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제주는 군수품 조달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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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29) 역사 시대의 제주의 농업

일본이 우리 나라를 강점함에 따라 막대한 일본 자본을 배경으로 벼농사, 목화재배, 과수재배, 담배와 인삼의 경작 등 일본 자국내의 식량난 타개를 위하여 이른바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을 우리 나라에서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주도에 있어서는 산미증식을 위한 기지보다 병참기지로서의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제주에서의 농업은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서는 어려웠던 일제강점기의 제주 농업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농업교육을 살펴보면 제주도 최초의 농업학교는 1907년 설립된 사립 의신학교의 학생과를 병합하여 1910년 2년제 제주공립농림학교로 개교했다. 1912년 제주공립간이농업학교로 개편되었고, 1920년 제주공립농업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1940년 5년제로 승격되면서 광양부지로 이전했으며 1943년 4년제로 변경했다. 1946년 6년제 제주농업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51년 학제변경에 의해 제주제일중학교와 제주농업고등학교로 분리되었으며,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으며 2000년 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되어 현재까지 오고 있다.

서귀포의 경우, 1936년 5월 제주도공립농업실수학교로 설립되어, 1학년제 1학급 30명으로 출발하였다. 1943년 수업연한을 2년으로 연장하였으며, 광복 전까지 9회에 걸쳐 267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1946년 10월 인문계로 개편하여 교명을 서귀공립초급중학교로 변경하였으며, 1950년 4월 4년제 서귀농업중학교로 개편되었다. 학제개편에 따라 1951년 서귀농림고등학교와 서귀중학교로 분리되었고, 1969년 11월 서귀농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었으며, 1999년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주에서의 재배작물의 뱐화를 보면 일제강점기 이전 제주지역의 농업은 지형, 기상, 지질여건 등 자연적인 환경 즉 불변적인 환경에 적응하며 곡류, 두류 등을 위주로 한 식량작물을 재배하여 삶을 영위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시대에 들어서는 농가의 자체적인 변화가 아닌 일본의 요구라는 가변적인 환경이 반영되면서 시작된 고구마, 맥주맥, 제충국, 박하, 담배 등 공업원료가 되는 작물재배로 인하여 지금까지의 식량작물은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불변적인 환경에 의지하던 생산목표가 서서히 소비시장을 겨냥한 경제작물로 전환이 이루어지기 한다.

아열대성 과일인 제주도의 감귤은 조선시대에는 진상품으로 조정에 바쳐졌고, 일제강점기에 개량품종이 도입되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동안 온주감귤 등 새로운 감귤품종이 도입되었다. 이전보다는 품질이 좋은 계통이 심겨지면서부터, 점차 재래종은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과거에 감귤재배가 많았던 곳에서는 병귤을 비롯하여 당유자, 유자, 진귤, 청귤, 동정귤 이 외에도 변이(變異)되거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몇 품종만이 남아있다. 현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의 도입은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말엽 박영효가 잠시 제주에 왔을 때 일본에서 도입한 감귤나무를 제주시 구남천에 있는 과수원에 심었다고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으나, 감귤나무는 남아 있지 않다.

재래종을 제외한 제주에서의 감귤재배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프랑스 출신 엄탁가(Esmile J. Taque) 신부가 1911년 일본에서 온주밀감 15그루를 들여와 심은 것이 현재 제주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는 온주밀감의 효시이다. 일본인 미네(峰)도 1913년에 온주밀감 묘목을 도입하여, 서귀포시 서홍동에 심었던 감귤나무 품종 중에서 일부가 남아 있다. 이 농원에는 그 후 심겨진 하귤, 와싱톤네블, 기주밀감, 문단 등의 품종이 남아있다.

