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바닷가에서 듣는 천상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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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바닷가에서 듣는 천상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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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 윤용택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독일 라인강 중류의 강기슭에는 지나가던 뱃사람이 바위 위에 있는 요정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취하여 배가 암초에 부딪혀 물속에 잠긴다는 언덕이 있다. 로렐라이 전설이 실제의 사건에서 나온 것인지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요즘 강정 바닷가에 가면 너무나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을 실제로 들을 수 있다.

지난 6월 21일 밤 10시 경 바다내음을 맡으려고 강정포구로 갔다. 음력 5월 2일이라 물때는 아홉물에 거의 만조 시각이었다. 하늘은 맑아 별들이 총총이고, 바닷물은 포구 가득히 출렁이고 있었다. 바람은 거의 없었지만 작은 파도가 번갈아 밀려오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데 멀리서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대금인지 퉁소인지 파이프오르간인지 팬플룻인지 알 수는 없지만 관악기 소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아무도 들어줄 이 없는 깜깜한 밤중에 누가 바닷가에서 연주하는 것일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강정포구의 남방파제 부근이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 연주의 주인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아 아 아아, 아아 아 아아, ~’ ‘아아 아 아아, 아아 아 아아, ~’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구슬픈,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소리만 있을 뿐 사람은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뭔가에 홀린 게 아닐까. 그렇지만 이런 체험도 드물 것 같아서 삼십 여 분 동안 혼자서 그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방파제가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면서, 그리고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면서 내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렇더라도 어떻게 육중한 시멘트 덩어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자연이 낼 수 있는 최상의 소리요, 천상의 음악이었다.

다음날 동료들에게 지난 밤 이야기를 했더니 두 가지 반응이었다. 하나는 내가 환청을 들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게 사실이라면 대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오늘 그것을 확인하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강윤복 선생과 같은 학과 이명곤 교수가 동행하기로 하였다.

6월 22일 밤 9시가 넘어 제주시에서 출발했다. 막상 사실여부를 확인하러 갔는데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도 되었다. 강정바다에 도착하니 거의 11시가 되었다. 음력 5월 3일, 물때는 열물이고, 만조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다행히도 어제와 거의 같은 조건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다가갈수록 더 크고 아름다운 소리였다.

강 선생은 자신이 예상했던 소리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면서 여기에 피아노반주만 곁들이면 그 자체가 황홀한 음악이 될 수 있다고 감탄하였다. 그리고 이 교수는 이 소리 자체가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한참을 감상하고, 녹음하고, 사진도 찍었다. 손전등을 방파제 바닥에 비춰보니 ‘구럼비의 절규, 강정의 눈물’이라는 현수막이 깔려 있었다. 아마도 이전에 누군가 아름다운 그 소리를 듣고 그렇게 표현한 것 같아 보였다.

같은 노래도 듣는 이에 따라 달리 들리기도 한다. 그 소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 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구럼비가 파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구럼비를 파괴하지마, 파괴하면 안 돼, 그것은 자연에게, 인류에게 큰 죄를 짓는 거야, 파괴하지마, 파괴하지마, 신이 준 보물을 그렇게 파괴하면 안 돼’라고 하는 천상의 명령으로 들리기도 하고, 강정바다의 절규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섬의 하루’를 만든 양동규 감독도 지난 해 이맘때쯤 그 소리를 들어서 녹음한 적이 있고, 그것을 올해 4.3예술제 출품작에 음향효과로 썼다고 했다.)

윤용택 제주대 교수. <헤드라인제주>
강정에서뿐만 아니라 비슷한 조건이 갖춰지면 어디서든지 그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해서 자정이 되어 법환포구로 갔다. 거기에서도 비슷한 곳을 찾아 귀 기울여 보았지만 파도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내친 김에 서귀포항으로 가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 어딘가에 비슷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정바닷가에서 듣는 자연의 소리는 강정의 아픔과 겹쳐져서 범상치 않게 들린다.

종교인들은 기적이 있다고 하고, 철학자들은 기적은 없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강정포구에서 들리는 소리를 천상의 음악이라 경외하고, 또 다른 이들은 단지 시멘트 덩어리가 우연하게 만들어낸 소리일 뿐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그것을 들어보면 너무나 아름다워서 단순한 소리(sound)를 넘어 신비로운 음악(music)이라는 것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올 여름에 많은 도민과 관광객들이 강정바닷가를 찾아 자연이 내는 그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가을 세계자연보전총회(WCC) 때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환경지도자와 관광객들이 강정바닷가가 들려주는 천상의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것은 제주가 세계인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 될 것이다. <헤드라인제주>

<윤용택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강정 방파제에서 바라본 강정 해안 전경. <사진=윤용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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