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군사재판 재심 확정, 이제 국회도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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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군사재판 재심 확정, 이제 국회도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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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4.3수형인 재판 재심결정의 의미와 과제
70년전 불법성 확인...진실규명.명예회복 단초
'군사재판 무효화' 4.3특별법 개정안 뒷받침돼야
제주4.3 당시 행해졌던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계엄 군사재판이 70년만에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제주4.3 수형인들의 군사재판(군법회의)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결정에 대해 검찰이 항고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4.3수형인 재심이 확정된 것이다.

이제 곧 제주지법에서 70년 전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첫 정식 본안 재판이 열리게 됐다.

이번 재심 결정이 내려진 데에는 무엇보다도 재판부의 결단이 컸다. 재판기록도 판결문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달라는 시대적 요구에 사법부가 응답을 한 것이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즉시상고를 포기하고 바로 재심이 열릴 수 있도록 한 검찰의 결단 역시 높이 평가할만하다.

절차적 논리 보다는, 재심 청구인 대부분이 구순을 넘은 고령인 상황, 그리고 4.3 군사재판의 적법성 및 실체적 진실규명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점을 인식해 재판부 결정을 전향적으로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법원과 검찰 모두 시대적 요구에 '응답'을 한 셈이다. 참으로 감격스럽고, 가슴 벅찬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청구인인 생존 수형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 군사재판에 의해 찢기고 망가진 세월의 억울함을 이제서라도 풀 수 있는 길이 열린다니 떨리는 감격을 멈출 수가 없다"고 밝혔다. 70년 세월 고통의 무게만큼 절실하게 환영한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번 재심 결정은 제주4.3 운동사(史)에서 사법적 절차를 통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이 이뤄질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수만의 양민이 학살되고 인권유린이 자행된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에 있어 수형 희생자 부분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이 시작된 것은 늦었지만 천만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3수형 생존자 대부분이 나이 구십이 넘는 고령이어서, 자칫 시간을 더 지체했다면 4.3수형인들이 '재심'의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 사건 자체에 대한 재심 자체가 매우 어려웠을 수 있었다.

4.3 당시 영문도 모른채 군.경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최소한의 적법한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행해졌던 계엄 군사재판에 의해 투옥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도민 4.3수형인은 약 2,53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제주도에서 고등군법회의로 불리던 불법 군사재판이 자행된 시점은 1948년 12월과 1949년 6월부터 7월까지 각각 14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실형을 언도 받은 사람들은 제주도에 형무소가 없어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이송돼 분산 수감됐는데, 형기를 채우고 출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열악한 형무소 환경 속에서 옥사하는 이도 있었다.

상당수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상부 명령에 따라 집단처형(총살) 됐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영장도 없이 임의로 체포하고, 재판절차도 없이 형무소로 이송된 후에야 죄명과 형량을 통보했기 때문에 4.3수형인에 관한 판결문이나 재판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초사법적 처형'이 자행된 것이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4.3수형 생존자들은 1948년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에서 구형법의 내란죄위반, 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의 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죄, 이적죄 등으로 1년~20년 사이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으나,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속에서 이제 구순을 넘긴 고령으로 아직까지도 평생의 한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

이제 곧 개시되는 재심은 청구인이 18명이지만, 사실상 2500여 수형인 전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형인들 입장에서는 70년 만에 정식 재판을 받으면서, 살아생전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이번 재심은 제주4.3 수형인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첫 사법적 절차라는 점과 동시에, 70년 전 군법회의에서 자행된 불법성을 역사적 심판대에 올린다는 의미를 갖게 한다.

사실 이번 재심의 가장 큰 특징은 재판기록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는 사상 첫 사례로 꼽히며, 과거사 문제 해결의 새로운 기준점 선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재심청구인들이 육지로 이송되어 교도소에 구금된 근거를 유추할 수 있는 기록들로는 재심청구인들의 이름과 나이, 직업, 본적지, 항변 및 판정(判定), 언도(言渡)일자, 형량 및 수감교도소가 기재돼 있는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군법회의분) 수형인명부', 그리고 청구인들 중 일부에 대한 범죄.수사경력회보 내지 군집행지휘서, 감형장 등 수형관련 문서가 남아 있다.

