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눈으로 꿰뚫린 제주..."빨간불 왜 무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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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눈으로 꿰뚫린 제주..."빨간불 왜 무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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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자문위, '더 좋은 제주사회 만들기' 분과위원회 개최
제주사회 문제점 낱낱이 지적..."영어표기 있으나 마나에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있어요. 통행이 뜸한 도로에서 신호등은 분명 빨간불이었는데, 옆길로 커다란 트럭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거에요. '뭐 이런 경우가 있지?'라고 한참을 생각했죠."

지난 2005년 제주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더글라스 한슨(Douglas Hanson)씨에게 처음 본 제주는 '이상한 땅'이었다. 적색신호에서는 멈춰서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조차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험을 치르지 않고 한국면허증을 취득했기에 한국에는 뭔가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줄 알았어요. 뒤늦게서야 많은 운전자들이 적색신호를 무시하는 것을 알았고, 이런 외진 곳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됐죠."

부끄럽게도 그들은 제주사회의 고질병을 꿰뚫어봤다. 누군가는 쉽게 지나칠 수 있을 문제일지 몰라도 그들은 직접 경험하고 느낀 점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그러면서 '더 좋은 제주사회(For better Life in Jeju)'를 만들기 위한 제언을 건넸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 외국인자문위원회는 13일 오후 3시 설문대여성문화센터 3층 회의실에서 외국인 자문위원회 워크숍을 개최했다.

제주도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10명 내외와 자문위원 10여명, 다문화가족담당.정보서비스담당 등의 관계 공무원 등이 참석해 진행된 이날 워크숍에서 토론자들은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제주사회의 문제점과 어려움 등을 가감없이 털어놨다.

   
13일 열린 외국인자문위원회 워크숍. <헤드라인제주>
   
13일 열린 외국인자문위원회 워크숍. <헤드라인제주>

# "제주에 살고 싶어도 비자문제 때문에 불가능"

발제에 나선 마이클 밀른(Michael John Milne) 외국인 자문위원회 생활.인프라 분과위원장은 지난 10월께 제주 곳곳의 외국인들로부터 전해들은 크고 작은 의견과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외국인들은 제주 전체적으로 쓰레기가 너무 많으 수거함이 더 필요하다는 점, 버스노선표시기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점, 제주의 주택과 아파트에 비효율적인 문과 창문틀이 많아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특히 교통법규 준수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외국인들이 문제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과위원회는 이 문제만으로도 워크숍을 진행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밀른씨의 경우 제주에 거주하고 싶어도 비자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하소연을 털어놨다.

그는 "저는 제주한라대학에서 12년간 근무를 하고 8년전에 타일랜드 사람과 결혼했다"며 "그런데 비자 문제로 인해 제주에 정착하려고 노력을 기울여도 성공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밀른씨는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해서 가정의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 했는데, 요리사인 아내가 비자를 얻기 위해서는 E-7비자를 얻는 수 밖에 없었다. 즉 아내가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해 식당을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E-7비자는 특정활동 비자로 전문직에 근무할 경우 취득이 가능한 비자다. 요리사인 밀른씨의 아내는 결국 현행법상 식당을 개업하지 못하면 이 비자를 취득할 수 없다.

밀른씨는 "제 아내는 아이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거의 파트타임 수준의 일밖에는 허락되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더 제주에서 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 "이게 뭐에요? 'Sinsigaji'가 영어라고?"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베낭족들을 위한 숙박업소인 '백팩커'를 운영하는 딘 브라운(Dean Brown)씨는 외국인 베낭여행객들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제주올레길이 유명세를 타면서 최근들어 외국인 베낭족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이들을 맞이하는 대비가 너무나도 미흡하다는 것이다.

브라운씨는 "지금 설치된 버스정류소는 영어 지명도 제대로 표기되지 않았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알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또 "버스정류장을 안내하는 시간표나 모니터도 어느곳으로 가는지 모르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지명과 관련해서도 "서귀포시에 신시가지가 있는데 영어로 'Sinsigaji'라고 표기돼있다. 이건 영어가 아니"라며 "외국인들이 보고 알아볼 수 있는 표지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버스정류장 안내표지판에 버스 그림을 넣어서 누가 봐도 정류장인 것을 알게하고, 출발지와 도착지를 함께 적는 것이 아니라 버스가 도착하는 장소만 표지판에 넣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브라운씨는 "영어만 사용하도록 하는 영어교육도시로 가는 버스정류장에도 지명이 영어로 표시돼 있지 않다"며 이의 개선을 요구했다.

   
13일 열린 외국인자문위원회 워크숍. <헤드라인제주>
   
딘 브라운씨가 교통과 관련한 제안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교통법규 무시하는 한국인 "교통신호작동기라도 설치해요"

더글라스 한슨씨는 교통법규 준수의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오늘날 한국의 고속도로 상 사망률을 보면 비록 감소추세이긴 하지만 OECD국가에서는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슨씨는 "특히 제주의 사고율은 전국평균을 넘고 있는데, 이는 많은 관광객이 차를 렌트해 제주의 도로와 운전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하는 탓도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그는 "도로교통의 질서와 법률을 자신만의 이유에 부딪히며 문제를 발생시키는 운전자들도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이런 요소들이 한국에서의 운전을 조금은 위험하고 무서운 경험으로 만들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적한 읍면지역에서 운전자들이 신호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례를 꺼내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시골지역의 도로는 교통흐름이 멈추는 시간지정 신호등을 유지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다"라며 "쓸데없이 긴 시간을 기다리지 않도록 교통신호작동을 설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슨씨는 "센서가 신호등에 근접해 오는 차량을 감지한 후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진입차량이 없으면 녹색신호를, 차량이 있으면 적색신호를 보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량들이 기다리거나 멈추는 횟수를 줄이면 신호등을 무시하는 차량들도 줄어들 것이고, 교통안전율도 높아질 수 있다"며 "이런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은 무척 저렴하고 설치도 쉽자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제안했다.

# "외국인 서비스 발전시키는 글로벌센터 건립 필요"

마르샤 보고린(Marsha Bogolin)씨는 제주글로벌센터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린씨는 "제주에 살고있는 외국인의 정확한 수요를 파악하고 목적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글로벌센터 건립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보고린씨는 "센터는 외국인이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 등을 책자로 발행하고, 외국인 담당 부서간 원활한 공유를 하는 등의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글로벌센터의 예를 들며 "서울글로벌센터는 다문화가정센터와 이민센터 등과 공유해 협조를 이끌어내면서 서비스를 더욱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장은 서울글로벌센터장과 정례회의를 최고 우선순위로 반드시 지키고 있다"며 "외국인들 직접 참여하는 포럼을 진행하는 등 제주지사께서 직접 진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라 믿어진다"고 피력했다.

한편 제주도 외국인자문위는 현재 △관광분과위원회 △생활.인프라분과위원회 △제주사회의 이해분과위원회 등 3개 분과로 나뉘어져 활동하고 있다. 21명의 위원 중 외국인은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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