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월산식당'을 기억하십니까?
상태바
20년전 '월산식당'을 기억하십니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15) 낭푼밥 공동체

오늘은 음식과 그 문화에 대한 얘기 한 가지를 할까 합니다. 저는 예나 제나 헛된 형식문화를 극도로 혐오하는데요, 특히 가진 자들의 그 알량한 상류문화의 허위의식을 대할 때면 역겨워 구토가 다 나올 지경입니다. 음식문화, 특히 예절과 법도와 격식을 필요로 하는 그런 문화에 대한 이질감과 거부감!

그렇습니다! 단언컨대, 그 모든 식사예절은 가진 자들의 것들입니다! 제대로 먹을 것도 없는 못 가진 자들에게는 식사예절이 문제가 아니라, 뭘 먹을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아무 거라도 먹을 게 있어야 했고 또 그 먹을 것의 분량이 문제였지 않습니까.

가진 것 많아서 일없는 놈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착취하고, 소위 '상류사회'를 부러워하도록 만들어 놓는 제도적인 장치가 '법'이고 '제도'였지 않나요? 식사예절도 그 부류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음식점 특히 서양식의 음식점에는 거의 가지 않습니다.

혹시 20년쯤 전에 제주시에 있었던 '월산식당'을 기억하십니까? 이 식당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양으로 승부하던 식당이었습니다. 다른 가게의 곱빼기 수준의 양으로 승부를 걸던 이 식당의 국수는 배불리 양껏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의 정서와 맞아떨어져 한동안 '못 먹은 축산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었습니다.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굶어죽어간 사람들이 있었지
자기 목숨보다 더 중한 보리쌀 콩 한 줌이 있었지
이제 살과의 전쟁인 이 배부른 시대에 우리들의 위장은
얼마나 쓸데없이 늘어나 원래의 그믓을 가늠하지 못 하고 있는가
 졸시, '월산식당' 부분

불과 반세기 전에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굶어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동료를 살리기 위해 제 목숨 보다 더 소중한 보리쌀 한 알 콩 한줌을 선뜻 내어주던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식사예절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가 절절히 살아있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도처에 식당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소위 '식도락가'나 '음식평론가'들도 우후죽순처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문제인 바야흐로 '살과의 전쟁' 시기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살수록 체면이나 허례도 그에 따라 상승하고,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먹는 자세는 품위 없는 것으로 쉽게 무시당하고 스스로 제어당합니다.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는 것! 가령 감자탕이나 닭도리탕 같은 걸 집에서 끓여 먹을 때면 손에 국물이 더덕더덕 묻거나 말거나 정신없이 탐닉해서 먹는 것!

거기에다가 썰지 않은 김치를 쭉 쭉 찢어서 숟가락에 뱀이 또아리 튼 것처럼 돌돌 말아 한 입 가득 넣어서 우물우물 씹어 먹는 그 맛! 가진 자들이 만들어 놓은 허례허식을 버리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싶은 대로 남 의식하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퍼 먹는 것!

그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딸년들이 '아, 정말 민망해서 못 봐주겠네!'라고 할 정도지만, 그렇게 먹어야 성이 차고 훨씬 맛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먹는 것이 진정 우리의 음식문화 아니겠어요?

사람다운
사람 사는
세상
한 솥 밥
눈치 보지 않고 같이 나누어
퍼먹는 겨레
사해의 민중들도
모두 한겨레
- 졸시, '신 해방가' 부분

저의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식구들 개인의 밥사발은 없었습니다. 제사 때 쓰는 제기는 찬장 깊숙이 박혀 있었고, 우리들은 그냥 낭푼에 가득 담긴 밥을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같이 퍼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니까 밥과 밥상의 공동체였지요.

낭푼 하나에 담긴 밥을 먹을 때 많이 먹고 싶은 사람은 많이 먹고, 덜 먹고 싶은 사람은 덜 먹게 되는 자동조절 장치가 되어 있었어요. 그건 기계적인 구분이 아니라 식구들 서로에 대한 배려에서 나오는 진득한 애정의 발로였다고 생각됩니다. 그건 애정과 소통의 공동체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집에서는 가끔 이렇게 큰 낭푼에 밥을 담아서 네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퍼먹습니다. 낭푼 가득히 오름처럼 솟아올랐던 밥이 차차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조잘조잘 나누는 대화가 주는 행복이 그 낭푼에서 나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낭푼은 그냥 대바구니나 알루미늄 그릇이 아니라 대화의 통로가 되고 공동체 회복을 위한 소통의 구심점이 됩니다.

그 소통이 완전히 차단된 먹통 불통의 시대인 요즘은, 남북관계도 완벽하게 차단된 듯합니다. 먹는 얘기를 하다가 얼핏 한반도 지도를 보니, 아래쪽이 좀 비대해 보이고 위쪽은 홀쭉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먹고 사는 문제에서도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소위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것과, 못 먹어서 살이 야윈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지요.

하지만 그중 '어느 것이 낫다, 어느 것이 더 좋다'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언젠가 만약에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오면, 그쪽 사람들과 꼭 한번만이라도 이렇게 고집해서 눈치보지 않는 '낭푼 밥 공동체'를 실현해보고 싶습니다. 그들과 밥 먹으면서 이런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거지요. 그러니까 낭푼과 밥과 공동체 얘기를 곁들이면서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밥 먹으면 비위생적이라고 주접을 떨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위생 찾으며 그렇게 깔끔 떨며 살았었나요? 그렇게 토다지게 따지다 보면 언제 합의하고 언제 통일할 수 있나요? 그렇게 따지는 놈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위 아래 갈라져서 살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이념이나 계급 등 모든 차이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정서가 합일되고 마음이 통하는 방법이 '같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위생을 생각하고 전염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통일도 두려워하겠지요. 이렇게 같이 밥을 잘 먹어야 몸도 튼튼해지고 일도 잘 해지는 법이지요.

잘 먹는다는 것은 맛난 음식을 혼자만 쳐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바로 나눔입니다. 식구와 나누어 먹고, 이웃과 나누어 먹고, 겨레와 나누어 먹고, 온 세상 사람들과 당당하게 나누어 먹는 것! 그것이 바로 '낭푼 밥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입니다.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객원필진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3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덕배 어린이 2011-05-09 11:40:39 | 211.***.***.89
월산식당이면 중앙로 구 남양체인 시장 골목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곳 아주 저렴하죠 저도 단골입드랬죠...
90년대 초 거기 짜장면이 800원 했었죠..양도 무지 많구 맛도 좋구 ..

칭찬 2011-05-07 20:10:48 | 1.***.***.111
헤드라인제주에는 이런 글들이 많아서 좋네요
읽을거리도 많아요
10년된 신문의 느낌

아련한 추억 2011-05-07 11:37:27 | 49.***.***.85
월산식당
짜장면 시키면 기본이 곱배기로. 줬지요
엄청 먹어도 남을정도로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