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수의 꽁트](9) 전화만 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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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수의 꽁트](9) 전화만 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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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너에게 쓰는 편지는 이제까지와는 다르다는 걸 알아주기 바란다. 모녀 간에 멀리 떨어져 살면서 안부를 걱정하는 얘기가 아니라 나와 어떤 사람의 기막힌 만남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이 여자와 내가 만나는 인연은, 우리 **시에서 운영하는 실버합창단에서 만들어 주었다. 60세 이상 노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인데, 내가 그동안 60세 되기를 기다려온 것은 이 합창단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연습실 제일 앞줄 가운데 자리에 우리 두 사람이 앉도록 해준 것은 우리 합창단의 최고령자인 단장 어른인데 나와 이 언니가 지금처럼 서로 친해지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필요했단다. (우리는 이제 서로 간에 언니 동생 칭호를 자연스럽게 쓰고있으니까 너에게도 언니라는 단어를 쓰고싶다. 이 언니의 이름은 청자이다.) 이 언니는 한 달 가량은 내가 묻는 말에 간단히 대답이나 하고 신참자인 나에게 한 마디 말도 건네주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고 무안했었다. 그 만큼 세상사람들을 불신하고 경계하는 여자라는 말이다.

우리 두 사람이 친해지기 시작한 것은 청자 언니가 악보 보는 법을 나에게서 배우면서였다. 우리 합창단에는 악보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단다. 음악이론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악보 보는 것도 그냥 겉보기 감각으로 맞추면서 노래를 한다는 것인데 청자 언니 말고 다른 단원들도 대개 그런 식인 것 같다.

이 언니가 악보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뭐를 물어오길래 나는 마침 잘되었다 싶어서 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더니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어린 너에게 음악공부를 시키면서 어깨넘어로 배운 음악이론 지식을 이렇게 써먹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1주일에 한 번 매주 수요일 오후에 연습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친해지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너는 지금 세계적인 명문 음악학교에 다닐 정도로 전문적인 음악이론 공부를 제대로 한 셈이지만, 음악공부를 별로 하지 못한 사람도 노래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구나. 청자 언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본능적인 감각과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도 저런 절창이 나오는구나 감탄한단다.

청자 언니가 노래 부르기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서 열중하게 되니 실버합창단에 나가는 날은 나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이가 되었으며 어느덧 수요일 오후 합창단에 나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가 되었다. 청자 언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계와 불신의 태도를 보이면서도 나에 대해서만은 신뢰를 보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합창단에 나가는 즐거움이 노래부르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니 동생이 서로 만나는 일에도 있다는 생각이 든단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수요일 합창 연습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전화로 미리 알려주게까지 되었다. 언젠가는 언니 입에서, 동생이 이 합창단에 나가지 않는 날은 언니도 빠져버릴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단다.

알고보면 청자 언니는 다정다감한 데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들과는 담을 쌓고 사는 셈이다. 그러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청자 언니를 기피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언니는 말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서는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없단다. 노상 입을 꼭 다물고 있고, 얼굴을 활짝 펴고 웃을 때가 없으니, 이렇게 볼썽 사나운 할매에게 누가 말이라도 걸어주겠나. 언니는 주름살이 많아서인지 얼굴모습이 열 살이나 더 늙어보인다. 얼굴에 살이 붙어있지 않아서 기운이 없어보이고 이렇게 깡마른 몸 어디에서 열창하는 힘이 나오는지, 음악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싶다. 언니가 신명나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노인네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청자 언니가 전심전력으로 노래 부르는 것이 무리임을 증명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사실은 이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이런 편지를 쓰고있는 셈이다. 그날 합창단 연습이 얼마간 진행될 때까지도 나는 언니의 컨디션이 어떤지를 미처 알아채리지 못하였다. 아마도 이 언니의 얼굴은 항상 기운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나의 주의력이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합창 연습이 거의 끝나갈 무렵 언니는 서있는 자세를 유지하기조차 힘에 겨웠는지 앞으로 폭삭 고꾸라져 버렸던 것이다. 우리의 합창연습은 그것으로 중단되었고, 고꾸라진 언니를 부축하여 집에까지 데려가는 일은 당연히 나에게 맡겨졌다. 병원으로 가야되지 않으냐는 말도 나왔지만, 언니가 의식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고 본인 입으로 자기 상태는 걱정할 것이 없고 집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는 바람에 그냥 택시를 잡아타게 되었던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언니는 뭐를 좀 마시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기력을 차츰 회복하였다. 그렇게 된 다음에라야 언니가 사는 집안 모습에 대해 나의 눈길이 모아졌다. 분명히 가난티가 덕지덕지 묻혀있는 집안 꼴임에는 틀림없는데 세간살림은 집안 가득히 쌓여있는 이상한 모습이었다. 솥과 냄비, 그릇 등 부엌살림이 한쪽 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크고작은 테이블이나 의자 등속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오래 쓰던 물건들임에 분명하였다.

