저한 발전을 보였다.

WTO체제 출범 후 화훼 수출량이 늘어나면서 성장 작목이며,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전업농가가 늘어났다. 화훼생산액은 1975년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1980년에는 3배, 1985년에는 11배, 1990년에는 36배, 1995년에는 76배, 1998년에는 87배의 급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1975년을 기준으로 1985년부터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아지기 시작하여 1975년에는 수입이 수출액의 44배 넘게 수입되었다. 주요 수출품목은 접목선인장이 가장 많고 다음이 절화 나리류와 절화장미류가 주종을 이루고 잇고, 수입은 란류(동양란, 양란), 구근류, 및 관엽 등의 묘목 등이 대부분이다. 한국경제위기인 IMF를 지나면서 1998년에는 수입이 급감하여 수입과 수출이 거의 같은 수준에 이르렀다. 따라서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기 위해 수입 꽃의 국산화가 문제였다. 2000년 경 국내 꽃 산업의 과제는 자생식물의 개발과 적지적작(適地適作), 내수촉진, 생산자 단체 육성, 유통구조개선, 신품종육성 등이다. 2000년 초 국내 꽃 생산은 절화 비중이 가장 높아 45% 정도 생산되고 있으며, 절화는 장미·국화·카네이션·나리류가 주종을 이루었고, 분화류는 36%로 란류, 관엽류 아잘레아, 포인세치아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 관상수와 화목류가 생산되었고, 구근과 종자의 생산은 아주 미약하였다.

절화의 주산지는 경상남도, 경기도, 제주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이고 분화는 경기도와 서울 등 수도권이 대부분이고 일부 제주도 및 남부지방에서 생산되었다. 화목류는 전라남도, 전라북도 지역에서, 관상수는 충청북도, 경상남도 지역에서, 구근은 강원도에서 많이 생산되었다. 우리나라 화훼 산업의 발전은 최근 크게 발전되었는데 그 원인은 정부에서 수입개방, 농림부의 과수화훼과 신설, 농산물가격유지법에 도매시장 거래품목으로 꽃을 추가하고 서울 양재동에 화훼공판장을 만들어 전자경매를 시작하고 정부의 보조금과 융자 등의 정부시책에 그 원인이 있다. 꽃은 다른 어느 농작물보다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과잉생산이 우려되지만, 국민생활수준의 향상과 국제화에 힘입어 앞으로도 꾸준한 신장이 있을 것으로 본다. 세계의 화훼 소비와 생산 현황을 보면 GNP가 높은 나라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제주도 화훼재배의 역사는 매우 짧아 경제작물로 재배되기 전에는 도시나 농촌 주택의 울타리 안에서 화목류와 초화류를 관상 또는 정원용으로 재배하는 정도였다. 1960년대 이후 제주시내에 꽃집이 생겨 국화, 카네이션 등이 판매되면서 꽃 소비도 점차 증가하였다. 제주도에서 화훼 재배는 역사가 매우 짧아 공식적으로는 1988년도부터 집계되었다. 화훼에 대한 연구와 소규모의 재배는 1980년경부터 양란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이어 백합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제주에서 경제적 의미의 화훼가 생산·재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조직배양 방법이 도입되기 시작하였으며, 1980년 초에 한국화훼협회가 결성되었다. 1982년 제주지부가 결성되면서 우량꽃 생산을 위한 재배기술 교환, 공동 운송과 포장자재 공동제작 등이 이루어지면서 활성화되기 시작 하였다.

월평동 백합 재배모습(왼쪽)과 경관작물 해바라기 재배모습
월평동 백합 재배모습(왼쪽)과 경관작물 해바라기 재배모습

1980년대 초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이상으로 올라가면서 꽃 소비액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농업소득에서의 화훼 비중도 커져 고소득 작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외국에서 국화와 장미 품종이 도입되어 조금씩 거래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정부의 시설현대화 추진에 따라 자동화 비닐온실 면적이 증가되면서 절화생산이 확대되었는데, 그 중 백합과 거베라, 양란 등이 고소득 작물로 부각되어 1999년까지 높은 증가세를 보였지만, 이후로는 경제침체의 영향 등으로 생산액이 감소로 전환되었다.

유가와 농자재 가격 상승으로 농가경영비 부담이 증가하고 수출시장에서 개발도상 국가와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중심의 지속적인 품종육성에도 불구하고 국산종묘 생산 보급기반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시장의 전면개방과 국·내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외국 꽃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의 화훼소비 감소와 소득이 높은 시설 만감류 등으로 전환되면서 화훼재배 면적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귀농귀촌 인구의 증가와 대규모 도시화에 따른 주거지 변화, 삶의 질 향상 등으로 도시농업과 화단용 화훼가 부각 되고 있다. 1980년대 이전 제주의 꽃 재배 통계자료는 찾아볼 수 없고, 1982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절화, 구근, 관상수, 화목, 분재 등을 재배했는데, 면적은 32.7ha, 생산액은 51억 원 정도였다. 1982년 보리와 고구마 등의 생산액이 100∼150억 원이었고, 유채와 콩 등이 50∼60억 원 정도이었던 것에 비하면 단위면적당 생산액은 높은 편이었다. 1988년 백합, 프리지아 등 구근류 및 국화 등 절화재배가 집중되었으며, 그 외에 카네이션, 장미, 안개초, 글라디올러스, 튤립 등의 절화류와 소철, 철쭉 등의 소재와 분화가 재배되고 있었다.

1990년 제주화훼 재배는 245ha로 1982년에 비해 7.6배 증가되었으며, 전국 증가추세인 3배보다 매우 높은 성장이었다. 이는 겨울철 기온이 높아 난방비가 적게 드는 등 좋은 기후 환경의 영향으로 보여 진다. 1990년 245ha 56.9백만 본이었던 화훼는 2005년에 최고 정점인 471ha까지 재배가 되어 한떼 2010년에는 제주백합 강정화훼단지가 전국 최우수 원예단지로 선정되기도 하였지만 계속되는 경제 침체로 인해 소비가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현재는 백합과 양란이 제주 화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출과 내수용으로 재배되어지고 있다.

앞으로 수출용 화훼의 집약적 육성과 함께 제주관광과 연계하여 6차산업과 연계한 경관작물 육성 등 화훼산업을 육성하여 제주농업의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

※ 참고자료: 남인희(1985), <제주농업의 백년>;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2016), <제주농촌진흥 60년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특별자치도청(2019), <농축산식품현황>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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