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정면충돌...'견강부회'인가, '과유불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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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정면충돌...'견강부회'인가, '과유불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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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막장 우려되는 예산갈등의 시시비비와 역발상
'사전협의=편성권침해', 왜 꼭?...계수조정 관행은 어떻게?

2015년 예산안 편성을 앞두고 원희룡 제주도정과 구성지 의장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의회가 정면충돌한 상황이 심상치 않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구 의장의 제안을 제주도정이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촉발된 이번 두 기관간 대립갈등은 자칫 새해 예산안 파행이라는 막장 상황까지 우려되고 있다.

초반 여론은 도의회의 '무리한 요구'라는 쪽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사전 협의'를 요구하는 배경이 의원 1인당 20억원씩, 41명 의원에 총 820억원의 재량사업비(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를 배정받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지면서 시민사회는 물론 공직내부에서도 비판과 성토가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뭇매를 맞게 된 도의회는 17일 긴급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 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숙의하는 등 다급해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은 나오지 않았으나, 제주도정에 화살을 겨냥했다.

'1인당 20억원'이 도의회에서 공식 요구되거나 발표된 사안이 아님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제안한 내용을 확대해석 또는 왜곡시키며 언론에 흘려보냈다는 '억울함'을 집중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마디로 도의회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나온 도의회 성명에서는 "원희룡 제주도정이 협치 대신 무단통치를 택했다"는 격한 표현에서부터, "견강부회(牽强附會) 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견강부회', 근거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어대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맞춘다는 의미다.

여론이 도의회에 대한 집중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제주도정이 활짝 웃는 것도 아니다. 그 불똥이 어디로 튀어 확산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음에, 제주도정도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예산편성 정면충돌 갈등상황, 어떻게 촉발됐나?

예산안 편성을 둘러싼 이번 갈등상황의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최초발단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새해 예산안 편성작업은 지난 9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져 왔다. 원 지사는 최근까지 부서별로 예산보고를 받으며 새해 예산안 편성기준을 정리해 큰 틀 준비를 진행시켰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의 예산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한 도의회와 제주도당국의 물밑 협의도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협의 초기에는 재량사업비 성격의 주민숙원사업비로 '1인당 10억원 설'이 크게 회자됐다.

도의원 1명에 일정액의 재원을 배정해주는 재량사업비 관행은 2008년부터 이뤄져 왔으나, 사업별 예산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2012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이 제도가 폐지됐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만 없을 뿐, 비공식적으로는 지난해와 올해에도 이 관행에 따라 예산편성이 이뤄져 온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전해진다. 보통 의원 1인당 민간경상보조금과 민간자본보조 등을 모두 합쳐 3억3000만원 정도가 편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10억설'과 '20억설'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관행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체 의원의 중지를 모아 공식적으로 요구되지는 않았다.

지역구 소규모 주민숙원사업 예산을 대폭 반영해야 한다는 데 있어서는 의원들 대부분이 뜻을 같이했지만, 재량사업비 자체를 크게 늘릴 것이냐, 아니면 예년과 같은 관행으로 계수조정을 통해 반영시켜낼 것이냐 하는데 있어서는 의원 내부에서도 이견이 적지않게 표출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구성지 의장의 지난 14일 긴급 기자회견은 크게 제주도가 예산편성을 확정하기 이전에 도의회와 '사전 협의'를 거치라는 것과 '일정규모의 예산범위 내 의회 의견 반영' 두가지 측면이 핵심이다.

물론 '10억' 혹은 '20억'의 구체적인 액수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정규모의 예산범위 내 의회 의견 반영'을 촉구한 부분에서 사전 협의 속에서 재량사업비에 관해 논의하자는 것으로 해석됐고, 구 의장 기자회견이 끝난 후 30분만에 열린 제주도정의 기자회견에서 이는 명확하게 전해졌다.

제주도는 '사전협의'를 '예산편성권 공유'로 해석하며 수용 불가함을 분명히 하면서, 의회에서 재량사업비로 도의원 1인당 20억원씩 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슬그머니 털어놓았다.

재량사업비가 감사원의 지적이후 폐지됐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요구가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밝힌 대목이다.

내년 가용재원 규모가 4000억원에서 500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20%에 육박하는 도의원 재량사업비 배정 요구를 들어주기는 곤란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표면적인 제안 거부사유로는 법적근거에 기인한 '예산 편성권과 심의권은 엄연히 구분된다'는 논리를 들었지만, 실제적 이유는 '재량사업비' 때문이라는 고백한 것이다.

제주도정의 설명만 놓고보면, 분명 도의회의 지나침이 매우 크다. 과유불급(過猶不及)에 다름 아니다.

