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회 '비자림로 촉구 결의안', 그 발상이 매우 위험스럽다

[데스크논단] 비자림로 조기개설 촉구 결의안, 비판받는 이유
'민의 전당' 도의회가 도민 목소리 차단, 기본권 제약...민주주의 역행
"반대단체 강력 대응", "환경부 눈치보지 말고"...역대급 '나쁜 결의안'

2021-09-07     윤철수 기자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7일 열린 제398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비자림로 확·포장사업 조기 개설 촉구 결의안'은 이 사업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대단히 우려스럽다. 

도민사회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가로막고, 개발사업에 있어 반대 목소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도발에 다름 없다. 민의의 전당이라고 자처하는 도의회가 스스로 그 역할을 포기하고, 도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며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독차지한 제11대 의회에서 이런 결의안이 상정되고 통과됐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놀랍고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혹평이 결의안 발의를 주도한 의원들 입장에서는 '과도한 비판'이라며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의안 발의취지와 내용을 들여다보면, 백번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가 결론이다. 

이런 결의안을 만든 최초의 발상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다. 비자림로 사업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차원이 아니다. 도의회의 역할론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져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접근방식과 방법론적인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내용 하나하나가 매우 위험스럽다.

더불어민주당 고용호 의원을 대표로 해 26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한 이 결의안은 결의안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사업 추진과정에서 환경생태계 훼손 논란이 불거지면서 중단된 비자림로(대천~송당) 확.포장 공사를 조속히 추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결의안은 지방의회 부활 이후 나온 의안 중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최악의 '나쁜 선례'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를 따져보자.

첫째, 결의안을 발의한 목적부터 동의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두 말 없이 공사를 추진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세상에 이런 억지가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억지를 써도 이런 억지가 없다. 

정부와 제주도정이 밀어붙이기를 해도 제동을 걸며 철저한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할 도의회가 오히려 제기된 논란을 묻어두도록 하며, 공사를 빨리 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현재 비자림로 공사가 왜 중단됐는지, 도의회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현재의 공사 중단 상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찬성과 반대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구와 연관된 의원들의 경우 할 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부 영산강환경청이 공사를 중단시킨 데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환경훼손 논란 해소 및 법종보호종 보호 대책 수립 등에 대한 제주도정과의 최종 협의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제기된 환경문제에 대한 보완 및 협의가 원만히 이뤄지면 공사는 자연스럽게 재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이러한 행정절차 속에서 사업은 추진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도의회가 해야 할 역할은 철저한 감시와 확인이다. 공사가 재개될 경우 환경단체 등에서 제기했던 문제와 의구심은 충분히 해소되었는지, 이 정도면 공사를 진행해도 문제가 없을지 현장을 확인하며 도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 이것이 도의회에게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환경부와 도정으로 하여금 하루빨리 서둘러 공사를 추진하라고 압박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둘째, 결의안에 적시된 내용도 문제다. 상식 이하이고, 도의원들의 사고(思考) 능력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최초 발의안에서는 비자림로 공사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활동에 대해 "지역의 공공사업에 대해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는 반대단체의 조직적 활동에 강력히 대응하여..."라고 명시했다. 반대 주장을 하는 시민들을 마치 '사회적 악'으로 규정한 것에 다름없다.

"환경부에서는 눈치보지 말고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한 거시적인 환경적 가치에 더 큰 고민을 해줄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전국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공공사업에 대해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는 반대단체의 조직적 활동에 대한 공동의 대책 마련을 제안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숙원사업과 공공을 위한 공익사업에 대한 반대단체의 조직적 활동에 강력히 대응하여 주민의 권리와 이익을 최우선해야 한다."
"환경부에서는 눈치보지 말고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한 거시적인 환경적 가치에 더 큰 고민을 해줄 것을 촉구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지방의회 입장에서 정부기관에 전하는 요구사항 치고는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도민 의견을 잘 반영해달라고 요청해도 모자랄 판에, '눈치 보지말고' 밀어붙이라고 주문했으니 말이다.

