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간첩'...영원히 덮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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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간첩'...영원히 덮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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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41>조작간첩의 진실

제주4.3평화기념관 제5관 「흐르는 섬 -끝나지 않은 4.3 후유증」 코너에는 ‘교육계 원로가 고정간첩으로 조작되다’라는 표제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제주4.3으로 붉은색이 덧씌워진 제주도민들은 사건 이후에도 냉전과 정치공작의 희생양이 되었다. 1977년 3월 25일자 1면에는 ‘거물간첩단을 검거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연루자 모두 제주사람이었다. 그중에는 제주교육대학 1・2대 학장출신도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인 재일동포가 고향을 방문했을 때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까지 받은 교육계 원로가 졸지에 고정간첩으로 조작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주4.3의 무참한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수의 제주도민들이 일본으로 밀항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조총련에 흡수되었고 이들과 친인척인 제주도민들이 간첩으로 몰려 희생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1965년에도 소위 ‘민주민족혁명당 사건’이란 것이 있었는데요. 역시 모두 제주도민들이 연루된 사건이었습니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것인데, 공안당국은 이들을 고문해서 거창한 사건으로 포장해서 혐의를 덧씌웠습니다.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한 번 찍혀진 붉은 낙인은 평생 이들을 따라다녔습니다.

그 ‘붉은 낙인’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멍에를 드리웁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에도 어떤 집단 전염병 바이러스 같은 것을 퍼뜨립니다.

‘간첩’이라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말 앞에서는 모두가 굳어버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피해자들이 아무리 명예를 회복하려고 발버둥쳐도 사회적 외면에서 벗어날 수 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조차 인혁당 가족들은 외면을 당하고 있었다. 특히 민청학련 가족들조차 인혁당 가족과 거리를 두었다. 자신들마저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천형을 받는 것과 같았다. 

  -김중미 지음,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다시 길을 나서다」 중에서

2008년 6월 23일 오전 11시55분, 진희종 선배에게서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강희철 무죄확정!”

떨리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인터넷 신문 기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2008년 6월 23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조작간첩 강희철씨 재심 선고공판에서 1986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13여 년간의 옥살이를 해 온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바로 답신을 보냈습니다.

“고생 많았수다 인권의 승리!”

강희철 선생도 역시 ‘조작간첩’입니다. 당국은 구체적인 물증도 없이 85일에 걸친 불법 구금과 고문을 통해 그를 고정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큰아버지가 일본으로 밀항한 조총련계 인사라는 점이 당국의 눈으로 볼 때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법부는 그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그는 13년을 복역해야만 했습니다. 

인권의 승리!
생사람을 잡아다가 생고생을 시킨 국가라는 폭력기구에 대한 준열한 심판이다!
진실의 승리!
폭행과 고문 협박과 감시의 생지옥을 뚫고 솟아난 빛나는 진실의 위대한 한판승이다!
‘억울한 한과 원통함 속에서 기만의 세월을 사느니 차라리 죽음으로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겠노라’는 목숨 건 단식투쟁과, ‘진실은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 없다’는  부단한 진실규명 싸움의 빛나는 수확 부활의 결정체다!

  -졸시, 「인권의 승리 진실의 승리, 강희철 선생의 무죄 확정을 기뻐하며」 부분

이 재심 재판의 변론을 주도한 최병모 변호사는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관련 조작간첩 사건이 100여 건에 이르고 그 중 제주도와 관련된 사건이 30%에 이른다"며 "강희철씨 사건은 재심청구 후 첫 무죄 케이스로, 독재정권 시대 조작간첩으로 몰린 사람들이 재심으로 통해 앞으로 무죄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30%에 달하는 사람들 중에는 ‘끝내 옥죄는 굴레를 벗지 못한 채 지하무덤에까지 낙인을 가져가야만 했던’ 이장형 선생이 있습니다. 또 ‘끝내 포승의 매듭을 풀지 못한 채 외진 일본땅에서 쓸쓸히 고국 바라보는’ 손유형 선생도 있고요. 이들처럼 여전히 많은 분들이 아직도 붉은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 글 앞에서 인용한 신문의 내용 중에 나오는 ‘강우규 사건’의 관련자 11명 중 5명이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상규명 신청을 했는데요.

결과는 그 중 3인은 '불법 구금, 가혹 행위, 범죄 사실 조작'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되었고요. 2인은 '불법 구금, 가혹 행위'는 진실 규명, '범죄 사실 조작'에 대해서 진실규명 불능으로, 전체적으로는 '일부 진실규명'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강우규씨에 대해서는 '암호 문건에 대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조작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당사자가 사망하여 정확히 알 수 없기에 간첩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관들은 이 사건 자체가 조작되었음을 확신하고 전부 진실규명으로 보고서를 썼으나, 위원회의 결정과정에서 '일부 진실 규명'으로 수정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인가 봅니다. 이들은 아직도 진실을 호도하고 왜곡하고 은폐하고 축소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린다고 영원히 감추어지지 않습니다. 막는다고 영원히 덮여지지는 않습니다. 역사는 항상 어느 순간에든 진실을 드러내고야 맙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선량한 국민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몇 해 전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법원과 판사가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한 부끄러운 과거사를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습니다.

이제 국가가 나설 차레입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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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우 2011-11-05 19:09:10 | 122.***.***.228
야만의 사회,여전히 진행형이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기회 되면 막걸리나 한 잔 하게,우리집에 놀레 오십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