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 미국인 만학도, "한글 마스터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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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세 미국인 만학도, "한글 마스터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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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제주] (24) 제주대 정치외교학과 '10학번 폴 라우
한국어 공부만 6년 째..."한국과는 깊은 관계로 맺어진 사이"

우리말은 한글이다. 그럼 대한민국의 제2언어는? '영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영어가 쓰이는 곳이 많고, 좁은 취업문을 통과할 때도 영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는 한국인에게 있어 모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다. 모국어는 태아에서부터 어느정도 귀에 익기 때문에 배우는 속도가 빠르지만, 제2외국어의 경우는 다르다.

더구나 모국어를 오래도록 쓴 뒤, 성장하고 나서야 다른 언어를 익히는 것은 그 속도가 더욱 더딜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61세 미국인 만학도이자, 제주대학교 '10학번인 폴 라우(Paul Rauh)의 한국어 도전기는 더욱 의미있어 보였다.

미국인 만학도 폴 라우. <헤드라인제주>

# 마음 속의 폴이 폴에게 말하다, "한국어 공부하자"

폴은 지난 2005년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당시 서울 소재 한 대학교에서 약 2개월 간 한국어 연수를 받은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전까지는 미국에서 전자 공학사, 회계사 등으로 활동했었다.

직업도 가지고 있고, 평범한 삶을 살던 그가 어떻게 인생의 절반을 넘긴 50대의 나이에 한국으로 오게 됐을까?

그는 미국에 있을 당시 한 모임에서 한국인 몇명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로부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짧은 찰나의 관심에 지날 줄 알았던 '한국'은 그의 머릿속을 1년 간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심이 섰다. 한국을, 한국어를 배워보자고.

"솔직히 말해 지금도 제가 왜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는 아리송해요. 어느 날 제 스스로 저에게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느냐를 물었고, 제 속의 저는 '한국'이라고 답했어요. 그때부터 매일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당시 50대였던 그에게 낯선 이방의 언어 공부는 쉽지 않았다. 영어와 달리 한국어는 모음과 자음의 조화로 하나의 글자가 만들어지고, 또 하나의 글자에도 여러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쌍자음, 이중모음, 홀소리, 된소리 등 소리체계도 영어와는 완전히 달랐다.

결코 쉽지 않은 공부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겼다고 했다. 힘들지만 즐겁게 한국어 공부를 하던 그는 일생일대의 도전을 하기에 이른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 말고는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오기로 결정했어요. 그 길로 2005년 10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고, 2006년 한국에 살기로 마음을 먹고 짐을 쌌죠."

# "한국어 쓸 기회 많을 거란 생각에 정치외교학과 진학"

폴 라우가 한국어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드디어 시작된 본격적인 한국생활. 폴은 서울에 자리를 잡고, 연세대와 서강대에서 약 4년 간 한국어 연수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그의 친구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제 친구 2명이 제주에 살고 있었는데, 제주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제주도가 어딘지도 몰랐는데 그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에 단박에 제주행을 택했습니다."

제주에 와서도 한국어 공부에 대한 열정을 식을 줄 몰랐다. 그렇게 찾게 된 곳이 제주대학교였다.

제주대에서 2008년부터 2년 간의 한국어 연수를 마친 폴은 더 높은 목표를 탐색했고, 제주대 학생으로 편입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발견했다.

"처음엔 겁이 났어요. 제가 과연 수업을 잘 들을 수 있을까...그래서 한국어 연수에서 알던 강사에게 물었는데 그 강사가 저에게 용기를 줬어요. 할 수 있을 거라고.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해서 제주대 최고령 외국인 학생이 탄생했다. '10학번 폴은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의 어엿한 일원이다.

"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한국어로 생활할 수 있게 될 줄 상상도 못했으니깐요. 그런데 한국어로 진행하는 수업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지난 학기에 수업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요.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교수들이 저에게 용기를 줬고, 힘을 얻어 다시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정치외교학과였을까? "단지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토론 같은 것을 많이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한국어 쓸 기회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사실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덧붙이며 멋쩍게 웃었다.

폴 라우. <헤드라인제주>

# "한국과 저는 깊은 관계로 맺어진 사이"

한국에 대한 그의 사랑은 한국어에만 그친 게 아니었다.

"한 번은 숨이 턱 막히고 호흡이 가빠진 적이 있었어요. 위기일발의 순간이었죠. 그런데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저를 축복하는 느낌이 전해졌어요. 그때 비로소 숨이 트이면서 '아 한국과 나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이 환갑을 넘긴 폴의 학구열을 지탱해주는 듯 했다. 그렇다면 그는 이토록 열성을 다한 한국어 공부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 것일까?

폴은 "딱히 세워둔 목표는 없고, 그냥 한국어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부의 목적이 어떠한 '목표 달성'이 아닌, '마음가는대로'라는 그의 대답에 진정한 학구열을 느낄 수 있었다. '10학번 만학도 폴의 도전이 아름다운 이유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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