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툭툭치며 볼일 보던 '돗통시',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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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툭툭치며 볼일 보던 '돗통시',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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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35> 돗통시 문화

제주-충북 민예총 문화교류를 충주 쪽에 가게 되었는데요. 충주 목계나루 상점 담배가게의 화장실이 70년대의 동네 공동변소 수준이어서 옛 생각이 나게 하더군요. 오늘은 제주의 옛 화장실 즉 돗통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주의 옛 화장실은 이제는 제주민속촌에 가야 남아있는데요. '통시' 또는 '돼지가 있는 변소'라는 의미에서 '돗통시'라고 합니다. 돌로 돼지우리를 만들고 그 한쪽에 한 자쯤 높이로 돌을 높이 쌓은 데 디딜팡(넓적한 받침돌) 두 개를 얹어놓으면 바로 화장실이 되었죠. 그러니까 지금처럼 사방이 딱 막히고 안에서 문고리 단단히 잠그는 그런 장소가 아니라, 탁 트인 채 대자연과 호흡하며 일을 보게 되는 거지요.

다른 누가 보거나 말거나 상관없이요. 옆집 사람들도 다들 꼭 같은 구조니까 서로가 같은 입장이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서로 간에 허물이 없어지고 눈치 보지 않게 되는 거예요. 닫힌 사회구조가 아니라 열린 사회였다는 겁니다.

서로가 똑 같은 조건이라면 이것 자체가 '부끄럼 없는', ‘아무 문제없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어요. 아프리카의 어느 자연부족 사람들이 젖가슴이나 자기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렁드렁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처럼요. 현대의 사람들처럼 '부끄러워서' 또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문을 꽉꽉 걸어 잠그지 않아도 되었다는 거지요. 여기서도 역시 공동체 문화의 정신이 나오게 되네요.

현장 촬영을 해볼까요? 디딜팡 아래에는 검은 도새기(돼지)가 똥을 받아먹으려고 꿀꿀거리며 달려드는데요, 옆에 놓여있는 긴 나무 막대기로 ‘저리 가라!’고 돼지를 툭툭 치면서 일을 봅니다. 그래도 돼지는 저의 먹이를 눈앞에 두고 한사코 먹으려고 필사적으로 달려듭니다.

어쩌다 설사가 돼지 머리에 떨어지면 돼지가 머리를 두루룩 털고 그 파편들이 여기저기로 튀고. 그래서 설사가 나올 것 같으면 미리 돼지가 오지 못하게 저만치 떨어뜨려놓았다가 조금씩 나오게 조정을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따라주지 안잖아요. 한 가락 쯤 싸곤 엉덩이를 들고 돼지를 내쫓고, 또 한 가락 쯤 싸고 내쫓고. 이런 희한한 배설법의 뒤끝에는 항상 돼지가 막대기로 두 어 대 더 맞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배설과 탐식의 현장이고, 돼지와의 전쟁이 되는 거지요.

그림이 상상이 됩니까? 이걸 불결하다거나 비위생적으로 봐서 1970년대 소위 '새마을운동'으로 제일 먼저 이 통시와 초가지붕을 개량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들어 놓은 '똥통'이 등장합니다. 똥이 고여서 썩는 그 냄새하며 답답한 공간이 더 비위생적이었지요.

'통시문화'는 자연 순환구조입니다. 사람이 배설을 하고 그 배설물을 돼지가 받아먹고 돼지의 배설물은 다시 보리짚 등과 섞여 천연적인 퇴비 거름이 됩니다. 통시에 쌓여있는 거름을 내는 것을 우리는 ‘걸름낸다’고 합니다. 헤진 갈중이를 입고 고무신을 신고 통시 안으로 들어가서 쇠스랑으로 잘 삭은 짚더미를 한 겹씩 걷어냅니다. 이 짚더미 속에는 ‘빼비’라는 놈들이 살고 있는데요. 개미 비슷하게 생긴 놈인데, 엉덩이 쪽에 침이 있어서 이놈한테 물리면 되게 아픕니다.

고무신은 거름 때문에 미끌거려서 자꾸 벗겨집니다. 돼지는 저의 집 속에서 꽥꽥거리며 울부짖습니다. 아마도 저의 터전을 강탈해가는 데 대한 항변의 표현이겠지요. 더 크게 울면 고무신으로 한 대 더 맞을까봐 더 이상 꽥 소리는 못합니다. 이렇게 퍼낸 빈자리에는 다시 보리짚을 채워 줍니다. 그러면 돼지도 만족해서 저의 집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지요.

