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강아지들이 정착한 '행복이네', 그곳에는 누가?

유기견 품은 22년 외길, '행복이네' 고길자 소장
2년 전 새로운 보금자리..."언제나 함께 행복한 세상 꿈꿔요"

2021-05-06     이창준 기자
지난

낯선 이를 보자 흥분해 마구 짖던 개들이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곤 이내 차분해졌다.

“왜 또 그래! 뭐가 불만이야!” 호통에도 개들은 그 목소리가 마냥 좋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얼굴에 깊은 흉터가 새겨진 개부터 한쪽 다리가 없는 개, 앞이 보이지 않아 따로 격리된 개, 간질 때문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개까지 수많은 사연과 아픔이 있는 유기견들이 보호소에 다양하게 있었다.

초록색 펜스로 지어진 유기견들의 집. 바닥은 나름 푹신한 잔디가 깔려있고 공간은 뛰어놀기에 충분한 크기다. 마당의 자갈밭은 나름 고르게 정돈됐고 한쪽 구석엔 화분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다. 이 넓은 공간을 홀로 관리하는 사람, 유기견 한 마리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 고길자(65) ‘행복이네’ 소장이다.

제주시 아라2동 소재 ‘행복이네’는 지난 2019년 9월부터 고길자씨가 운영하고 있는 민간유기견 보호소다. 그녀는 22년 동안 제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유기견을 돌보다, 1년 8개월 전부터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의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100여 마리 이상의 유기견들과 함께 제주시 아라2동에 본격적으로 정착을 했다.

고길자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따뜻한 햇살이 ‘행복이네’ 마당을 적시던 지난 28일 고 소장을 만나 유기견들과 함께 지내게 된 그녀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때는 22년 전 겨울. 매서운 눈보라가 절간에 쌓이던 날이었다. 고 소장은 절친한 친구 기일 날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났다. 그녀는 오순도순 그간 있었던 일들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 도중 옆에 있던 친구가 따로 말을 걸어왔다. “길자야 내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엄청 귀엽거든? 한 마리만 돌봐줘라”

고 소장은 탐탁지 않았다. 개 알레르기가 심했던 탓에 평소 개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개들 근처만 가면 코를 막고 다녔다. 알레르기는 특별한 약이 없는 탓에 가까이 하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고 소장은 친구와 눈밭에서 한동안 그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눈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꼬물꼬물 기어 오더니 그녀의 발밑에서 멈춰 섰다. 버림받은 강아지였다. 당시를 회상하던 고 소장은 “꿈인 줄 알았어요. 정말 꿈같이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눈이 마주쳤고 그때 ‘우리는 만날 인연이었구나’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친구에게 조금의 고민도 없이 “네 강아지는 네가 키우고 나는 내 강아지 키울게”라는 말을 남긴 채 새끼 강아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길자
ⓒ헤드라인제주

제주시 이호테우 해변에서 음식 장사를 하던 고 소장은 새끼 강아지를 데려온 이후로 길가를 떠도는 개 한 마리가 자꾸 눈에 밟혔다. 처음엔 ’주인이 있겠지’, ‘알아서 돌아가겠지’ 생각을 했지만 매번 똑같은 개가 해수욕장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갈수록 야위었고 꼬장꼬장해졌다. 그녀는 ‘그래, 한 마리만 더 데려가자’ 생각하고 그 개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 식으로 며칠 만에 단숨에 유기견 여섯 마리를 보호하게 됐다. 가족들이 ‘아이고 못산다’ 했지만 그래도 가족 모두 아이들을 가엾게 여기며 잘 돌봐줬다.

고 소장은 아파트를 팔고 가족들과 이사를 가게 됐다. 유기견을 계속 돌보기엔 아파트는 제약이 많았다. 주변 지인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컸다. 개들에게도 비좁은 공간이 좋을 게 없었다. 그렇지만 보호하게 된 유기견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는 점이 이사를 한 가장 주된 이유였다. 그래서 이들 가족은 제주시 도남동의 어느 넓은 주택가로 거주지를 옮겼다.

마당도 있었고 집도 넓었다. 이웃들도 멀리 떨어져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유기견을 돌보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무리 관리를 하고 교육을 시켜도 수십 마리의 개들이 한밤중에 짖으면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소음, 냄새 등 이웃들의 크고 작은 항의가 이어졌다. 고 소장은 그런 식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스스로도 내키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큰 결심을 내렸다. 혼자 유기견들을 데리고 인적 없는 조용한 곳으로 떠나겠다고.

예고에도 없었던 그 해 겨울에 일어난 일. 꿈처럼 아름다웠던 그날이 고 소장의 삶을 한 순간에 바꿔 놨다. 그 강아지가 오지 않았었다면 그녀는 어느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까. 하지만 고 소장은 그런 가정이 무색하게 “저 아이들을 봐요, 말은 못해도 다 느낄 수 있어요.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금 한 가족인걸요”라고 애기했다.

이후로 고 소장은 10여년을 돌아다녔다. 한 마리의 유기견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1년 전 사라봉 부근에 땅을 빌려 새롭게 자리를 꾸렸다. 인적도 드물고 공간도 넓었다. 9년을 그곳에서 80여 마리의 유기견들과 지냈다. 이제야 제대로 정착을 하나 싶었다.