이런 한심하고 비상식적인 내용이 포함된 결의안에 도의원들이 앞다퉈 서명했다. 도의회의 존립 이유를 스스로 저버린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도 모자라, 소관 상임위원회인 환경도시위원회에서는 그대로 통과시켰다. 쏟아진 비판적 여론을 의식했는지,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는 반대단체의 조직적 활동에 대한 대응'과 '눈치보지 말고'라는 문구는 삭제했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큰 몇 단어만 삭제했을 뿐, 최초의 문장 틀은 그대로 유지했다. 반대단체에 대응한다는 부분은 뺐지만, 전체적 내용의 흐름에서 그 기조는 변함이 없었다. 환경부에 전하는 주문에서 '눈치보지 말고'라는 수식은 뺐지만 조속히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가하라는 압박 기조는 그대로였다. 도민 기만이다.

개발사업에 묻지마식으로 힘을 실어주는 환경도시위원회의 한심한 행보, 오죽했으면 상임위원회 명칭에서도 차라리 '환경'을 삭제하라는 성난 목소리까지 분출될까.   

셋째, 이 결의안은 도의회가 '민의의 전당'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현안과 이슈에 있어 다양한 찬반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때로는 갈등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도민 공감대 및 사회적 합의라는 절차가 중요하게 제기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양한 찬반 의견이 표출되는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과 설득 과정을 거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 원리다.

그렇다면, 이번 도의회의 결의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 아닐 수 없다. 시민사회 갈등 이슈에 대해 찬반의견을 잘 보듬어안고, 중재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도의회가 자신의 개인적 의견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 주장을 매도하며 짓밟는 거침없는 행동이 놀라울 따름이다. 

도의회가 오히려 도민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고 갈등과 분란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의안 처리에는 누가 동조했는가.

본회의 표결 결과 재석의원 35명 중 찬성 26명, 반대 7명, 기권 2명이 나왔다.

대표발의한 고용호 의원과 환경도시위원회 위원장인 강성의 의원을 비롯해, 강민숙 의원, 강성균 의원, 강성민 의원, 강시백 의원, 강연호 의원, 강충룡 의원, 고태순 의원, 김경학 의원, 김대진 의원, 김장영 의원, 김창식 의원, 김황국 의원, 문경운 의원, 문종태 의원, 박호형 의원, 안창남 의원, 부공남 의원, 송영훈 의원, 오대익 의원, 오영희 의원, 이경용 의원, 이승아 의원, 임정은 의원, 조훈배 의원이 '찬성' 표결을 했다.

김용범 의원, 박원철 의원, 양영식 의원, 이상봉 의원, 정민구 의원, 현길호 의원, 홍명환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김경미 의원과 김태석 의원은 기권했다.

강철남 의원, 고현수 의원, 김희현 의원, 송창권 의원, 양병우 의원은 이날 표결에 불참했다. 고은실 의원은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잘못된 점이 있다. 왜 꼭 전체 의원에게 가부를 물어 결의안으로 채택하려고 했는지가 의문이다. 의원 개인의 소신으로서 의정활동 과정에서 조속한 건설을 요구하든, 사업 중단을 요구하든 제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도정질문을 통해서도 도지사에게 직접적으로 촉구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발언의 적절성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의원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결의안은 다르다. 이는 제주도의회라는 기관의 입장으로 채택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내용은 더욱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도의회가 이번에 왜 도민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편향된 내용의 결의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는지, 이해 불가한 일이다. 비자림로 조기 건설을 촉구했다고 해서 가하는 비판이 아니다. 설령 사업 반대 입장을 담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결의안의 목적, 형식, 내용, 그리고 도의회의 역할론 면에서 설득력 및 타당성이 약할 뿐만 아니라, 절차적으로도 당위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역행한 역대급 '나쁜 결의안'의 강행 처리에,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반환경 개발독재 회귀"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민의의 전당인 도의회가 그런 비판에 직면한 현실이 안타깝다. <헤드라인제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에 상정된 비자림로 개설촉구 결의안 제안 설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