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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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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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요즘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를 공사하느라 구럼비 바위를 깨는 굴삭기 소리가 요란하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유치반대위원회가 결성된 2007년 5월 17일을 기준으로, 10월 17일 현재 햇수로 7년, 달수로 77개월, 날수로 2345일이 지났다. 강정마을회의 발표에 따르면, 그동안 650명이 연행되었고, 현재 210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며, 24명이 구속되었고, 지금도 양윤모 선생, 송강호 박사, 박도현 수사, 강부언 어르신, 김은혜 양은 수감되어 있다.

그런데도 국무총리실에서는 ‘국방부-국토교통부-제주도 간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공동사용협정서’ 체결을 근거로 강정마을 갈등이 해소되었다고 선언했다. 만일 총리실 주장대로 제주해군기지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었다면, 제주해군기지문제로 사법 처리된 이들을 모두 사면하고 현재 구속된 이들을 모두 석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다.

현재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50퍼센트 정도 진척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던 구럼비 바위는 산산조각이 났고, 100여개에 이르던 마을친목계가 대부분 해체되어 돈독하던 마을공동체는 완전히 깨졌다. 해군기지에 대한 의견이 찬반으로 갈리면서 절친하던 이웃 간에 등을 돌렸고, 선후배 간에 서먹서먹해졌으며, 가까운 친척 간에도 거리가 멀어졌다. 그로 인해 마을주민들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시커멓게 타 들어가고 있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헤드라인제주>

2007년 6월에 필자는 제주해군기지 부지 선정을 주도했던 해군본부 김모 소장(그 후 그는 해군참모총장이 되었고 전역한 이후에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되었다)을 만난 자리에서 부지선정의 부당성을 이야기하면서 원점에서 재검토해주기를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그는 그것은 불가하다면서 해군이 깨지든 강정마을이 깨지든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 그의 뜻대로 강정마을에 그 좋던 구럼비 해안이 사라졌고, 마을공동체도 깨졌다. 최근 정부에서는 상황종료를 선언했고, 제주도정은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강정마을의 고통과 갈등은 안중에도 없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강정마을 문제만도 아니요, 제주도 문제만도 아니다.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문제가 발단이 된 2007년 4월 26일 열렸던 마을 임시총회에서 당시 마을회장이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했더라면, 해군지기 문제는 찬성이든 반대이든 마을 내부 문제로 끝나서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대한 마을문제를 주민 유권자 1,200여명 중 극소수인 87명만 참여해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바람에 마을주민 간의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군기지문제는 강정마을 내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앞으로 제주도가 군사기지의 섬으로 가느냐, 평화의 섬으로 가느냐를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절대보전지역이자 유네스코 생물권지역을 훼손하면서까지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하나, 제주해군기지가 제주경제발전에 디딤돌이냐 걸림돌이냐를 놓고 도민들 간에 찬반 논란이 많았다.

특히 2009년 8월 김태환도지사 주민소환 주민투표를 놓고 도민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당시 행정의 협조 아래 투표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가(可)가 되든 부(否)가 되든, 제주해군기지문제는 제주도만의 문제로 일단락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제주도정은 투표를 무산시키기에만 급급해 도민들 간의 갈등해소 기회를 놓쳤다.

해군기지건설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관련된 문제이고, 근본적으로는 생명평화와 관련된 문제이다. 하여 전국의 평화인권단체들은 안보를 위해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정부 논리에 맞서 평화는 평화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을주민과 제주도민들이 지쳐 있던 2011년 3월을 전후하여 이른바 전국의 시민, 인권, 평화, 종교 단체들이 하나둘씩 강정마을로 모여들기 시작하여 7월에는 100여개 단체가 연대하여 범국민대책회의가 결성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해군기지문제는 전국 이슈가 되었고, 선거 때마다 중요 쟁점이 되었다.

제주해군기지는 동북아 및 세계평화와 관련된 것이기에 우리끼리의 찬반논쟁을 넘어서는 문제였다. 기지건설이 현실화되면서 미국, 유럽, 일본 등의 평화 인권단체들이 강정마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2012년 9월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주행사장인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가까운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그 어떤 의제보다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평화주의자들은 제주해군기지가 미국과 중국의 세계패권 싸움에 말려듦으로써 세계평화를 심각하게 해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강정마을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강정마을회는 국내외 인사들에 의해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는 마을발전, 제주경제, 국가안보, 세계평화 등 많은 문제와 맞물려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를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짊어지우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주민들 대부분은 지쳐있다. 그들은 정부와 도정뿐만 아니라 외부단체들에 대해서 다분히 냉소적으로 되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일들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다. 지난 주말부터 강정마을에서는 마을이 황폐화되는 것을 가슴 아파하는 시민 5천여명으로부터 3만권의 책을 모아 ‘해군기지문제로 상처 입은 강정마을과 책을 매개로 평화의 에너지를 나누기 위한’ 이동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지금까지 이명박 ․ 박근혜 대통령과 우근민 도지사는 해군기지문제는 전임자가 결정한 일이라며 적극적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해군기지 반대 목소리가 잦아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한 나라와 도정을 책임진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이전 정부나 도정의 잘못에 대해서도 사과를 해야 한다.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 부지 선정과정에서부터 공사과정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을 바로 잡으려다가 수많은 이들이 연행되고 구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화롭던 마을 공동체가 깨지고 말았다. 정부가 제주해군기지문제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려면, 그동안 사법 처리된 이들을 전부 사면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우근민 도지사는 대한민국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를 대표하여 강정마을 주민과 제주도민들에게 분명한 사과를 해야 한다.

‘보끈 콩에도 싹이 난다’는 제주속담을 믿고 싶다. 새카맣게 타버린 마을주민들의 마음에 다시 생기가 돌고, 강정마을이 일강정(제일강정)으로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다시 일어설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우선 그동안 마을주민들이 흘렸던 피와 땀과 눈물이 고귀하다는 걸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애향기념관(생명평화기념관이라 해도 좋다)을 지어 지금까지 과정을 수백 권의 책과 수만 장의 영상으로 정리하여 대대손손 전하고 세계만방에 알렸으면 한다. 그리고 정부와 도정에서 추진하는 마을발전계획과 여러 단체에서 생각하는 생명평화마을만들기도 마을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진행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강정마을 주민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고, 새카맣게 타버린 콩에서 싹을 틔우는 길이다.<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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