또한, 서귀포시 신효동에는 김병호가 목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담배쌈지에 담아 가지고 온 하귤(夏橘) 종자를 파종하여 자란 품종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온주밀감, 하귤, 와싱톤네블, 기주밀감, 문단(文旦), 금감자, 팔삭(八朔), 금귤 등 여러 종류의 감귤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이 만든 농민회가 중심이 되어 곳곳에서 농민들에게 묘목을 나누어주며 장려에 힘을 썼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 생산되는 감귤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공급량이 많아졌으나 제주에서 생산된 감귤이 비싼 값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감귤재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중 일부 품종만이 해방 후까지 재배되었다.

보리는 제주인의 주 식량작물로 제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어졌으며 역사 이래 토종품종이 재배되어지다가 1930년대에 도입된 육성품종 백동, 죽하 품종이 1960년대 초까지 재배되었으며 밀은 보리 다음으로 제주도에서 많이 재배되어 제수용 떡, 국수 등을 만들아 보조식량으로 활용되었고 귀리는 우리나라에서의 재배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제주에서는 1960년까지도 산간 화전지대에서 춘파 여름재배기 이루어 졌었다.

콩류의 우량품종 선발은 1906년 권업모범장에서 국내 재래종을 수집하고 순계분리하여 우량품종을 선벌하여 보급 되었다. 제주도에 고구마 도입은 1795년 제주목사 윤시동이 부임하면서 조엄과 강필리의 도움을 받아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에서 고구마가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이다. 구황작물은 물론 술과 알코올 제조에 이용되었다. 특히 1943년 일제가 제주에 주정공장을 세운 후 고구마는 절간고구마(일명 빼떼기)로 생산되었다. 1940∼50년대의에 고구마는 제주인들의 주식이었으며 생활경제의 밑천이었다. 당시 제주지역의 마을들은 반농반어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으며 농업은 봄에 보리와 가을에 고구마가 주 재배작물이었다.

건입동의 주정공장 옛 모습(왼쪽)과 절간고구마 생산 모습.
건입동의 주정공장 옛 모습(왼쪽)과 절간고구마 생산 모습.

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되었으며 제주도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에 재배되었으며 맥류 다음가는 식량작물로서 중요하게 재배되어 왔던 애환이 깃든 작물이며 메밀도 제주에서 중요한 식량작물로 1938년 재배면적은 4,874ha로 대두보다 많이 재배되었다.

제주지역은 토양 특성산 물을 가둘수 있는 논을 만드는 데에 제약이 많아 잡곡문화가 주를 이워 쌀은 매우 귀한 존재였다. 육지부에서 쌀을 들여오기도 힘든데다 제주도 내에서도 단 1%의 지역에서만 생산 할 수 있었으며 예로부터 중산간 지대에 밭벼를 재배하였다. 제주에서의 참깨재배는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이후로 추정된다. 양파재배는 조선시대 말 미국과 일본에서 도입 재배되기 시작하였으며 제주도에는 1930년대에 처음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했다. 배추는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치의 재료로 고려 고종이전부터 재배되었을것으로 추정되며 제주에도 이식시에 재배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1913년에는 163ha에서 817톤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에서의 양배추 재배의 시작은 1940년대로 볼 수 있으며 무는 배추와 함께 기원전 50년부터 우리나라에 재배되었으며 제주에는 고려시대에 도입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으며 1913년 재배면적은 104ha 2,000톤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30년대 이전 까지는 재래종을 재배하다가 이후 궁중무, 성호원무 등 육성 품종이 재배되었다. 토마토 재배는 1920년 전후, 가지는 1910년대 이후에 제주에 도입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의 제주농업의 다양한 재배품목의 확대 등 큰 변화는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제주 농업은 식량작물 증산에 초점을 두었고, 그 외 채소와 과수 등은 가격 통제령으로 자급자족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군수품으로 쓸 고구마 주정을 생산하기 위하여 제주도에 고구마 재배 활성화 등 일제의 침략 목적에 맞게 재배품목이 편성되었으며 맥류를 위시한 당시 제주농업의 관심사인 곡물산업의 증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회과학출판사(2012), <조선농업사(원시∼근대편)>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등을 두루 거쳐 현재는 제주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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