고길자
ⓒ헤드라인제주

하지만 행복은 10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땅주인이 고 소장에게 말도 없이 시청에 땅을 팔아버린 것이다. 그녀는 또다시 유기견들과 길거리로 나오게 됐다. 고 소장은 유기견들과 함께 지낸 이래로 그 당시 가장 많이 울었다고 한다. 몸도 안 좋아지고 모아둔 돈은 전부 써버려서 새로운 터전을 찾기는 커녕 강아지 치료비, 사료비도 간당간당했다.

고 소장은 “모두 포기해버릴까 잠깐 생각도 했었어요. 이정도면 우리 충분히 잘해왔으니까 가장 편한 방법을 선택할까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요. 어차피 이 아이들도 나 없으면 이전과 똑같은 신세가 될 게 뻔했으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에서 기자 한명이 찾아왔다. 그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왔다고 했다. 당시 그녀는 언론, 제보, 후원 등에 조금의 관심도 없었고 당장 오늘이 급했던 상황인지라 크게 신경쓰지도, 반기지도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하는 일을 알아봐주고 아이들의 딱한 상황을 알려주겠다고 하니 인터뷰에는 성실히 임했다. 기사가 다녀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언론사, 연예인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공중파 방송도 나가고 후원금도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약하지만 처음 느껴본 희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행복이네’를 있게 해준 서울의 모 제약회사 대표까지 만나게 됐다. 그는 우연히 방송을 보고 연락했다고 얘기했다. 제주도에 안쓰는 땅이 있는데 산 속에 있어 조용하고 꽤나 넓다며 필요하다면 사용해도 좋다고 흔쾌히 제안을 했다.

그렇지만 고 소장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땅도 땅인데 그곳을 보호소로 운영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실은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고 소장은 야간에 편의점에서 일하고 아침에 돌아오면 곧장 견사 청소를 한 후 귤 밭으로 출근을 했다. 때론 주방에서 설거지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을 해도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일진데 공간을 다시 꾸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며칠 후 제약회사 대표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망설이고 있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면 금전적 지원도 해주겠다고 했다. 스스로 견적을 내보고 필요한 것은 전부 얘기하라는데 고 소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어 한참을 고민하다 예상 견적을 절반이나 작게 불렀다. 그 결과 또다시 큰 빚을 지게 됐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로 제대로 된, 안정적인 공간을 갖게 된 거 같아 그간의 서러움이 사르르 녹았다. 유기견들에게 고 소장이 찾아온 것처럼 고 소장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희망이 희박하게라도 이어졌다. 그렇게 한 달여간 공사가 진행됐다. 드디어 그에게도, 유기견들에게도 자그마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안식처가 생겼다.

지난
고길자
지난

오는 9월이면 제주시 아라동에서 ‘행복이네’를 운영한지 2년째가 된다. 유기견들과 함께 산지는 22년째다. 그녀의 삶은 한층 나아졌을까. 유기견들은 좀 더 편해졌을지 몰라도 고 소장은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아직도 제주도 곳곳에는 유기견들이 하루가 위태롭게 떠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일주일에 10마리 이상 구조요청이 들어온 적도 한다. 최근에는 한밤 중에 연락이 왔다. 한라산 1400고지 인근 공동묘지에 5마리 개가 유기됐다는 제보였다. 

요즘 고 소장은 몸이 좋지 않다. 머리에는 큰 혹이 두개나 생겨 정밀검진을 받아봐야 하는 상황이고 다리도 수술이 시급하다. 하지만 구조 제보가 들어오면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적이 없다. 며칠 전엔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는데도 곧장 1400고지로 달려가 유기견 5마리를 구조해왔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들이 꿈에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고 소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결같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비가 올 때마다 버틸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제약회사 대표님은 자신의 주변 지인들을 끌어들여 지금도 사료 후원을 해주고 있어요”라며 “그 분이 아니었다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매번 가는 동물병원 병원장님은 모든 치료비를 외상으로 해주는데요, 한 번도 독촉을 한 적이 없어요”라며 “저의 개인적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시는 분이라 제가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우리 ‘봉투’ 친구들, ‘제멍냥’ 친구들도 평일, 주말 파트를 나눠 봉사활동을 와주는데 올 때마다 즐겁게 임해줘서 저도 아이들도 더 기운 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울러 “제가 사람한테 많이 배신당해서 후원해준다는 사람들도,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도 쉽게 못 믿게 돼 날카롭게 대하는데 그럼에도 작게나마 도움을 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항상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걸 아실지 모르겠네요”라고 덧붙였다.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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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을 동고동락해오며 온갖 풍파를 함께 겪어온 유기견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녀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고 소장은 “반려견의 의미를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삶의 또 다른 반려를 생각할 때는 쉽게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는데 왜 개들한테는 그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입양 문의를 할 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품종견만 찾고 ‘값어치’를 생각하는데 그런 분들한테는 개를 못보내요. 또다시 버려질 확률이 크거든요”라며 “개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은 함부로, 쉽게 다루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럴수록 우리만 초라해져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개들이 말을 못한다고 생각까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라며 “얘들도 웃고 울어요. 감정이 풍부해요. 때론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고 감수성이 깊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얘들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질 수 있고 얘들이 슬프면 저도 슬퍼지게 돼요”라며 “사람만 잘 살 수는 없다는 걸 매번 느껴요”라고 말했다.

아울러 “다 같이 사는 삶이 중요해요.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면 더 잘 살 수 있을 거에요” 라며 “그래서 특히 우리랑 가장 가까이 있는 개들에 대해서, 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서 모두 함께 잘 지내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