내가 집안 모습을 유심히 둘러보는 것이 무안했는지 언니가 해명쪼로 한 마디 했다. 남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물건들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더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내다버리는 사람들의 심보를 모르겠다는 푸념까지 곁들였다. 그것이 요즘 세태인 모양이라고 했더니, 하긴 그런 세태 때문에 자기 같은 사람의 생계에 보탬이 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누구나 말만 고맙게 하면 여기 물건을 그냥 넘겨준다는 말을 들은 나는 중고품 냄비들 중에 하나를 골랐는데 이를 본 언니는 기분이 썩 좋은 듯 나의 어깨를 몇 번 토닥여 주기까지 하였다. 다른 쪽 구석지에는 신문지나 골판지 폐기물이 쌓여있었는데, 이런 물건들을 모아서 폐품처리업자에게 넘기면 돈벌이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거리에 나갔을 때 종종 보던 풍경들이 생각났다. 허리까지 꾸부정한 노인이 생활폐기물 처리장 같은 데를 기웃거리면서 종이류 폐품들을 모아다가 리어카에 가득 싣고 나르는 풍경 말이다.

이보다도 더 찡하게 나의 마음을 울려준 이야기가 언니 입에서 나왔단다. 언니의 마지막 남은 가족이었던 외아들이 죽은 이야기였다. 언니는 의식이 돌아오면서 자기의 외로운 신세를 나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어땠는지는 언급이 없었고, 불구자였던 외아들이 마흔을 갓넘기고 죽었다는 얘기를 꺼낼 때에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였다. 소아마비로 인한 절름발이였던 아들을 부축하여 등하교 시키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 마치게 했다는 얘기였으니 그 노고가 어땠겠느냐. 그래도 그 아들에게는 장애인 몫의 일자리와 복지혜택이라는 것이 있어서 두 모자의 생계 걱정이 없었지만, 4년 전에 교통사고로 아들의 죽음을 당한 이후에는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아들이 죽고나서는 세상사는 것이 너무 허무하여 그냥 팍 죽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는 얘기였다.

해마다 제삿날에는 공동묘지에 있는 아들 무덤으로 찾아가서 비석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럴 생각으로 공동묘지를 찾아간 것은 아니었는데, 무덤 앞에 앉으면 일찍 죽어간 아들이 문득 미워져서 손바닥으로 비석을 두드리며 마냥 울음보를 터뜨리고 만다는 얘기를 하는 언니의 모습은 정말 비통하였다. 이 녀석아, 네가 없으면 나는 누굴 쳐다보고 산단 말이냐. 내가 너 같은 병신자식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줄 모르느냐, 천하에 야속한 놈아. 이렇게 막말 욕지거리까지 나온다고 하니 그럴 적에 그 사람 심정이 어땠겠느냐.

이런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나는 아무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구나. 언니, 진정하십서. 언니가 아드님 때문에 서럽게 우는 모습이 아드님에게는 얼마나 가슴 아픈 장면이겠습니까, 언니가 울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시는 걸 봐야 아드님도 저승에서 편안하게 잠들 거 아닙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자 가만히 듣고있던 언니가 글쎄 마음을 고쳐먹는 거 같더구나. 맞다, 느 말이 맞다. 다음엔 아들 무덤에 가도 울지 않을란다. 이런 말이 나왔단다. 난 얼결에 한 말이 언니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 기뻤다. 그렇게 깊은 생각에서 나온 말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작은 틈새도 크게 보인다는 말이 아니겠나. 그러고 나서 언니가 말하는 것이 나의 가슴을 더욱 찡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싫어지려는 자기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따뜻한 온정이 뭔지를 알게 해준 이 동생이 정말로 고맙다는 얘기였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내가 느낀 감동이 어땠는지를 너에게 전할 말이 마땅치 않구나.