반면 재심청구인들에 대한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 등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유죄로 확정판결을 받은 사실이 증명되지 않으면 재심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재심대상 판결이 존재한다고 전향적 판결을 내렸다. 비록 판결문은 존재하지 않지만, 여러 정황상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고 그에 따라 교도소에 구금된 점은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당시 군법회의가 재심청구인들에 대해 적용된 일제의 계엄령 규정과 구 국방경비법 등의 죄목에 관한 재판권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당시 실제 제주도에 군법회의가 설치.운영됐던 것은 사실로 판단되는 점, 재심청구인들을 수감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이를 가능하게끔 하는 유권적인 결정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제시했다.

4.3당시 군법회의를 통한 불법적 재판이 행해졌다는 것을 사법부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심청구인들의 체포와 구금 과정에서 불법과 초법적 인권유린이 난무한 점도 확인됐다.

당시 제헌헌법과 구 형사소송법 관련 규정에도 불구하고, 재심청구인들의 경우 구속영장의 존재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일부 재심청구인들은 40일을 초과해 구금되었거나 조사과정에서 폭행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불법구금 내지 가혹행위는 제헌헌법 및 구 형사소송법의 인신구속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서 구 형법 제194조의 특별공무원직권남용죄 등에 해당돼 재심사유가 된다고 밝혔다.

청구인에 대한 정식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재심청구 소송을 통해 사실상 고등군법회의의 불법성이 확인됐고, 4.3수형인들의 피해 내용도 이미 드러난 셈이다.

이제 정식재판을 통해 과거 국가권력이 행한 잘못을 밝혀내고 바로잡는 일만 남았다.

그럼에도 4.3수형인 재심과 관련해서는 과제가 남아있다.

우선 재심 재판이 하루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4.3수형인들 중 상당수는 당시 사형을 언도받거나 한국전쟁 발발 후 집단처형으로 희생된 것으로 파악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고문 후유증 및 고령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현재 생존자들은 3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분들 역시 90세가 넘은 고령이어서 재판을 언제까지 지켜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재심청구인 중에서도 일부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청구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죽기 전에 '무죄'라는 선고를 통해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이는 이 분들이 평생 고통을 받아온 가슴 속 깊은 70년의 한(恨)이다.

불법적 군사재판의 존재가 확인됐고, 청구인들에게 자행된 불법구금과 인권유린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재심 재판을 길게 끌어갈 이유는 없다.

70년만의 재심 개시 결정이라는 결단을 내려준 법원과 검찰이 재심 본안 재판에서 이러한 점을 감안해 재판진행에 속도를 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러한 가운데, 국회도 이제 시대적 요구에 응답할 차례가 됐다.

이번 한차례의 재심만으로는 4.3수형인의 한을 풀어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에는 생존자들이 직접 나서 재심을 청구했지만, 앞으로는 수형인 유족들이 나서야 한다. 2530명 수형인 전부에 대해 명예회복을 하려면 몇년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를 일이다.

방법은 불법 군사재판에 대해 일체 무효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는 것이다. 이 법률 개정안은 지난해 오영훈 국회의원이 발의해 국회 계류 중인 상태에 있는데, 올해 4.3 70주년 추념식에 즈음해 각 정당의 '조속한 처리' 약속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표류 중인 상태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군법회의에서 내려진 판결 모두가 무효화돼, 4.3수형인 문제는 보다 진전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

재심청구인의 법정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 그리고 오랜기간 4.3수형인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에 헌신해온 제주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가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진 후 강조한 내용도 바로 이 부분이다.

사법부가 재심 개시를 결정한 것에 부응해, 국회도 이제 응답해야 한다. 그 답은 '제주4.3특별법'의 조속한 개정이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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