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19)만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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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19)만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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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 객원필진
바깥구경이라고는 집밖 대문 안 마당이 전부이던 어린 시절, 동생들이 모두 제 가방을 찾아 어깨에 메고 학교에 가버리고 부모님이 일을 위해 집을 비우게 되면...
 
그때부턴 막내 동생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후 시간이 되기까지는 하루 종일을 혼자 지내곤 했었다.  
방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방으로
어쩌다 가끔은 넓은 마당을 휘청거리며 가로질러 끝에 있는 화장실을 두어 번.
 
하루 종일 혼자 집을 지키는 게 불안했던 아버지는 점심을 먹는 핑계를 대고 낮 시간에는 꼭 집엘 오셔서 함께 점심을 먹곤 하셨다.
 
점심이라 봐야 김치 한 접시에 어머니가 큰마음을 먹고 아버지 밥상에 올리기 위해 사오는 고등어 한 마리, 혹은 식육점에서 돼지고기라도 사오게 되는 날이면 그것을 삶아 고기는 반찬으로, 냄비에 남은 고기 삶아진 물엔 푸성귀 한 줌 손으로 뜯어 넣고 소금 한 수저 휘휘 저어 국그릇에 떠 국을 대신해 한 끼 밥상을 대신하곤 했었다.
 
그러고도 많지도 않은 그것을 먹다 아버지가 많아서 다 못 먹겠다며 늘 남겨두는 그 돼지고기 서너 조각, 생선 반 토막은 저녁밥상에 올라 우리 차지가 되곤 했었다.
 
그렇게 차려지는 밥상을 차려 먹고는 "호꼼 이시민 아이덜, 학교서 오큰 게... 이시라... 감쩌...",
"예... 강 옵써.."
다 낡은 싸구려 운동화를 발에 끼우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등이 왜 그리도 서운했는지.
 
혼자 늘 집안에만 있던 그 때는 전화가 울리는 것도 무서워 심장이 다 벌렁거렸었다.  새까만 전화기가 아무 예고도 없이 '따르릉...' 거리며 비명을 뱉어낼 때마다 나는 손이 떨리고 숨이 차올라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앉아 그저 멀뚱거리며 어서 빨리 벨이 멈추기만을 바라곤 했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는 동안 동생들이 차비라도 모아 사들고 들어오는 싸구려 잡지책 한권, 만화책 한권은 내게 소중하고 귀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사는 책들을 우리는 절대 버리지 못하고 벽 한쪽을 기둥삼아 고이 모셔두고 가끔 바라보며 뿌듯해 하고는 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동생들과 그 책을 신이 나서 밤잠을 설쳐가며 들여다보게 되던 철딱서니 없던 때.
 
그렇게 신주단지 모시듯 쌓아두었다가 주인이 집세를 너무 많이 올려 조금이라도 더 싼 집을 찾아 이사라도 가게 되는 때면 동생들과 나는 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이곤 했지만 결국엔 모두 버리고 이사를 가야만 했었다.
 
동생들은 달랑 차비만을 얻어 학교를 다녔지만...
그렇게 받은 차비조차 아껴
어쩌다 한 번씩 내 손에 사다 안겨주던
그 싸구려 잡지책 하나, 만화책 한권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통속적인 저질의 가치 없는 것들일 지 모르지만
그것조차도
내 손으로 가질 수 없던 나에게
 
그것들은 다닐 수 없는 학교였고
함께 할 수 없던 또래의 친구였으며
 
나를 가르치는 선생이자,
나갈 수 없는 두려운 바깥의 거대함에
안에만 갇혀 나가는 것에 두려움으로 벌벌 떨던
 
나의 눈을 뜨게 하는
나의 귀를 막지 않게 하고
나의 머리가 아둔해지는 것을
깨닫게 하던 인생의 스승 이었다.
 
그 많지 않은 읽을 거리 들을 취할 수 있던
그 때의 나
그리고 내 동생들
함께 했던 여물지 못했던 시절...
 
그 시간들은 지금도 여전히
간직하고 싶던 것이 많던
내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던 시간이자
내 동생들과의 애틋했던 추억 한 자루...
 
뜨끈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엎드려
찐 고구마양푼을 앞에 두고...
 
깨드득.... 거려가며 밤을 새워
동생들과 만화책을 들추던...
 
어린 시절이 그리운
어느 겨울의 늦은 새벽 시간...
 
싸구려 만화책 한권과
어머니가 쪄주시던 고구마의 달콤함이 그립다.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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