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그놈의 시 냅두고 한잔 더 워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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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그놈의 시 냅두고 한잔 더 워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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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45> 술

아, 그러니께, 시방./ 시를 쓴다고?
아, 안 써 진담서/ 뭣 땀시 그리
기를 쓴당가, 잉?/ 아따, 그놈의 시
냅두고 이리 좀 오랑께/ 그거 보고 있음
밥이 나오는가, 술이 나오는가?
자, 자, 그러덜 말고/ 한 잔 쭈욱 들이키드라고, 잉?
답답할 땐 이게 최고여!/ 아, 이 맛 모름서
무슨 시를 쓴다고 그랴/ 첨엔 쪼가 쓰긴 해도
어뗘? 술술 잘 넘어가제?/ 워뗘? 속이 다 훠언해지제?
무식한 소릴랑가 몰라도/ 내가 볼 땐 말여, 긍께
이것이, 바로 시랑께/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말여
거, 어렵고 비싼 문자들 쓰덜 말고
꼭 요놈맨치로 써 보랑께, 잉?
저 말여, 내 말이 좀 거시기헌가?
아깝게, 요 피 같은 것을
어찌 그리 흘려쌋고 그런당가, 잉?
자, 그러덜 말고/ 한 잔 더, 워뗘? 잉? 잉?
- 김현주의 시 「권주가」 전문

김현주라는 시인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다만, 검색창에 ‘술’이나 ‘권주가’를 쳤더니, 웬걸 이런 걸작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무단으로 전문을 인용합니다. ‘술이 곧 시’이며 ‘피 같은 것을 흘려쌋’지 말고 ‘한 잔 더 워뗘?’라는 대목에서는 저 역시 뒤집어지고 맙니다. 과히 술과 시에 관한한 천하의 절창입니다.

사실 저는 ‘술 좀 마신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술에 약해져서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밉니다. 한라산 소주 하얀 거 두 병이면 거의 ‘몰아져서’ 평소 못 하던 말을 더 못하게 됩니다. 소주 딱 한 병 반 정도가 저의 주량으로 보면 될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웬 놈의 집착은 그리 심한지, 술 좀 마신 다음 날 그렇게 온몸이 괴로우면서도 전날 마신 술과 조우遭遇하며 오늘의 술과 평화와 상생을 음모하는 걸 보면 저도 어지간한 술꾼이긴 한 모양입니다.

쌀뜨물 같은 이것/ 목마른 속을 뻥 뚫어 놓고 가는 이것
한두 잔에도 배가 든든한 이것/ 가슴이 더워져 오는 이것
신 김치 한 조각 노가리 한 쪽/ 손가락만 빨아도 탓하지 않는 이것
허옇다가 폭포처럼 콸콸 쏟아지다가/ 벌컥벌컥 샘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이것
한 잔은 얼음 같고 세 잔은 불같고/ 다섯 잔 일곱 잔은 강 같고
열두어 잔은 바다 같아/ 둥실 떠내려가며 기분만 좋은 이것
어머니 가슴팍에 파묻혀 빨던/ 첫 젖 맛 같은 이것
시원하고 텁텁하고 왁자한 이것/ 어둑한 밤의 노래가 아니라
환한 햇볕 아래 흥이 오르는 이것/ 반은 양식이고 반은 술이고
반은 회상이고 반은 용기백배이다가/ 날 저물어 흥얼흥얼 흙으로 스며드는
순하디 순한 이것
- 최영철의 시, 「막걸리」 전문

이 시를 두고 김수열 시인은 ‘어른들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양은주전자에 냉막걸리를 받아다 팽나무 그늘 평상에서 시원하게 들이켰다. 물론 머리가 굵은 형들은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서 주둥이에 입을 대고 몇 모금씩 마시기도 했지만 우린 평상 옆에서 군침만 흘렸다.’라고 어디엔가 감상을 적었습니다.

수열형은 군침만 흘렸는지 모르지만, 저는 국민학교 때, 아버지께서 사오라던 막걸리를 동네 술 전방집 아들과 고팡에서 홀짝홀짝 마셔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대취해서 아버지에게 복삭 얻어맞았던 기억도 새롭고요. 아버지께서는 그 당시 고향 조천리에서 제법 잘 나가는 불미공장을 했었는데요. 구루마의 바퀴가 쇠에서 고무 타이어로 바뀌는 와중에 장사가 안 되어서 일본 밀항을 가버렸습니다. 그후 20년 후에야 귀국하셨는데, 고된 농사를 지으면서 막걸리는 잘 안 드시고 독한 소주만 마셔댔습니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공광규의 시, 「소주병」 전문

저도 어느새 잔(자식)에다 자기를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가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첫 딸이 대입 수능시험을 치른 날, 가족끼리 갈비를 먹으며 처음으로 소주를 따라 주었습니다. 한두 잔 정도면 제풀에 떨어져나갈 줄 알았는데 웬걸, 연거푸 다섯 잔을 마셔도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허!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제 피가 어디 가겠습니까? 조상 대대로 연년히 흐르는 술푸대의 핏줄은 타고 나는가 봅니다. 이렇게 저도 딸들에게 따라 주면서 속을 비우고 ‘마루 끝에 쪼그려 앉는 빈 소주병’이 되어 가는가 봅니다.

