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20)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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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20)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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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한 겨울 남들은 죽을 둥, 살 둥 하루를 살기 위해  겨울의 삭풍을 마주 받아 얼어가며 삶을 사느라 끙끙거리지만...
 
그런 삶과는 다른 환상의 나라 동화 속 아이처럼 철딱서니 없이 방안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온 종일을 보내면서도 부들부들...춥다는 말을 입에 달고 노래를 부르며 사는 나는 "추워!!!" 한시도 쉴 틈 없이 염치없는 소리를 꿍얼거려대곤 한다.
 
몸에 열이 없는 내 몸뚱아리는 아침 이부자리를 벗어나면서부터 밤새 간신히 이부자리에서 얻은 열기를 고스란히 빼앗기며 하루해를 보낸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 몸은 바깥에서 추위에 얼어 들어온 어머니, 아버지의 냉기를 가득 품은 몸보다도 더 식은 몸뚱이가 되어 가족을 맞는 저녁이 있었다.
 
저녁 해가 질 즈음 하루 노동으로 지친 몸을 안고 들어올 부모님과 동생들과 함께 할 시들어빠진 우거지가 든 된장국 한 냄비...
 
먹다 지쳐 쉬어터진 체 냉장고 안을 들락거리는 김치로 끓여지는 성의 없는 찌개 한 냄비. 새벽일을 나가면서 하루끼니를 올려 둔 어머니의 눈대중으로 아버지와 함께 점심밥을 하고도 남겨지는 가족들의 저녁 밥그릇 6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일을 나가게 되면서 내 동생들은 다른 집 아이들보다 이르게 집안일을 해야만 했다.
 
겨우 국민학교 몇 학년. 아무 걱정 없이 뛰놀거나 부모에게 혹은, 나이가 위인 형제들에게 철없는 떼를 써가며 응석을 부려도 용납이 될 나이의 동생들은 학교에서 정신없이 뛰어와 집을 지키는 나를 대신해 걸레를 빨아 집안청소를 하고,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올 부모님과 함께 먹을 밥과 반찬 만드는 법을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공부를 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겨울,
눈이 맹렬히 쏟아져 내리는 마당 한가운데 앉아 추위에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가족들의 옷을 빨아 널고, 제 또래의 친구들과 같이 뛰어놀고 싶었을 마음 내색하지 못하고  저보다 어린 동생을 챙기곤했다.
 
비가 내리는 한밤중에도 자다 일어나 꺼져가는 연탄불 가는 것들을 동생들은 마다할 처지가 아닌 것에 속이 상할 만도 했을 텐 데, 그저 묵묵하게 해주던 동생들.

그저 아이일 뿐이던 동생들이 집을 지키는 손 위의 나의 손과 발을 대신해 그것이 무엇이든 해야만 했던 그 시절이 나이가 들어가는 이제 와 떠오르게 되는 날이면 낯을 들 수 없을 만큼 염치없는 마음에.
 
나는,
그저, 아무 생각도
그저, 아무 마음도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미안함만 남는다.
 
모든 것을 입으로만 하는 내 말을 들으며
집안을 치우고
반찬을 만들고
제 옷을 제가 빨아 입던 동생들이
 
다 자라, 이젠
내 입성을 걱정하고
내 삶을 함께 의논하고
내 생활을 챙긴다.
 
그런 동생들이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가끔, 아주 가끔은 나는 여전 .누구에게도 줄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이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만 여전한 어린 시절과 같은 내 모습에 내가 초라해진다.
 
동생들은 어느새 자라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오돌오돌 비 맞은 쥐 마냥 측은한 꼴로 파들거리며 냉장고 안에서 두텁게 끼어가는 성에 마냥 냉기가 두텁게 앉아가는 몸을 안고 살아가는 나.

추위를 견딜 재간이 없어 시도 때도 없이 "커피 타 줘!"를 외치는 내 등쌀을 못 이기는 척, 한 컵 가득 커

피를 타다 퍼렇게 얼어가는 손을 입가에 묻고 어린아이마냥 호호... 불어대는 내 손안에 "뜨거워, 조심해." 하며 쥐어주고 돌아서는 동생의 등을 향해 객쩍은 웃음을 짓느다.
 
그러면서 "땡큐!!~" 를 소리높이 외치며 살아도 보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내가 참, 싫고 달갑지 않아서 먼 하늘에 던져 올려 하느님에게 “바꿔주세요!” 어린아이처럼 억지를 부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강윤미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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