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천 할머니, 식게밥 먹으러 오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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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천 할머니, 식게밥 먹으러 오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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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34> 무명천 할머니

벌써 7년 전의 일이네요. 할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간 한림읍 금악리 성이시돌 요양원에서는 영결식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자 할머니의 관을 실은 영구차는 곧바로 5분 지척거리에 있는 이시돌 요양원 공동묘지로 향했습니다. 묘지 입구부터는 동산 길이어서 차가 올라가지 못해 직접 운구를 하게 되었는데요.

할머니의 관은 너무나 가벼워서 혼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 가벼우니 오히려 눈물이 났습니다. ‘관은 심히 가벼웠으되, 삶은 온통 무거웠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억새가 무성한 들길을 걷고 있는데, 연보라색 이질풀꽃이 억새 속에서 정말로 곱게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인 듯 멀린 듯 새울음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할머니처럼 작은 무덤에 할머니의 작은 육신을 모시고 내려와 다음의 시를 써서 할머니의 영전에 바쳤습니다.

무명천 풀고
오늘 여기 누웠네
멍에처럼 날아간 턱을 옥죄던
무명천 벗어두고
꽃상여도 없이
호곡할 복친도 없이
여기 오늘 홀로 누웠네
고운 잔디옷 입고
서천 꽃밭 가는 길
외롭지 않네
부끄러이 숨어 핀 가을꽃 벗 삼고
날아오른 마음이 새소리 길 삼아
저 세상 가려네
악귀 같은 이승의 기억일랑
가는 길 낮잠 삼아 벗어버리고
이제 고운 얼굴로 도올라 환생하려네
무명천 매지 않은 맨 얼굴로 살려네
그렇게 다시 여기 온다고 말하려네
말을 하려네
(- 졸시, 「이제 고운 얼굴로 도올라 환생하려네」 전문)

하관을 마치고 몇몇 지인들과 한림읍 월령리에 있는 할머니의 생가를 둘러봤습니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기 전까지 살던 집입니다. 전기는 끊겨 있는데 오래된 전기 고지서만 문가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돌아와서는 주변 식구들에게 할머니 얘기를 던졌습니다. 생가터 보존이나 기념사업 등을 준비하자고요. 이왕이면 할머니 생가터를 매입해서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의논해 보자고 말입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아주 까칠하고 냉랭했습니다. ‘그런 건 친척이나 마을에서 알아서 할 일 아니냐?’ 라거나 ‘그런 식으로 한 사람씩 기념사업을 하다가 돌아가시는 분들 전부 다 할 거냐?’ 등등. 한마디로 맥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믿었던 지인들인지라 그 실망감이 더욱 컸습니다. 그래서 혼자만 씨발씨발 거리다가 한 2년의 시간을 허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술자리에서 제주주민자치연대의 한 친구에게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친구는 ‘뭐 그걸 경 어렵게 생각허냐!’며 자기의 조직에서 그 사업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일이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저가 보기에도 그들은 굉장한 추진력으로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꾸리고, 할머니의 친인척들을 만나고, 마을 리장을 만나고 하면서 꾸려나갔습니다.

그들은 거의 몸으로 때우다시피 일을 했습니다, 지붕에 방수 페인트를 다시 칠하고, 도배를 다시 하고, 부엌도 말끔히 단장하고, 할머니의 유품들을 일일이 꺼내어 빨고 말려서 재정리 하고, 마당도 깨끗이 치워 잔디도 입히고 꽃도 심고……. 그 이후로도 그들은 매분기마다 할머니 삶터 지킴이 봉사단을 꾸려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 해부터 시작된 생가터에서의 할머니 제사 봉행도 꾸준히 지내오고 있기도 하고요.

진아영 할머니의 생가터가 새롭게 단장되고 개소식이 열리는 날, 그동안 고생한 회원들과 리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 그리고 할머니의 친척들이 모여 소박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정말로 기쁜 마음으로 축시를 낭송했습니다.

단 한 번
남 앞에서 밥 아니 드시던
할머닌 누가 볼새라 홀로
먼 마실 가셨지만

말 못한 유언처럼 휑하니 남은
집 한 칸
헐고 낡고 터져 아픈 기억을
고운 마음이 매웠나니

한 땀 한 땀
바느질이 고운 옷 짓듯
한 땀 한 땀
아픔을 잇고 기억을 나누듯

아들 되고 딸 되고 조카 되고 손주 되어
울담 답고 도배하고 장판깔고 지붕칠해
새 보금자리 틀었으니

선인장 핏빛 상처 속에
샛노란 꽃이 돋듯 화안히
마실 다녀오신 할머니

참빗 정결히 머리 빗고
갓 지은 따순 새 옷 곱게 입어
아이들 맑은 노래 고운 웃음 받으리
- 졸시, 「아픔을 잇고 기억을 나누는 바느질 집, 진아영 할머니 삶터 개관에 부쳐」 전문

지난 9월 8일에는 제주4・3평화재단의 예산 지원으로 처음으로 할머니를 기리는 문화제가 생가 뒤 바닷가에서 열렸습니다. 놀이패 한라산, 민요패 소리왓, 가수 최상돈, 제주주민자치연대 노래패 모다정 등의 노래와 공연이 고즈넉한 월령리 밤하늘 사이로 퍼져나갔습니다. 물론 월령리 주민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습니다. 이렇게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사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가 술 마시며 하소연했던 그 친구는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진두지휘하면서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많은 분들이 진아영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비가 새던 천장을 고치고 앞마당 집둘레의 돌담을 정비하는 작업에 함께 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이제는 4・3의 한 측면으로 후유장애인들의 삶과 죽음, 그 삶터를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진아영 할머니의 경우 시대의 아픔을 몸에 새기고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분들을 기리기 위한 소박하면서도 의미 있는 공간 만들기에 주력할 방침입니다.”

그렇습니다. 후유장애인들이 ‘현실의 삶은 고단했지만 마지막은 주변 사람들의 축복으로 마무리’ 되어서 그간의 설움과 고통이 함께 용해될 수 있도록 ‘소박하면서도 의미 있는’ 일들을 계속 추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살아남은 후손들이 해야 할 일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년, 9월 8일엔 당신도, 할머니와 함께 겸상하기를 기원합니다.

“진아영 할머니! 밥 먹으러 오십서!”
“진아영 할머니의 제삿날입니다. 식게밥 먹으러 다들 오십시오!”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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