* * *

저번 편지에는 슬프면서도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오늘 편지에는 그러지를 못하겠구나. 청자 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너에게 전하는 나의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단다. 더구나 나로 인하여 청자 언니가 죽어갔다는 생각을 하면 나라는 사람이 미워서 못 견디겠구나. 그렇지만, 나의 잘못을 반성하는 심정으로 이 슬픈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청자 언니와 나는 합창단 연습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서로 연락을 할 정도로 친밀해졌다는 말까지는 너에게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 사이가 이렇게 친밀해지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구나. 우리 집안의 큰댁 어르신, 너에게 백부님이신 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나는 2,3일 간 그 초상집에 가있었다. 합창단 연습에는 그날 하루 빠졌다가 다음 주 수요일에 나갔더니 청자 언니가 보이지 않으셨고 결석한다는 연락도 없으셨다.

나는 그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기에 언니네 집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현관문과 방문을 차례로 열고 들어가 봤더니 언니는 이부자리에 편하게 주무시는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잠 자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지 1주일이나 지난 시체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체없이 경찰에 알렸고, 경찰은 **대학병원 담당의사를 데려다가 전문적인 검시작업을 한 결과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으로 판정이 나왔다. 워낙 체력이 약한 몸이어서 수면제 치사량이 보통 이하일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시청 사회복지과의 조사 결과로 청자 언니는 무의탁 독거노인임이 밝혀져서 장례절차는 경찰과 시청 공무원들이 수고를 해주었고 나는 그냥 구경만 하는 꼴이 되었다. 생전의 언니가 워낙 붙임성이 없었는지라 합창단 동료들의 참례는 있는둥 마는둥 하여서 나의 마음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청자 언니가 수면제 자살을 하게된 이유를 밝혀내는 일은 나에게 맡겨진 셈이다. 막막한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언니 핸드폰에 남아있는 흔적들이 중요한 단서가 되어주었다. 핸드폰에 적혀있는 ‘최근기록’에 따르면, 내가 큰댁 초상집에 가있던 날 언니가 나에게 네 번이나 전화를 걸었고, 문자 메시지도 세 번 보냈다고 나와있었다. 왜 전화를 받지 않으냐. 걱정된다. 무슨 큰 일이 났느냐. 메시지라도 보내달라. 한 두 시간 시차를 두고 이런 메시지들을 띄운 것을 보니, 아마도 손바닥에 수면제 알을 올려놓고 있으면서 이런 저런 걱정과 원망과 실망의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때 내가 전화를 한 통화라도 걸어주었더라면 언니의 배신감이 덜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쓰리게 하였다. 내가 초상집에 갈 때 전화기 휴대를 깜빡했었지만, 내가 조금만 성의가 있었다면, 초상집에 나온 사람들 중에서 빌려서 쓸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또 하나, 시간이 가면서 내 마음을 더욱 쓰리게 한 것은 내가 청자 언니에게 인간적인 신뢰감을 너무 안이하게 심어준 것 같다는 점이다. 애초에 내가 언니의 마음 씀씀이에 대해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으면, 내가 합창단 연습에 빠지던 날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두고 그렇게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내가 친해지기 이전에는 언니가 외로운 독거노인 신세를 굳건히 견뎌냈었지 않은가 말이다. <소설가 양영수>

<양영수의 꽁트>는...

소설가 양영수. ⓒ헤드라인제주
소설가 양영수. ⓒ헤드라인제주

바야흐로 영상시대라고 한다. 이야기문학을 감상하는 것도 문자매체보다 영상매체를 통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영상매체 속에서는 금방금방 장면이 바뀌는 스토리라인을 사람이 따라잡아야하기 때문에 깊이있는 사색과 음미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 마음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생체리듬과 심리적인 템포에 따라서 메시지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에는 문자매체를 이용하는 독서가 좋은 방법이다.

꽁트 연재를 통해 필자가 바라는 희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제주 태생의 소설가.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교수 정년퇴임.

그 동안 내놓은 작품들로는 단편집 '마당 넓은 기와집' (2008년), 장편소설 '불 타는 섬' (2014년,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복면의 세월'(2019)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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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 2020-02-24 12:57:28 | 14.***.***.243
너무 슬픈 이야기네요.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