물론 도의회에서는 '견강부회'라는 말로, 제주도정이 '20억원'이라는 하지도 않은 말까지 꺼내들며 여론을 왜곡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도의회 내부 일부에서 의견으로 오갔던 내용이 공식적 입장인 것처럼 포장돼 언론에 노출된데 대한 격한 반응들도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결국 제주도정의 '견강부회'냐, 도의회의 '과유불급'이냐의 감정적 논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사전협의=편성권 침해', 지나친 거부감 표출은 아닐까?

그러나 이번 일련의 갈등국면에서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느쪽이 옳고 어느쪽이 그른지, 기관 대 기관의 구도 속에서 이분법적 결론을 내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예산편성과 예산심의의 원칙을 분명히 함 속에서 제기된 사안의 내용을 갖고, 옳고 그름, 시시비비를 가려주면 될 일이다.

이를테면 예산편성은 도민의 다양한 목소리 혹은 지역주민 의견은 반영하되 충분한 사전 타당성 검토를 거쳐 이뤄져야 한다는 것, 재량사업비 편성은 편법이라는 것, 선심성 혹은 소모성 사업으로의 편성 또는 계수조정 증액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관점 속에서 정리해 본다면, 첫째 예산편성권은 제주도에 있으나 권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편성과정에 어떻게 제주도민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시켜 낼 것인가에 방점을 둘 필요가 있다.

사실 주민참여예산제가 시행 3년째이나 읍면동별 '떡반 나누기'로 전락한 실정이고, 지역별 배정액의 생색내기 수준일 뿐만 아니라 편성되는 사업들도 지나치게 경직된 점들이 있다.

예산편성과정에 주민들을 참여시킨다는 시행취지와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따라서 주민의견을 확장시켜 수용한다는 차원에서 각 지역의 민의를 대변하는 도의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도청 각 부서별로, 행정시별로 주민의견 수렴은 늘상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협의과정 속에서 지역주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업, 시급한 지역현안, 혹은 복지 사각지대의 내용들이 다시 점검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전협의=편성권 침해'라는 식의 논리도 지나친 거부감의 표출이다.

둘째, 편성과정에 사전협의 루트가 개설된다면, 제주도와 도의회 모두 예산은 '제주 미래발전'이라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전제돼야 한다.

표(票)를 의식한 선심성 예산도 철저히 배제돼야 하고, 지역주민들의 숙원사업이라 할 지라도 체크 리스트 속에서 예산편성 기준에 따른 우선순위 및 타당성, 효과성 분석 속에 반영여부가 결정돼야 한다.

무조건 예산을 편성해내라 식의 '압박'이 있어서는 안된다.

내년에 제주도정이 역점적으로 해야 할 사업이 무엇인지, 각 분야별 사업 우선순위 설정 및 민간보조 사업 지원 원칙 등에 대한 큰 그림을 우선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원칙이 전제된다면 제주도당국이 사전협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셋째,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의원 몫'의 재량사업비 편성은 전면 중단돼야 하고, 의회에서 제안하는 사업 역시 '선(先) 계획서 제출'로 관련 부서별 투명한 사전 검토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동안 재량사업비가 문제가 됐던 큰 이유가 의원 개별적 루트를 통해 들어온 민원, 지역행사 등 대부분 즉흥적 또는 소모성 사업에 쓰여졌다는데 있다.

민간자본보조 사업 등에 있어서도 사전에 사업계획의 타당성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채 편성되면서 소중한 혈세가 낭비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결국 관련부서 공무원만 책임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재량사업비를 전면 금지시키는 대신, 제주도정은 도의원들의 공약과 지역내에서 건의받은 사업내용들을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예산반영 여부를 체크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종전 관행적으로 해온 '000의원 몫'이 아니라 '000의원 제안'으로 해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민선 지방자치시대 들어 예산시즌만 도래하면 반복되는 문제가 '일방향적인 편성'과, 도의회 예산심의 계수조정에서 '증액잔치' 논란이다.

도의회의 사전협의 제안이 '재량사업비 관철 목적'으로 비춰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으나, 매년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원칙의 전제' 하에 예산편성 사전협의를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 하겠다.

사전협의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그 다음 부담갖게 되는 쪽은 도의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편성과정에서 의회와의 공개적 소통이 이뤄진다면, 계수조정의 병폐도 조금은 개선되지 않을까. 막장으로 가기 전, 두 기관의 수장의 대타협이 절실하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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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음다 2014-10-19 12:18:54 | 175.***.***.103
역발상 제안 좋습니다
순수 지역주민 의견수렴 내용 전달해 예산반영 하자는 생각이고 압력 가할 목적 아니라면 사전협의 수용할만하죠. 그래야 제주도도 계수조정때 도와 협의해라 말할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