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나에게 버리지 말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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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나에게 버리지 말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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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29)머리의 일 몸의 일 마음의 일

되돌아보면 제주4.3사업소에서 일 한지도 벌써 햇수로 10년째입니다. 이 4.3 일은 죽임과 살림, 죽음과 삶의 변증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은 저로 하여금 생명과 평화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헤매고 있습니다. 남들같이 거창하게 ‘생명평화경’ 같은 가르침은 닦지 못 하고 다만, 그런 경지에 접근하려고 나름대로 꾸물거리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또 하나, 머리와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과 마음이 하나로 합일되어 나가는 삶이야말로 제대로 된 생명평화의 삶을 위한 토대가 아닌가 하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머리의 일’은 말 그대로 분석하고 계산하고 평가하는 등의 머리를 쓰고 굴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별로 좋지 못한 머리를 아무리 쓰고 굴려봐도 제대로 되는 건 별로 없습니다.

‘몸의 일’은 손발 등의 몸을 쓰는 일입니다. 소위 말하는 몸을 쓰는 육체노동이 여기에 해당될 겁니다. 노동하고 실천하는 땀방울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의 일’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유와 성찰의 정신의 일이자, 영혼의 일입니다. 믿음과 포용과 사랑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간 우리는 너무나 ‘머리의 일’만 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우리는 너무 ‘머리’로만 분석하고 계산하고 평가하지는 않았는지요. 상대에게 마음을 주면 상처받을까봐 미리 우리 속에서 마음을 차단하고 그저 단순한 만남으로 억제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요.

‘머리의 일’만 하다 보니 자연스레 ‘몸의 일’이나 ‘마음의 일’과는 점점 멀어져서 머리와 몸과 마음이 항상 따로 놀고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는 않으셨는지요. 어쩌다 운동경기를 하거나 육체노동을 할 때 조금만 해도 그저 숨만 볼락볼락 할딱할딱 거리지는 않았는지요.
저가 바로 그렇습니다. 마음 가는 데 몸이 간다지만, 마음은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머리가 모자라니 손발이 고생하는 경우도 많고요.

미래의 인류는 머리의 일만 하다 보니 자연히 뇌용량이 커져서 자연히 머리만 수박만큼 커질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몸의 일을 하지 않으니 팔과 다리는 현저히 가늘어지고, 컴퓨터 등 손으로 하는 일만 많아지니 손마디는 길어질 것입니다. 점차 개별적인 인간으로 홀로 지내게 되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점점 줄어드니 영혼은 심각하게 쪼그라들어 밤톨만도 못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미래라면 과연 무슨 희망이 있는 것입니까. 단지 생존한다는 것만이 존재일 뿐, 존재 자체가 이유가 될 수 없는 이런 미래 사회는 과연 인류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요.

재작년 3월 31일,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에 오면서 처음엔 ‘머리’ 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개관식 준비도 해야 하고, 안내소책자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여러 가지 머리를 써야할 일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러다가 ‘몸’을 쓰는 일을 했습니다. 기념관 야외공간이 한 2천 평 정도 되는데요. 두 군데의 덤불숲을 정리해서 작은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돌담도 새로 쌓고 작은 방사탑도 열 개 정도 쌓았습니다. 북촌리 4.3유족회장이 그러는 저를 보고 “여기 돌챙이 허레 와서?”라고 놀리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계속 야외에서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 쓰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이 대지와 하늘과 물과 바람과 사람과 온갖 생물들에 대해 다시 뭔가 의미와 가치를 공유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에서였습니다. 나중에는, ‘머리의 일’과 ‘몸의 일’과 ‘마음의 일’이 하나로 결합되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가치가 아닐까 하는 그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일’이야 말로 사람의 존재이유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표상이자 활동내용입니다. ‘일’이 없다는 것은 거의 죽음과도 같은 비존재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백수가 되어봤던 사람들은 이 ‘일’의 소중함이나 절박함에 대해서 뼈저리게 잘 알 것입니다.

‘일’이란 ‘무엇을 이루려고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이라고 정의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운동’의 개념과 같은 자리에 놓고 싶습니다. ‘운동’은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힘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은 ‘존재의 온갖 변화와 발전’을 뜻하기도 합니다.

‘머리의 일’은 머리의 운동과정입니다.
‘몸의 일’은 몸의 운동과정입니다.
‘마음의 일’은 마음의 운동과정입니다.

이는 그간 우리들 머릿속에 들어있던 온갖 고정관념과 타성 등을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그간 거의 쓰지 않았거나 또는 너무 학대했던 자신에 대한 자기성찰입니다. 이는 결국 자기 인생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이유를 분명히 하고 스스로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높이는 것입니다.

머리의 일과 몸의 일 그리고 마음의 일을 일치시키는 것! 그건 바로, 사회 인간 자연을 내 안에서 조화롭게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잘 보내고, 잘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네 삶의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 우리가 잘 보내고 버려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나의 장에게 말하기를

제발, 집의 화장실까지만 어찌어찌 좀 참아주소
길옆의 어디 으슥한 곳 쌀 만한데도 마땅치 않으니
제발, 인간적 품위를 위해 조금만 더 버텨주소
함부로 내치지 말고 안에만 간직하여주소

나의 장이 나에게 말하기를,

그래, 마려운 조급함이 터지려는 후련함을 견디기 어렵듯이
몸이 아파 오는 건, 그건 네가 나에게 가한 위해의 결과이다
그래, 따지고 보면 네 마음이 아픈 건 네가 너를 버리지 못한 연유인데
너는 왜 나에게 버리지 말라 하는가

아이고 죽겠는데, 뭔 말이 그리 많고 왜 그리 느리오?
-졸시, 「나의 장이 나에게 말하기를」전문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머리로만 써지려고 해서 갑갑합니다. 그야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글을 써야 하는데 머리로 손끝으로만 쓰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아직은 저의 수준입니다.

나중에 더 많이 뚱뚱해진 영혼의 글을 쓸 수 있도록, 지금은 머리나 몸과 마음을 더 많이 비우고 버려야 할 때인가 봅니다. ‘몸이 아파 오는 건, 그건 네가 너에게 가한 위해의 결과’이고 ‘마음이 아픈 건 네가 너를 버리지 못한 연유’라고 나의 장이 나에게 말한 것처럼요.

오늘은 이 글 하나 썼으니, 이제 야외로 나가 몸의 일을 하고자 합니다. 나무 묘목을 심을 구덩이를 한 열 개 정도는 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땀방울이 떨어진 그 자리에 마음의 나무를 심어 가꾸겠습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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