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책자를 펴내며
상태바
[타는 목마름으로] 책자를 펴내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대 제주 민주화운동의 그 역사를 살펴보면, 1979년말 사회인들과 학생들이 혼재된 사회문화운동 단체인 '수눌음'을 빼놓을 수 없다. 수눌음에 가입한 제주대학교 학생들은 1980년 제주대학교내 문화써클을 형성하고 지역문제를 중심으로 현실비판적 관점을 세워나가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 써클이 바로 '탐라민속문화연구회'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광주학살이 자행된 1980년을 전후해, 제주에서는 이러한 써클활동과 함께 교회를 중심으로 한 청년학생 모임이 활발히 전개된다. 또 서귀포지역 등에서는 야학 등을 통하여 사회문제에 대한 현실비판 학습이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가에서는 삼삼오오 비밀리에 모여서 현실문제를 고민하고 사회과학 학습을 하는 '언더'라는 비밀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 '언더'조직의 규모가 어느정도이고, 구체적 활동가가 누구였는지는 정확히 아는 이가 거의 없다. 그 만큼 이 조직은 철저히 '보안' 속에 운영되었고, 조심스럽게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다만, 이 언더조직과 관련된 학내외 인사 몇몇을 통하여 이 부분에 대해 약간의 확인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를 근거로 유추해 보면 이 언더조직의 학습은 철저한 커리큘럼 속에서 진행되었다. 학습과제는 주로 역사와 철학, 정치, 경제, 사회 등 종합적 인식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 학습을 통하여 사회문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그 원인과 타개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념 무장'은 이뤄졌고, 개인의 '나'가 아니라 민족과 국가 속의 '투사'로 성장하고 있었다.

언더조직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학내에서 만나도 서로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피라밋과 같은 조직형태에, '오더(order)'에 의해서만 움직임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언더진영의 학생들 역시 정치투쟁에 쉽게 나서지는 못했다. 광주에서의 시민학살 소식이 이곳 제주에까지 퍼져있었고, 공안당국의 감시가 삼엄했기 때문이다. 제주대학교 본관에는 안기부와 경찰이 상주했다.

이러한 가운데 1983년 '자유항반대투쟁'이 전개된다. 학내에서는 과학회와 써클별로 토론을 조직하고 유인물을 제작해 선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자유항반대투쟁 이후 교회를 중심으로 한 모임과 수눌음 모임은 정보기관의 압력 등으로 인해 해체된다.<제주대학교 교지 '한라산' 30호 참조>

1984년 말, 학생회 부활과 학원자율화의 전국적 열기 아래 제주대학교 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다. 그러나 직접적 정치투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언더진영은 숨을 죽이고 학습하고 내부토론을 전개할 뿐, 밖으로 나와 정치투쟁을 일구지는 못했다. 조직과 역량이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는 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제주에서 처음 개최되는 전국소년체전 개막식 하루 전날인 1984년 5월 13일.
당시 시민들이 가장 붐비는 곳이었던 제주시 중앙로 현대약국 3층에서 처음으로 전두환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1인시위가 벌어졌다. 그는 다름아닌 진희종씨였다.

그는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전남대 1학년으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에 합류해 마지막까지 계엄군에 항거하며 싸우다 투옥됐던 인물이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이 전국소년체전 개막식 참석차 제주에 온다는 말을 듣고 반정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난간 아래로 늘어뜨리고, 한손에는 횃불을 들고 다른 한손에서는 미리 준비한 유인물을 뿌리며 목청껏 "살인마 전두환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길거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며 술렁거리는 것도 잠시, 그는 곧바로 경찰에 연행됐다.

아직까지 제대로운 시위를 구경조차 못해본 제주도민에게 이 광경은 사뭇 생소한 것이었다. 시민들은 경찰에 끌려가는 그를 애처롭고 두려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 사건은 사실 1980년대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에서의 반정부 투쟁의 첫 사례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5년 2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합동연설회가 열리고 있었던 제주시 광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제주대 4학년인 장은심, 김옥임, 오옥만 3명이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민정당 정권 심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유인물을 뿌리는 반정부 시위가 터져나왔다. 이 시위는 학생운동권 진영에 있어 처음으로 반정부투쟁의 물꼬를 트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기나긴 침묵을 깨고 실로 의미있는 정치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수면 아래에서 학습과 토론을 하며 내부 준비를 해오던 "언더"진영이 드디어 수면 밖으로 뛰쳐나가 반정부 투쟁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터진 물꼬는 좀처럼 수그러들줄 몰랐다. 얼마없어 5월 광주학살 진상규명 시위가 열렸다. 처음보다는 좀더 세련되고, 조직적인 투쟁이 이뤄졌다. 1985년 5월 김계완, 강수경, 한연희, 강양희, 강정희 등 소위 언더 "5인방"이 일궈낸 값진 투쟁이었다. 처음으로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과 맞서 돌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 싸움에는 언더진영 뿐만 아니라 일반학생들도 대거 참여하면서 대중적 정치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데 그 의미를 갖게 했다.

