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22) Lon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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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22) Lon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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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는 시간에
길이 잘 들어 있는 나.

그래서 파삭파삭,
마른 혼자의 것들에 항상 익숙해져 있음에도...

아주 가끔...
아주 가끔은...

내가 어찌해볼 사이도 없이 견디지 못할 물기가
꼭꼭 야무진 자세로 뭉쳐져 있던 네모진 각설탕이
머그잔 가득 담긴 따끈한 커피 안으로 퐁당, 하고
빠져드는 순간 흔적도 없이 까만 김 내는 뜨거운 액체와 하나가 되어버리듯
바삭바삭 잘 말라있던 심장 안으로 젖어들어 날 당혹스럽게 한다.

그래서 그런 날에는 하루 종일을
아니, 새벽녘까지도 잠들지 못하고 앉아 카페인이 넘치게 쓰디 쓴 진한 커피를 들이키며
여름철 소나기에 흠씬 젖어버린 담벼락처럼
철철 물기가 넘쳐흐르는 가슴을 말리기 위해 나도 모르게 용을 쓰고 있곤 한다.

따뜻한 무엇을 잔뜩 마시면...
가슴이 다시 바삭바삭 해질 거야!
내 심장을 그리 달래가면서 내 가슴에 쉬지 않고 뜨거운 물을 부어 담고 있다.

잔뜩 웅크러진 심장이
울혈을 담고 앉아 쿨럭, 거리며 마지못해 피를 토해내는 한밤 중...

am: 03: 35분

뜨겁다 못해 입천장이 벗겨질 만큼
끓어오른 커피를 마셔도 가슴이 오늘밤은 마르지 않는다.


예전처럼 그저 몇 시간,
잠들지 않고 앉아 혼잣놀이에 몸이 지치면
가슴도 함께 바삭바삭...
늦은 가을 각박한 도시의 공원 안을 팔랑거리며 날리는 노란 낙엽들처럼
사르릉... 처마 밑 풍경소리처럼 가벼운 소리를 냈었는데....

이젠
날 달래는 밤이 점점 길어 간다.

다가오는 체온이, 어느 날 떠날 게 두려워
가슴을 주고 나면, 다시는 혼자라는 걸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릴 가슴이 겁이 나
너와지붕위의 나무껍데기처럼 일부러 딱딱하게 말려두기에 온 힘을 쓰던 나.

그렇게 타인의 체온과 체향을
온 힘 다해 밀어내느라 버텨주던 내 영혼이 이젠 지쳐버린 건지
다가와 나누고 싶을 체온과 체향이 아닌

다가가 안고 부비고 쓸어 줄
그 욕망을 간교하게 “나 몰라요...”
순진한 척, 바보인형인 척
한자리에만 버티던 내 이기심에 지쳐버린 건가.

이젠
육신의 물기가 바작바작 말라버린 몇 천 년 묵은 미라처럼
영혼이 파삭하게 말라 부서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심장을 아프게 망치질 해댄다.


혼자 앉아
아프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외롭지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척, 하지 말란다.

"그럼... 이젠 뭘 해야 할까?..."
"무엇이든..."

"응? 무엇이든?..."
“그래. 무엇이든 해.”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데..."
"모르는 척 하네..."
"아니야... 아니야...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응. 정말..."
"그럼, 사랑을 해."

"... 사, 랑?..."
"응. 그게 가장 사람이 처음 하는 거니까."

"사랑이 가장 처음 하는 거라고?"
"그래...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위를 빼고는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지..."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척만 하지 않으면 돼."

"척... 만?..."
"그래. 외롭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 씩씩한 척, 잘난 척.... 뭐 그런 거만 하지 않으면 돼..."

“나... 그런 적 없어.”
“아니야. 넌 맨날 그랬어. 아닌 척 하면서 잘난 척은 혼자 다하고, 별거 아닌 것에도 상처받아서 벌겋게 피 흘리면서도, 나 안 아파요,, 하는데, 니 눈은 아파서 죽을 거 같아요... 하고 있거든... 거짓말도 할 줄 모르면서 그런 거짓말은 진짜 잘하잖아... 그냥 다 속아주는 것뿐인데... 넌 니가 거짓말을 잘하는 줄 알잖아... 세상에서 제일 바보면서 잘난 척은!...”

“내가 정말 그랬어?”
“그래... 넌 이 세상에서 제일 거짓말 못하는 바보지... 지가 제일 거짓말을 잘 하는 줄 알거든... 쯧쯧쯧....”

"정말 그거만 하지 않으면 될까?"
"정말... 나, 사랑할까? 응?"

".... 사랑... 할 수... 있을까?..."

<헤드라인제주>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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