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민들레는 저와는 원수지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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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26) 개민들레의 영토

개민들레는 저와는 원수지간입니다. 아무리 어린 싹이라도 보이는 족족 뽑아버려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왜 저가 이렇게 개민들레와 원수가 되었는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아무리 봐도 너를 좋게 봐줄 수 없다
아버지 무덤가에 위세를 부린 너
고요한 안식을 질긴 뿌리로 옭아매는 너
쑥과 억새 틈 사이도 비집어 제 영토로 만드는 탐욕
쑥은 약재로라도 쓰고
억새는 하다못해 땔감으로라도 썼다
무엇 하나 소용없이 영역만 강탈하는
너, 미국의 종자여
아무리 해도 너를 좋게 봐줄 수 없다
이 땅을 뿌리 깊이 할퀴고 움켜쥐어서
뻔뻔히 고개 치켜든 너, 아메리카여
너는 수천수백의 암세포를 날려
지천으로 흐드러진 너의 제국에서
관광객들 기념사진을 찍게 하는구나
너의 식민지, 백성들의 얼마저 빼놓는구나
아무리 봐도 너를 좋게 봐줄 수가 없다
오늘 나, 호미로 너를 뽑는다
무덤 속 아버지 유골까지 건드는
너의 질긴 뿌리를 악착같이 뽑는다
너를 거세한다
=졸시, 「개민들레」 전문

이 개민들레가 중산간 지역뿐만 아니라 섬 땅 곳곳에 널리 퍼져 도로변, 풀밭, 산자락 등을 온통 점유하고 있어 생태계 교란이 심각한 실정입니다. 이놈은 서양금혼초라고도 하고 서양민들레라고도 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에서 들어온 놈입니다. 아마 수입되는 목초씨 속에 섞여서 들어왔을 겁니다.

개민들레가 생태계를 완전히 교란하고 온통 제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는 동안 토종 민들레는 그 위세에 눌려 서서히 자취를 감추거나 어쩌면 멸종의 우려도 있습니다. 이것 또한 분명한 현실이고 암울한 미래입니다. 개민들레는 박토건 옥토건 돌틈이건 가리지 않고 땅을 제 종족으로만 덮어버립니다. 다른 생명이 자랄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한 탐욕은 공생을 거부하는 완전한 독식입니다.

그 길고 질긴 착취의 뿌리를 뽑아 본 적 있습니까? 그 악마의 발톱처럼 땅바닥을 움켜쥐고 있는 탐욕의 잎을 보셨습니까? 그 수천수백의 악귀의 정자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꽃 한 포기가 삼천 개의 씨를 날린다는데, 다시 삼천 개가 삼천 개씩 날리면 구백만 개가 되고, 이들이 다시 삼천 개씩 날리면 이백칠십억 개가 되고, 이들이 다시 날리면 팔십일 조개, 이들이 다시 날리면 이십사 경 팔천조 개……. 그 다음은 계산이 잘 안 됩니다.

이러니 온통 개민들레 세상, 이쯤 되면 완전 개판 아닙니까? 들판에 한번 나가 보십시오. 온통 노란색으로 도배된 개민들레의 영토가 아닙니까? 그러니 저가 가만히 앉아서 그놈들 커가는 걸 볼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윤구병 선생은 그의 책 ‘잡초는 없다’에서 세상의 모든 식물들 중에 잡초라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만, 분명히 말하지만 이놈들은 잡초雜草가 아니라 해초害草이자 독초毒草이고 악초惡草입니다. 제주신화에서 말하는 ‘검뉴을꽃’이고 ‘수레멸망악심꽃’입니다. 그래서 호미를 들고 이놈들의 소탕작전에 나섭니다.

그런데 모조리 뽑아냈다고 생각되는데 늘 가던 길가에 다시 가보면 제법 큰 놈이 또아리 틀고 노려보고 있습니다. 저 지독한 생명력 저 가열찬 생장력 저 살 떨리는 생존본능 앞에서 그만 탁 맥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걸 뽑아냈던 어깨에서부터 손목에서 머리까지 심장까지 소름이 쭉 돋습니다.

이놈들을 제거하면서 하나 하나 배웁니다. ‘이만하면 완벽하다 싶은데 늘 허점이 있고 거즘 다 되었다 싶은데 항상 제자리인 것’이 우리들 삶이 아닐까고 말입니다. 어쨌든, 다른 식물들은 싹을 잘라내면 거의 말라죽게 되는데 이놈들은 뿌리를 뽑다가 한 가닥 놓친 실뿌리에서 본능적으로 다시 싹이 돋아 하루 이틀 사이 엄청난 속도로 잎을 올립니다.

제초제 독하게 친 곳에도 다시 솟아오릅니다. 비 온 뒤 독버섯 자라듯 한 놈을 죽여도 그 뒤의 놈들이 가미가제 순서대로 떨어지듯 줄줄이 대기했다가 뿅뿅뿅 두더지게임처럼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시멘트 포장 새로 한 곳에 미친년이나 똥개 먼저 발자국 남기듯 그렇게 지가 주인인양 턱 하니 자리 잡습니다.

어떤 이는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 개민들레도 살려고 그러는 것이니 그냥 살게 놔두라.”

평소 매사에 어영부영 하는 저이지만 그 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받아칩니다.
“개민들레는 당신의 방심과 알량한 아량을 파고든다. 그리하여 기생충처럼 당신마저도 숙주로 삼아 자신의 영토로 복속시킨다. 동네 빵집 파먹는 빠리바케트 같은 것들, 동네 상점 까먹는 패밀리마트 같은 것들!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들은 우리 주위에서 이미 버젓이 우리의 영혼과 살과 영토를 갉아먹고 있다.”

그러면 그 분은 다시 말합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저는 말합니다. 타성적인 답이 될는지 모르지만,
“우리 것을 지키자. 나를 지키자. 민들레의 영토를 지키자!”

제주시에서는 희망근로프로젝트사업 일환으로 이 개민들레 제거작업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또 이를 이용해서 약재를 만든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제거작업이 아닙니다. 혹시 모릅니다. 이 개민들레가 정력제 쯤이나 되면 마구 마구 캐어서 없어질 지. 결국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찾는 일이 이놈들을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이 됩니다. 그것은 토종 민들레의 자존으로 개민들레와 싸워 이겨내는 일입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제주시 탑동근처에 ‘민들레의 영토’라는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줄여서 ‘민토’라고 부르더군요. 젊은 여인들과 두 번인가 갔었는데, 뭘 먹었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이름만큼은 분명히 각인되었습니다.

‘민들레의 영토’라! 수천수만의 꽃씨로 날려 꽃을 피우는 그 토종의 공화국! ‘무수한 발길에 짓밟혀’도 ‘온몸 부딪쳐 살아가며 해방의 봄을 부르’는 자존의 민들레! 아마 이런 연상에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을 겁니다.

노래방에 가면 저는 종종 이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패 꽃다지의 ‘민들레처럼’이라는 노래입니다. ‘개민들레처럼’이 아닙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에 오실 ‘보고싶은 얼굴’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 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처럼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내가 가야할 저 투쟁의 길에
온몸 부딪히며 살아야한다 민들레처럼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
아 민들레 뜨거운 가슴 수천 수백의 꽃씨가 되어
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
-노래패 꽃다지의 노래, 「민들레처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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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1-07-21 18:47:01 | 14.***.***.118
살아야 한다.개민들레의 싹을 송두리채 앗아버리고 고운 우리의 민들레로 지천에 깔리게 해야 한다.조현오 경찰청장 내려와 지시를 내리는 모양이 왜 4.3을 떠올리게 할까.착잡한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