이 과정에서 학외 인사에 대한 경찰의 탄압도 있었다. 당시 제주시내에서 사회과학서점인 '사인자'를 운영하던 진희종씨는 경찰에 전격 연행됐다. 경찰은 그를 연행한 후 지하 대공분실에서 혹독하게 취조를 했다. 5월 시위에 가담한 학생운동권 진영과 연계된 계보를 파악하기 위한 취조였다. 계속된 취조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자 그는 연행당시 경찰에 항거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즉심에 넘겨져 구류 10일을 처분 받았다.

앞서 시위를 벌인 학생들에게는 '유언비어 날포죄'라는 죄명이 씌워졌다. 장은심, 김옥임, 오옥만은 유언비어 날포혐의로 구류처분을 받았으며, 제주대학교당국은 이들에게 학사징계 처분을 했다. 김계완, 강수경 역시 마찬가지다. 구류처분을 받아 유치장에 구금됐는데, 이들에게도 학사징계가 이뤄졌다.

그런데 언더 진영에서 주도한 각 시위들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큰 결단'과 '용기'를 요구했다. 시퍼런 칼날을 세운 군사정권의 폭정 속에서 반정부 시위는 '극도의 공포' 그 자체였다. 1985년 5월시위를 주도한 한 여학생은 하루전날까지도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굵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고뇌에 찬 결단을 했다고 한다.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이들의 선도적 역할이 있었기에, 제주지역에서의 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항쟁이라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헤드라인제주가 6월항쟁 2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한 <타는 목마름으로>는 민주주의가 무참히 짓밟힌 1980년대 제주에서의 민주화운동 이야기에서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85년 2월 제주에서 있었던 '광양유세장 시위'에서부터 일련의 사건들은 마지막 정점인 6월항쟁과 밀접한 연관선상에 있다는 생각에서 기획취재의 시간적 범주를 1985년부터 1987년까지로 설정했다. 그리고 각 일련의 사건들은 연관성이 짙은 사건들끼리 한 범주로 묶어 취재를 했다. 또한 각 일련의 사건에서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안 외에, 그동안 한번도 조명된 적이 없는 '언더'진영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었다.

언더진영의 이야기를 각 사건과 연관시키는 것은 제주지역 민주화운동이 1987년 상반기까지 '언더지도부'의 역할이 큰데 따른 것이다. 물론 1986년 제주대학교 총학생회가 언더진영과 연대해 당선된 박희수 회장체제가 출범하면서 운동권진영에서 3명이 집행부로 들어간 후부터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집회도 많았다. 이듬해 출범한 송형관 회장 체제의 총학생회 또한 각종 시위 및 집회를 주도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언제나 언더진영 지도부와의 협의가 있었다. 언더진영은 1987년 5월 집회에서 극심한 내부갈등(일명 '선도적 투쟁'을 주창하는 그룹과 '대중적 투쟁'을 주창하는 그룹간의 갈등)을 겪다가 표면적으로는 1987년 상반기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해체된다. 때문에 1985년부터 1987년까지의 제주 민주화운동사를 정리하는데 있어 '언더'진영의 활동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세부적인 기획취재의 방법이나 의도에 대해서는 뒤에 <편집후기>에서 다루기로 한다. 다만 이 특별기획은 객관화된 사실을 기초로 해 야사적 이야기를 두루 수집하고 검증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밝혀둔다. 객관화된 사실은, 어줍기는 하지만, 언론보도를 근거로 하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당시 <제대신문>과 <제주신문>의 기사를 모토로 삼았다.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던 내용을 당사자 또는 관계자들로 하여금 검증받는 방식으로 기록했다.

책자 <타는 목마름으로>는 제주에서 있었던 민주화운동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현재적 의의를 짚어보고 제주발전에 기여 하는데 의미가 있다.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일의 공치사를 논하고자 함은 아니다. 잊혀져가고, 과거의 기억 속에서 묻혀버릴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들을 체계적인 정리를 통해 현재 속에서 계승하기 위함이다.

이 책을 발간하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책자 발간위원과 제주특별자치도, 그리고 6월항쟁 20년 제주사업추진위원회 관계자분들께도 고마운 말씀을 드린다.


2007년 가을

저자 윤철수

*<타는 목마름으로> 책자 및 기사의 1차적 저작권은 저자인 윤철수, 그리고 기사 및 책 속에 담긴 사진콘텐츠는 서귀포6월항쟁기념사회에 있습니다. 사진콘텐츠의 또다른 일부는 제주지역 6월항쟁 20주년기념사업회와 강호진, 양창용, 박희수, 고창후 등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