아, 다시 저의 음주 역사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전방집 아들네’가 그때 당시 제주시로 이사하는 바람에 술집과 술벗을 동시에 잃어버렸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였는데요. 동네 또래 친구들과 커다란 구렁이를 잡아 불에 구어 먹으며 소주 한잔 꼴짝대다가 어머니께 복삭 매를 맞았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는, 술보다는 구렁이 때문에 매를 맞았습니다. 집안을 지켜주는 영물을 잡아먹었다고 뼈도 못 추리게 맞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우리 집안이 뭔가 제대로 안 되는 모양이라고 지금도 반성합니다만, 술안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그렇게 저의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술이 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해서 ‘장생 오가피주’라는, 지금도 나오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40도 이상 되는 독한 술을 두 세병 나발 불며 마셔댄 치기어린 나날도 있었더랬습니다. 역시 술이 본격화되기는 대학에서였습니다. 지금도 가장 맛있는 술중의 하나로 꼽고 있는 그 막걸리의 맛! 막걸리 공장에 술을 받으러 갔다가 집채만한 막걸리 통의 수도꼭지를 열고 냉수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켰던 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같이 술을 사러 갔던 친구가 나를 업고 갔대나 어쨌거나 그 뒤야 누가 알리요마는.

부어라 마셔라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
한 잔 술이 없어 빌붙어 마셔도
더러운 잔 받지 않는다 (중략)
간밤에 내린 비가 소주 맥주 막걸리 되어
아침 해 빈대떡 같이 떠오르는 날 안 온다고 누가 말하랴

일명 ‘떨거지타령’이라는 노래인데요. 대학시절 군복 바지에 희뚜룩한 막걸리 자국만큼이나 일상화되었던 노래입니다. 또 일명 ‘백일주’라고, 하루 소주 두병 이상씩 백일동안 마시면 술을 사준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실제로 백일주를 채웠던 생각도 납니다. 사준다는 그 술까지 마셨으니 백일일주가 되었으니, 아마도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겁니다만, 그래도 그 집념 하나는 알아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마신 결과로 훗날, 백일동안 금주를 해야 하는 병에 걸리기도 했었으니 다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겠습니다 그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
우리가 늙어 죽기 전/ 알게 될 진실은 그것뿐
나 오늘도 술잔을 들고/ 그대 눈을 보며 한숨 짓노라
- 윌리엄 예이츠의 시, 「어 드링킹 송」 전문

좀, 상스런 표현이지만, 소위 ‘여자를 꼬실 때’ 많이 써먹었던 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술집에서 옆 손님과 싸움이 벌어졌다

보다 못한 내가 소주병을 깨고 나섰다/
“나 별 둘이야, 엊그제 나왔는데 하나 더 달겠어!”//
상대방이 맥주병을 깨고 덤벼들었다
“난, 다섯이다. 너 죽이고 또 가주마!”// 졌다/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다//
가진 게 많을수록 큰소리치고 더 가지려 하는
요즘 세상의 진리를 다시금 되새겼다//
졸시, 「깽판에 대하여」 전문

참으로 술을 마시면서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겪었습니다. 지갑, 전화기, 가방, 신발, 잠바 등 안 잃어버린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분실 사건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한번은 가방에 잔뜩 이념서적을 넣고 다니다가 술 마시고 또 잃어버렸는데요. 어느 날, 경찰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허! 이거 이번엔 제 발로 잡혀가는구나!’ 주왁주왁 경찰청으로 갔더니, 청장실로 가라네요. 청장이 마침 집안 괸당이어서 ‘이번 한번만 봐준다’고 ‘다음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다’고 ‘다시는 술 먹지 말라!’고 훈계를 듣고 가방 찾아왔던 일화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 버릇 개 주겠습니까! 여지껏 시도 때도 없이 잘만 마시고 있으니 이 또한 복은 복입니다. 가끔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오는 지인들이 “잘 살암수꽈?” 물으면, “응, 여전히 술 잘 마시고!”라고 대답하는 것도, 저에게 각인된 술푸대의 이미지를 재확인시켜주는, 그리하여 옛 기억을 단번에 떠올리게 하여 피차에 거리감을 없애주는 좋은 방법 아닙니까?

아마도 늙어 죽을 때까지, 크게 아파서 술을 못 먹는 경우만 아니라면, 계속 여유 있게 즐길 것을 맹세합니다. ‘꽃 꺽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지는 못하지만, ‘죽은 후에 무덤 위에 원숭이가 놀러와/ 휘파람 불 때 뉘우치’(송강 정철, 「장진주사」 중에서)지 않게끔, 열과 성을 다해 부지런히 마실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天地旣愛酒 천지가 하냥 즐기었거늘
愛酒不傀天 술을 좋아함을 어찌 부끄러워하리
俱得醉中趣 모두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物謂醒者傳 깨인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이백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 전문

아, 이왕이면 독작獨酌이 아니라, 그대들과 의기투합해서 제대로 진탕 한번 마시고 싶습니다그려!

세월아 가지마라/ 가는 세월 저절로 가지 못하게/
열두발 상모끈으로 묶어 신대 끝에 단단히 매달아두고//
나라 꼴 더럽게 하는 놈과/ 집안 꼴 욕되게 하는 놈과/
사람 꼴 우습게 하는 놈들/ 강림이 손에 심겨 좋은 데 먼저 보내버렸으니//
나머지 벗님네들 모여 앉아서/ 한 잔 더 먹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 졸시, 「사철광대가」 부분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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