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는 게 두려웠을까? "왜 당당하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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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는 게 두려웠을까? "왜 당당하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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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질의응답' 없이 끝난 학교 통.폐합 워크숍, 그리고 교육청의 태도

개회, 국민의례, 인사말씀 또는 개회사, 정책 설명, 질의응답, 폐회. 보편적인 워크숍이나 설명회의 식순이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워크숍이나 설명회가 열릴 경우 대개 '질의응답'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질의응답 시간에서 청중들은 설명된 내용에 대해 궁금한 점을 주최 측에 질의하고, 곧바로 답을 얻곤 한다. 일방적인 정보 전달 과정이 아니라, 정보를 상호 교환하는 피드백이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워크숍이나 설명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전달된 정보의 맹점이나 개선점을 파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주최 측은 물론, 취재진에게도 여러모로 유용한 시간이다.

하지만 사안이 너무 민감했기 때문일까. 10일 오후 2시30분 제주학생문화원에서 제주도교육청의 주최로 열린 '적정규모학교 육성사업추진' 워크숍에서는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청중들이 너무 바쁘신 것 같아 질의응답 시간을 갖지 않겠다"는 주최 측의 말로 워크숍은 마무리돼 버린 것.

이날 워크숍은 적정규모학교 육성 추진계획, 즉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추진하는 제주도교육청의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학교를 통.폐합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함을 호소하고 통.폐합을 '이해해주십사'하는 설득의 자리이기도 했다. 학교 통.폐합에 관한 교육청의 공식적인 워크숍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워크숍에는 제주도내 학교 가운데 전교생이 100명 이하인 학교의 교장, 운영위원장, 마을리장, 동창회장 등이 참석했다. 통.페합의 기로에 놓인 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한 셈이다.

워크숍에서 제주도교육청은 소규모학교 통.폐합의 당위성을 설명한 뒤, 통.폐합에 따른 재정 인센티브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전액 자체 재원으로 충당되는 인센티브는 본교 통.폐합 시 20억원, 분교장 폐지 시 10억원, 분교장 개편 시 1억원 규모다.

인센티브 규모나 통.폐합의 당위성은 이날 오전 이미 공개된 것으로, 새로운 '뉴스'가 아니었다. 궁금했던 것은 이 인센티브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통.폐합 '당하는' 학교 관계자들의 입장이었다.

이날 오전 전화 통화를 나눈 모 초등학교 교장은 "이같은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한들 통.폐합 당하는 학교의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 밖에 없어 먼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우려가 모 초교 교장 1명에 국한된 것인지, 다른 교장이나 운영위원장 등도 같은 생각인지를 알고 싶었다.

제주도교육청의 통.폐합 추진 계획 설명에 이어 고준 제주대 교수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 자료를 설명했다. 2시30분에 시작한 워크숍은 5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이제 질의응답이 이어질 참이었다.

그런데 워크숍을 주최한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질의할 분이 없는 것으로 보고, 다들 바쁘신 것 같으니 질의응답 시간을 갖지 않고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질의할 분이 있느냐고 묻기는 했다. 청중 가운데 1-2명이 '없다'고 말했고, 주최 측인 제주도교육청은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분명 1-2명이 질의가 없다고 말했으니, 마무리한다 해도 문제가 될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석연찮은 부분은 워크숍을 황급히 마무리하려는 제주도교육청의 태도였다.

교육청 관계자는 워크숍 시작에 앞서 "저는 학교를 신설하기도, 통.폐합하기도 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한 학교를 없애야만 하는 입장에 있어 이 자리에 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 자리가 편치 않아서였을까? 워크숍은 황급히 마무리돼 버렸고, 기대했던 통.폐합 대상 학교 관계자들의 속마음은 들을 수 없었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날 보여진 교육청의 태도는 꽁무니 빼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통.폐합을 당하는 학교 관계자들에게는 어떤 인센티브이건 받아들여지기 힘들테고,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니, "빨리 끝내자"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런 태도라면 통.폐합을 위해 학부모, 학교운영위원, 마을리장, 지역 자생단체 등으로 학교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의견을 수렴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취재를 허탕 쳐 분풀이를 하려는 게 아니다. 통.폐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비판은 수용할 줄 알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교육청의 태도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의견 수렴 없이 '독불장군'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그 결과는 부메랑이 돼 고스란히 교육청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을 교육청도 알고 있지 않을까?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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