퍼낸 거름은 집 앞의 올래에 네모지게 잘 단장해서 쌓아놓습니다. 철이 되면 동네 집집마다 거름더미들이 놓여있어 은근한 그 향내가 동네 가득 번지기도 했습니다.

이 잘 삭인 거름을 밭에 뿌리면 보리 등 농작물이 더 잘 자라게 되고 수확한 보리짚은 다시 통시로 들어가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음식물 쓰레기는 -당시는 어렵게 살 때니까 많이 나오지도 않았겠지만- 나오는 족족 돼지가 먹어치워서 지금 같은 쓰레기 대란이 발생하지도 않았지요.

이 자체가 자연과 함께 했던 제주선조들의 삶의 지혜였지요.

당시에는 뒤처리로 보리짚을 부드럽게 비벼서 사용했었어요. 아니면 둥그런 돌을 사용하기도 했었고요. 마분지나 신문지는 아무래도 훨씬 후에나 사용했을 겁니다. 이들도 종이니까 썩어서 거름이 되겠지만 아무래도 보리짚만은 못하겠지요. 또 어디 갔다가도 뒤가 급해지면 꼭 집에 와서 볼 일을 보기도 했었어요. 의식했든 안 했든 간에 거름의 양을 늘리려는 생각에서였을 겁니다.

오키나와도 화장실이 이런 구조였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원래 오키나와는 남을 해치는 무기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나폴레옹이 이런 말을 듣고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겠지요. 그건 아무래도 돗통시 문화에서 드러나는 공동체 정신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변비이거나 설사이거나, 굵은 똥이거나 물똥이거나 옆집 돗통시에서 들리는 그 힘쓰는 소리만으로도 이웃의 사정을 알 수 있잖아요. “저 집, 어제 바당에서 보말 하영 잡아단 앙 먹언게마는 설사햄신게.” 서로의 치부까지도 다 알고 이를 부끄럽게 여겨 감추기보다는, 알 거 다 알고 서로의 기쁨이나 슬픔까지도 공유하려는 배려의 정신에 평화는 당연히 깃드는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 : “어허두리 더럼마야.”
나 : “어허두리 더르럼마.”
아버지 : “요 걸름 저 걸름 일어나나라.”
나 : “어허두리 더르럼마.”
아버지 : “요거 버청 앚아나시면,”
나 : “어허두리 더럼마야.”
아버지 : “어느 누게가 도웨줄소냐.”
나 : “날은 점점은 저물아 가는디.”

날은 점점 저물어 가는데, 아버지와 통시에서 거름을 내고 있는데 갑자기 동쪽에 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토벌대들이 총을 쏘며 들이닥쳤다 가족들은 재빨리 몸을 피 신하였지만 어려서부터 다리가 불편했던 아버지는 집 뒤 담을 넘다가 토벌대의 총 에 목을 맞아 사망하였다 나는 숨어서 그 광경을 그 모습을 다 보았다 아버지와 둘 이 내던 거름을 이제는 혼자서 내야 한다, 어허두리 더럼마야

나 : ‘어허두리 더럼마야.’
나 : ‘해는 서산에 다 떨어지고,’
나 : ‘나 헐 일은 멀었져.’
나 : ‘어허두리 더르럼마.’
- (졸시, 거름 내는 소리*)

* 거름 내는 소리 : 제주 재래식 화장실인 '통시‘에서 썩힌 거름을 쇠스랑 등으로 일궈내며 부르던 민요이다.

제주4・3은 이 제주공동체의 평화를 완전히 파괴해버렸습니다. 또한 현대문명이라는 외부적인 힘이 ‘돗통시’를 또한 사라지게 했습니다. 7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겉모습은 새롭게 단장하는 데는 기여했는지는 몰라도,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유기적인 순환구조를 완전히 폭력적으로 압살해버렸습니다. 비슷하게 외세에 의한 시련과 개발로 인한 파괴를 겪고 있는 오키나와도 이제 과거의 전통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파괴와 소멸의 역사 속에서도 남는 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다면, 똥입니까?
아닙니다.
그건 부끄럼 없는 원형질의 공동선입니다.
그건 바로 평화입니다.
그건 바로 평화의 지역적 국제적 연대입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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