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대항하는...그들은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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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에 대항하는...그들은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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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의 시로 전하는 삶이야기]<44>결국 희망은 '인간'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제도 아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형제이며 자매라고 배웠다. 재산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이나 부족한 사람들과 나누라고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 다 중요한 것은 대지를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다. 우리는 대지를 우리의 어머니라 여긴다. 그 가슴으로부터 우리는 영양분을 취한다. 어머니 대지는 우리가 태어났을 때 우리에게 생명을 주며,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다시 우리를 자신의 자궁 속으로 맞아들인다.
- 아메리카 인디언 다코타 族, 레너드 펠티에의 법정 최후진술 중에서

오늘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해서입니다. 저가 읽은 책들 중에서 그 ‘인간’을 다룬 책 4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가 책 많이 읽은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고 혹 저어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평수나 투기한 땅의 크기 등을 자랑하는, 자기 것만 챙기는 이 천박한 세상에서, 나도 자랑할 그 무엇 하나쯤은 있어야 되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런 자랑을 귀담아 들어줄 고운 ‘인간’들이 있으니 나의 자랑도 공허한 허세만은 아니리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4권의 책은 모두 ‘증언문학’의 범주에 드는 것들입니다. 증언문학은 폭력과 살육의 역사로부터 살아남은 ‘인간’들의 생생하면서도 간절한 절박함의 기록입니다. 그것은 또한 과거의 재현에만 머물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현재화 하여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문학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의 증언입니다.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2차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하에 있었던 프랑스에서의 상황을 다룬 작품입니다.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과 이숙의의 「이 여자, 이숙의」는 해방 이후 남한의 빨치산 투쟁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네 작품의 공통점은 증언문학이라는 형식 말고도 그 내용에 있어 ‘인간’에 대한 천착에 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불의의 권력에 대항하고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활동가들이거나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투쟁과정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포로가 되어서 온갖 고초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성이 안전히 파괴당하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끝내 간직할 그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빨치산의 딸」은 1947년부터 비합법 활동을 시작한 이른바 '구빨치'였던 부모의 삶을 다룬 실록소설입니다. 언제라도 뒷주머니에 자기 것을 챙기는 요즘의 세태와는 달리, 자기들 굶주림엔 아랑곳없이 동지를 먹이려는 인간미를 보려거든 「빨치산의 딸」을 보십시오.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상을 물린 그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일반대원들이 아침 먹는 것을 살펴보았다. 당 간부나 일반대원이나 차림은 거의 비슷했다. 신임 군당 위원장이라고 그만 특별대우를 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특별대우지만, 한 번의 오류를 그냥 지나치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덫이었다. 간부나 일반대원이나 특별대우를 한두 번씩 받 다보면 그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누군들 편안하고 좋은 것을 싫어하겠는가.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어느 사이엔가 관료주의가 흉측한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것이다.
- 정지아, 「빨치산의 딸」중에서

「이것이 인간인가」는 작가 자신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기록을 다룬 것입니다. '극한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도, 간단한 일 도 절대 아니지만 독일인, 단신들은 그 일에 성공했다. 단신들의 눈앞에 온순한 우 리가 있다. 우리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반란행위도, 도전적인 말고, 심판의 눈길조차 없을 테니까…. 우리는 망가지고 패배했다. 이 수용소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해도, 마침내 우리의 식량을 마련하는 법을 배우고 고된 노동과 추위를 견디는 법을 배웠다 해도, 그리고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중에서

「처절한 정원」은 ‘반인륜적 범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처절한 상황 속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첫 쪽을 읽기 시작하면 바로 그 ‘인간의 모습’에 빠져들 것입니다.

살인자는 자신이 목숨을 빼앗은 사람들의 삶과 영원한 시간을 대신 누릴 권리라도 있는 양 아직도 자유로운 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법정이 살인자에게 어떤 형 벌을 내리는지 보려고 합니다. 빛나는 권위의 상징인 법정이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 들의 한을 풀어줄 것이지 보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과거 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미셸 깽, 「처절한 정원」중에서

「이 여자, 이숙의」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진실되고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신념과 노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로당 경북도당 위원장 박종근의 아내이자 ‘무명옷 입은 선생님’으로 회자되던 이숙의 선생의 일생이 감동적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이 책은 저가 존경하는 양금석 선생께서 강력 추천해준 덕분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리고 그를 믿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조국을 사랑했 다는 것, 조국과 운명을 함께 했다는 것이다. 뜨거움으로 눈을 감으면 지금도 나 는 흰 구름을 타고 태백산맥, 소백산맥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의 모습을 본다. 언제인가 부석사에 올라 아득한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 다. 사회주의가 어떤 것인지, 공산주의 가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를 추 구하면서 진실되고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신념과 노력이 있었을 뿐이다.
- 이숙의, 「이 여자, 이숙의」 중에서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이 차별과 야만의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것은 ‘인간’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그것은 조정래가 「인간연습」에서 말한, ‘새싹 파릇파릇 돋는 너른 초원에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만발한 꽃밭’인 사람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려는 순정을 다 바치는 진정성의 운동입니다. 참 평등 평화가 구현되는 그런 인간사회에 대한 열망입니다.
결국 희망은 ‘인간’입니다.

지금도 만주 들판에는 삼전 三田이 전해오는데
일제 때 쫓겨 들어간 우리 조상님들이
눈보라 속에서 맨손으로 일궈낸 논을 3등분해
하나는 독립운동하는 데 바치는 군전 軍田으로
또 하나는 아이들 학교 세우는 학전 學田으로
나머지 하나는 굶주림을 이겨내는 생전 生田으로
단호히 살아내신 터전이 바로 삼전인데
- 박노해의 시 「셋 나눔의 희망」 전문

아직도 그런 사회에 대한 희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이 설쳐대는 이 시대, 불타는 분노를 잠시 접고 ‘인간’을 향해 이 책들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장담하건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그런 세상의 그림이 저절로 그려질 것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행동주의자 레너드 펠티에의 당당한 외침이 정말로 ‘자랑스런 인간다운 인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착취자들에게도 연민의 정을 느끼는 그런 통 큰 인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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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우 2011-11-25 09:50:03 | 122.***.***.228
우리 성님은 글도 잘 써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