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툭 툭, 눈물이 누룽지탕 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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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툭 툭, 눈물이 누룽지탕 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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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4>최고은 작가의 죽음과 예술가의 생계

박명림 교수는 “2010년 한국의 삶은 '외면적 물질적 성취'와 '내면적 인간적 파탄'의 기묘하고도 불안한 장기 공존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또 고(故 ) 리영희 선생은 남한 사회를 ‘물질적 풍요 속의 인간적 가난’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적 풍요를 위해 비인간화의 탁류를 인간화의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 인간화의 깃발을 들고 매진하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들입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바라지 않고, 내면적 인간적 성취를 위해 최소한의 외면적인 물질만으로 예술을 추구합니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예술가를 자처합니다. 그러나 예술활동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은 최소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거의 살인적인 것입니다. 겪어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굶기를 밥 먹듯이 합니다. 그래도 사흘을 굶어도 도둑질을 하지 않는 순정성이 있고, 정승도 배고프면 넘는 담을 여간해서는 넘지 않지 않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초 벽두부터 아주 슬픈 소식을 접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쪽지를 남긴 채 32살 나이의 최고은 작가가 아사(餓死)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작가의 입장에서, 생전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 죽음이 가져다 준 충격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소식을 접한 뒤 바로 지인에게서 손전화 문자를 받았습니다.

삶을 등진 여자
젊은 여자
굶다 가버린 여자
그 옆에 그녀를 닮은 또 다른
그녀 또는 그들
가슴 아픈
너무 아픈 tragedy!

열정만으로는 버틸 수 없어 끝내 예술적 생애를 마감한 이 시대의 참담함 비극 앞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순정(純正)은 밥이 되지 않고, 진정眞正은 김치가 되지 않는, 그리하여 자존(自尊)이 자존(自存)이 될 수 없는 이 절망에 대해 짧게 답문을 보냈습니다.

작가들의 자존만으론
이 시대를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죽음의 증언!

그녀의 사망원인은 굶주림 말고도 갑상선기능 항진증과 췌장염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이 땅의 예술가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는 묵시록적인 순교나 다름없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제주도에서만 보더라도 예술활동을 통한 월평균 수입이 50만원이 안되는 예술가들이 전체의 8할 가까이 됩니다. 어떤 가수는 연봉이 5백만 원이라고 자조섞인 얘기를 하는 걸 듣기도 했습니다.

지지리도 못난 것들이
문화운동을 한답시고 쥐뿔도 가진 것 없이 설쳐대다가
어느 날, 문득 쌀이 바닥나고 라면 하나 살 돈이 떨어졌다
밥솥 바닥에 최소한 3일은 묵었을 시커멓게 눌어붙은 누룽지
한 주전자 가득 물을 넣고 팔팔 끓여 한 술 두 술 먹다가
툭 툭 툭,
눈물이 누룽지탕 속으로 떨어졌다
눈 물 밥,
아니, 밥도 못 되는 그 누룽지탕의 국물만 계속 늘어났다
- 졸시, 「누룽지탕」 전문

저는 지금 ‘시인’이라는 직함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본래는 「놀이패 한라산」이라는 마당극 단체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시를 온몸으로 쓰고 싶어서’ 마당극 운동에 뛰어든 것이 지난 1987년의 일입니다. 그 시기는, 말이 좋아 ‘문화운동’이지 거의 룸펜 떨거지 신세들이었습니다. 다른 부업 없이 열정 하나만으로 문화운동에 전념(?) 하느라 항상 경제에 쪼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의 시는 그 당시에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얼마나 지지리도 못났으면 밥 한 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하냐”고, “왜 그리 미욱하게 그 따위 일이나 하고 다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어멍이 시키는 일이면 죽어라고 간세’하면서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동기 없이도 불같이 타오르는 법 아닙니까. 그것이 전상이고 숙명인 바에야 더 말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그런 예술가의 열정을 뒷받침해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예술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서 번 수입으로 입에 풀칠하며 그 조차도 아껴 예술활동에 보태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소위 말하는 4대 보험의 혜택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입니다. 그런데도 예술가에 대한 복지제도는 제대로 마련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잉태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운 예술 생산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생계 때문에 예술을 포기하고 예술판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입니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 속의 인간적 가난’만을 양산할 따름입니다.
 
비인간화의 양극만을 철저하게 심화시킬 뿐입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거대자본이 만들어내는 ‘외면적 물질적’ 예술만 만연하게 할 것입니다. 마치 중소기업 고유업종에 대한 보호를 폐지한 후에 나타나는 문어발식 대자본의 탐욕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예술의 죽음입니다. 

수선화.<헤드라인제주>
그리움 한 자락만으로
향내 아득히 꽃송이 열리네
그 소리에 놀라
연못가 살얼음 살며시 부서지고
멀리 성당의 종소리 사뿐히 떨리네
문득 그리운 사람 하나 있어
동백꽃 지듯 눈물이 나네
- 졸시 「수선화보水仙花寶」 전문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그 죽음의 ‘소리에 놀라’ ‘동백꽃 지듯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죽음 자체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선화처럼 다시 피어나, 스스로 향기를 가지고 있어서(有麝自然香), 굳이 바람 앞에 서지 않더라도(何必當風立), 자체로 예술이 발현되기를, 그런 세상이기를 술 두 잔 음복으로 기원합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시인.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 '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4.3관련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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