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추념식, 6살때 가족 모두 잃은 유족사연에 눈시울

강춘희 할머니 사연 소개..."4.3은 우리 가족 모두를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2022-04-03     홍창빈 기자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엄수된 제74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는 4.3당시 6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 모두를 잃고 한평생 한을 품고 살아온 강춘희 할머니(77. 제주시 삼도2동)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 유족의 사연은 배우 박정자 씨가 독백하며 할머니의 마음을 표현, 더 큰 울림을 전했다.

"저는 4.3으로 제 가족을 모두 잃었습니다. 토벌대에 연행되어 지금도 소식을 알 길 없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모진 고문 속에 목포형무소로 이송 중 돌아가신 할아버지, 주정 공장에 잡혀간 어머니와 한 살 배기 젖먹이 내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배고파 우는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함께 매를 맞고 그 후유증으로 3살 때까지 걷지도 못하다 세상을 떴습니다."

강 할머니는 "4.3은 화목했던 우리 가족을 모두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면서 "살아남은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6살의 저는 참으로 막막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어 "제 마음 속 더 큰 피해자는 우리 할머니, 어머니이다. 할머니는 아들인 제 아버지를, 어머니는 아들인 제 동생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또 "할머니는 엄마 품에서 떠난 손주를 아무도 모르게 직접 묻고, 아픈 몸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주정공장에서 뼈마디가 부러지는 구타를 당한 어머니는 아픔과 한을 품은 채 사시다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는 치매에 걸려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당신의 품에서 떠난 어린 아들의 기억만은 꼭 붙들고 계셨다"고 했다. 

"(4.3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도망가라 아가야, 어서 도망가, 저 대나무밭 속으로, 담 너머 어서 숨어라.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불구덩이 속에서 어린 제 동생을 구하고 계셨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게 가여워 출생 신고도 하지 못한 그 아들 말이다."

박정자씨가 이 사연을 소개하는 동안 유족들은 크게 흐느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옆에 자리해 앉았던 강 할머니는 오열했다.

사연을 낭독하고 단상에서 내려온 박정자씨도 강 할머니와 포옹하며 눈물을 흘렸다. 

뒤이어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가수 양지은의 추모곡 '상사화'의 애달픈 선율로 장내는 더욱 숙연해졌다.  <헤드라인제주>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추모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