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땅에서 일어서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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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땅에서 일어서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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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16) 삼다, 삼무, 삼호

아시다시피 제주도를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三多島)라고 하잖아요. 그 ‘삼다'에 대한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바람'은 자연의 거센 바람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육지부의 간섭이나 외세의 잦은 침입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바람을 막기 위해 집의 울타리나 밭담을 쌓기도 하고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돌로 환해장성을 쌓고 그 돌을 날려 무기로 쓰기도 했었지요. 그러니 바람과 돌은 침탈과 저항의 의미입니다.

또 외적의 침입 때 전사하거나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죽은 남자들이 많아서 여다(女多)가 된 것이고요. 제주4・3 당시에 남자들이 많이 죽은 북촌마을을 한때 ‘무남촌(無男村)’으로 불리기도 했었지요. 여자들은 남은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 고통을 이겨내는 강한 생존력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점에서 보면 제주의 삼다(三多)는 ‘침탈과 저항과 고통’이 많았던 역사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삼다의 전통 속에서 또 삼무의 사회정신이 있지요. 도둑과 대문 그리고 거지가 없다는 것에 대해 국제섬학회 회장 그랜트 맥갈이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가난이 없고 잠금이 없고 거지가 없는 것은 인간의 이상사회를 대표한다. 우리가 대문이 없고 잠금이 없는 사회에 산다면 그 것은 믿음의 사회이다. 가령 거지가 없는 것을 이야기해보면 그것은 거지가 있는 곳을 다 없애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거지 짓을 할 필요가 없고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는 사람들이 상부상조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에요. 삼무의 사상이 바로 공동체 세상입니다. 이는 어떤 이념으로써의 주의(主義)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는 사회사상입니다.

이 공동체는 바로 '삼호三好' 속에서 출발합니다. 삼호는 제주의 사회, 인간, 자연입니다. 서로 일을 도와주는 '수눌음'의 사회,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 환경이 살아있는 자연 이 세 가지가 제주 공동체의 기본이 되는 근간입니다.

지금도 제주도 해녀들의 잠수작업에는 그런 전통이 남아 있는데요. 넓은 바다를 어떤 특정 개인이나 관에서 소유하지 않고 해녀들의 공동소유로 관리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해산물 등의 수확물을 공동으로 채취해서 공동으로 판매합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외부에서는 한시도 가만히 놔두려 하지 않습니다. 외부의 물리적 폭력이 아름다운 전통의 사회와 인간과 자연을 모두 파괴하려 불 본 나방처럼 달려듭니다. 그때마다 제주도 민중들은 장두를 앞세워 같이 일어서서 싸운 겁니다. 그것이 역사에 ‘이재수의 난’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소위 ‘민란民亂’이라는 것들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민란이 아니라 민중항쟁이지만요.

공동체를 지키려는 최고조에 이른 열정을 끄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한 분량의 극한의 공포와 탄압을 가해야 합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분열과 개인의 해체를 가져옵니다. 이건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고 또한 인간성의 말살이라는 무서운 결말에 도달합니다.

저기 무너져 있구나
저기 처참하게도 무너져 있구나
이시믄 이신 양 어시믄 어신 양 오순도순 살던 그 마을이
이웃 집 돌담 너머 제사음식 나누던 그 정이
무너진 밭담 사이로 휑하니 찬바람만
무너진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는구나

이 공동체의 파괴가 현실에서도 그대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민중항쟁에서처럼 중앙정부의 오만한 독선과 강요로 인한 것입니다. 강정마을입니다. 해군기지라는 것 때문에 강정마을의 자연이 파괴되고, 사회가 파괴되고, 인간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 파괴했다고 해도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전통의 맥을 다시 잇습니다. 다시 살아나서 제주의 사회, 인간, 자연의 공동체를 회복합니다.

제주4・3에서 처럼 제주도민들이 폭력세력의 총칼 앞에 죽어가면서도 바랬던 그 사회, 가진 것 없지만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사는 그런 세상. 그것은 멀리 있는 이상사회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제주도의 전통과 현실적인 삶 속에 이미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들불 놓아 다 태워도/ 마른 땅에 뿌리까진 못 죽여/ 봄이면 어김없이 생풀 돋아난다/ 악착같이 피어나는’/ (-졸시, 「기적」 부분) 생명의 융성을 그 어떤 누구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강정은 그렇게 생명의 마을로 ‘기적’처럼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영원한 평화의 마을로 우리 앞에 언제나 함게 있을 것입니다.

무너진 공동체의 회복은 바로 그 아픔을 현실에서 가장 절실히 겪고 있는 강정마을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사람과 사회와 자연, 삼호(三好)의 가장 전형적인 마을이 바로 강정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없고, 독점이 없고, 강제가 없는 새로운 삼무(三無)의 공동체! 그리하여 평화가 있고, 자유가 있고, 평등이 있는 새로운 삼다(三多)의 공동체가 강정에서부터 실현될 것입니다.

여기 일어서고 있네
버려진 사람들이 버려진 채로 갈라지지 않고
여기 일어서고 있네 버려진 곡식 낱알 열매들이
버려진 땅에서 일어서고 있네

여기 다시 세우고 있네
무너진 밭담 울담이 저대로 마냥 무너진 채 있지 않고
촘촘히 바람구멍 막아가며 튼튼히 세워지고 있네
무너진 사람들이 무너지지 않고 무너진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고 있네
여기 원래대로 되살아나고 있네
· - 졸시, 「복원(復元) -무너진 제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하여」 부분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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