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울리는 차고지증명제...90만원 낸 공영주차장도 주차 어렵다

공영주차장 차고지증명 임차 방식 논란...돈만 받고 '나 몰라라'
시행 취지 무색...시민들도 불만,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현기종 의원 "임차했는데 만차시 '주차불가', 말이 안돼...개선 시급"

2023-03-14     윤철수 기자

제주특별자치도가 교통난과 주차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해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무주택 서민과 청년들만 옥죄며 쥐어짜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자기 차고지를 가질 수 없는 서민들의 경우 자동차를 신규 구입하거나 이전 등록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공영주차장 등을 임차해 차고지증명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의 임차방식도 논란이 되고 있다.

1년 단위 임차료를 선불로 지불했으나, 지정된 공간이 배정되지 않아 주차하기도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고지증명제는 2007년 대형차량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됐고, 2017년부터는 중형차까지 확대됐다. 지난해부터는 경.소형 차량까지 등록 대상으로 포함됐다.

이 제도 시행 후 차고지증명 등록차량은 점차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도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말 기준으로 제주도내 전체 자가용 차량 36만8160대 중 차고지 증명이 이뤄진 차량은 28%에 이르는 10만2971대로 집계됐다. 

현재 제주시에 등록한 차고지증명 차량 7만2620대 중 자기차고지는 6만 6659대, 임차는 5601대로 나타났다. 임차 중 381대는 공영주차장 임차, 나머지는 민간 주차장 등을 임차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스러운 점은, 행정당국의 적극적 지원으로 단독주택 등에서 '자기차고지 갖기' 사업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무주택 서민들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없는 실정이다. 차고지가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인근 공영주차장의 1년 단위 정기주차 요금을 별도로 납부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 금액이 만만치 않다. 차고지 증명용 공영주차장의 1년 요금은 동(洞) 지역은 90만원, 읍.면지역은 66만원이다. 이는 중.소형 자동차 소유자가 연간 납부하는 자동차세 금액보다도 갑절 가까이 많은 금액이다. 사실상 '세금 폭탄'으로 불리는 이유다.

집 없는 무주택자와, 원룸 등에 사는 청년 등에 대해서는 차를 사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반 서민적 차별정책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서민들의 경우 울며 겨자먹기로 공영주차장을 임차하더라도, 주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90만원을 냈으나 지정된 주차공간을 배정받지 못해 차를 못 세우는 일이 허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도심권 공영주차장의 경우 심야시간이나 공휴일에는 무료로 운영되면서 '만차'가 되는 날이 많아 지정 주차면을 배정받지 못할 경우 인근 주택가 골목에 불법 주차를 해야 상황이다. 

이는 주차난 완화'라는 제도 시행의 취지에도 역행하는 것으로, 행정당국이 집 없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돈 벌이'를 하고 기만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행정당국은 임차 계약을 할 당시 고지된 사안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임차 계약 영수증에 '만차시 주차장 이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는 점을 든 것이다.

실제 제주도는 '제주도에 바란다' 올린 글을 통해 "지정석은 없다. 공영주차장 임대비용 결제 시 영수증에 (지정 공간 배정이 없다는 부분의) 유의사항이 게재돼 있다"고 했다.

"제가 만약 1년에 90만원 내고 공영주차장 임대를 했으나, 다른 차량들로 인해 주차장이 만차인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제 지정석이 있는 것이냐"는 한 시민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제주도는 "공영 유료 주차장을 차고지증명으로 허용하는 것은 당장 차고지 확보가 어려울 경우 확보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제공하는 차원으로 차고지증명을 위해 일시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제시했다.

온라인 게시판에는 차고지증명제와 관련해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며 원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는 매번 '방어적 답변' 일색이다. 제도개선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적극적 답변은 찾아볼 수도 없다.

이러한 가운데, 제주시가 최근 공영주차장에 차고지증명용 차량들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나 귀추가 주목된다. 

제주시 관계자는 14일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공영주차장을 임차하는 경우 만차시 이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고지됐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주차장이 만차되어 주차가 어려울 경우 복층화 주차장 등의 경우 오후 6시 이후에는 가장 상단층에 차고지증명 등록 차량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해보려고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차고지증명제의 불합리한 점에 대한 제주도 차원의 적극적 제도개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집 없는 서민들에게만 전가하는 임차요금 부담 문제는 물론, 공영주차장 임차시에도 지정공간이 배정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의정활동 과정에서 차고지증명제 관련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제주도의회 현기종 의원(국민의힘, 성산읍)은 "많은 돈을 내어 공영주차장을 임차했는데 만차시 '주차 불가'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은다"면서 "이는 행정 스스로 차고지 증명제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 의원은 "다행히 제주시 담당국장이 업무보고 답변에서도 복층주차장 맨 상단층에는 오후 6시 이후 차고지증명 차량들이 세울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했는데 이것 말고도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차고지를 갖지 못하는 시민들은 주로 무주택자이고, 취업을 준비하거나 갓 사회에 입문한 청년들, 생계형으로 화물차를 운전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차고지 증명제에 따른 부담이 매우 크다"면서 "현재 적용 유예 대상에 차상위계층까지만 돼 있는데, 어려운 서민들까지 확대해 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공영주차장 임대도 2년까지만 이용이 가능하도록 돼 있어, 그 이후에는 자기차고지 없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는 상태"라며 "앞으로 집 없는 서민들에게만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가 이뤄질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주시는 도의회 업무보고 자료를 통해 차고지증명제 불편사항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제주도 관계부서와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도에 건의한 내용을 보면 △부설주차장 및 자기차고지 출입구에 다른 차량 통행 방지행위 등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제제 근거 신설 △생계형 차량 및 교통약자 대상 개선 대책 마련 △공영주차장 임대규정 완화 △교통약자 제외대상 확대 △읍면지역 어려운 사례 개선 등이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