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광복절 경축식, 원희룡 지사 발언에 '고성.항의' 파장

원 지사, 광복회장 기념사 내용에 돌출적 비판 발언 구설수
"이런식 기념사 보내오면 경축식 안할 수도" 격한 발언 쏟아내
장내 항의.고성 이어져...좌남수 의장도 원 지사 우회적 비판

2020-08-15     홍창빈 기자
15일

15일 오전 10시 제주시 조천체육관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은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돌출 발언으로 고성과 항의가 이어지는 등 소동이 빚어졌다.

제주특별자치도 주관으로 열린 이날 경축식에는 원희룡 지사와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을 비롯한 기관.단체장과 독립유공자와 유족, 광복회원 등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경축식에서는 먼저 제주인의 항일운동 의지를 표현하는 경축 공연과 제주의 항일운동을 소개하는 기념영상 등 광복을 위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돌아보고 애국정신을 일깨우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날 제주 출신으로 1930년 당시 전남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중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동맹휴교를 계획하다 퇴학처분을 받는 등 활동을 전개해 최근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고(故) 강봉근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원 지사의 이날 돌출발언은 김률근 광복회 제주도지부장이 대신 낭독한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 직후 나왔다.

김원웅 회장이 기념사에서 "21대 총선을 앞둬 후보 1109명 전원에게 국립묘지에서 친일.반민족 인사의 묘를 이장할 것인지, 만약 이장을 안 할 경우 묘지에 친일 행적비를 세우는 국립묘지법 개정에 대한 찬반을 물었고, 지역구 당선자 253명 중 190명이 찬성했다"면서 "올해 가을 정기국회에서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리라 믿는다"고 밝힌데 대한 비판이다.

기념사 서두에서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뚫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제주4.3항쟁, 4.19혁명, 부마항쟁, 광주 5.18항쟁, 6월 항쟁, 촛불혁명은 친일 반민족 권력에 맞선 국민의 저항이었다. 이들 항쟁은 일제강점에 맞선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밝힌 김 회장은 '친일 청산'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는 "지난 75년간 강고하게 형성된 친일세력이 민족 공동체의 숨통을 억죄고 있다. 이  거대한 절망을 무너뜨리느냐, 못하느냐 우리는 지금 운명적 대전환의 길목에 서있다"면서 "우리 역사의 주류가 아니라 독립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행적과 관련해,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이다"고 성토했다.
 
원 지사는 김 지부장의 기념사 대독이 끝난 후 단상에 올라 미리 준비한 경축사를 낭독하지 않고 김원웅 회장의 기념사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원 지사는 "우리 국민의 대다수와 제주도민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매우 치우친 역사관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를 기념사라고 해서 광복회 제주지부장에게 대독하게 만든 이 처사에 대해 매우 유감이며, 제주도지사로서 기념사의 내용을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이어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온 분들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평생, 앞으로 후손 대대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면서 "하지만 태어나 보니 일본 식민지였고, 거기에서 일본 식민지의 신민으로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없는 인생경로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다. 비록 모두가 독립운동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식민지 백성으로 살았던 것이 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친일) 앞잡이는 단죄를 받아야 하겠죠"라면서도, "하지만 인간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특히 역사 앞에서 나라를 잃은 주권없는 백성은 한없이 연약하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과 과를 함께 보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또 "3년의 해방 정국을 거쳐 김일성 공산군대가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 왔을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던 군인들과 국민들이 있다. 그분들 중에는 일본 군대에 복무를 했던 분도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그 공을 우리가 보면서 역사 앞에서 공과 과를 겸허하게 우리가 보는 것이다"고도 말했다.

원 지사는 "그 후로 세계 최후진국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이 있었고, 민주화를 위한 많은 희생이 있었다. 오늘의 선진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분들의 공이 있었고, 그 공의 그늘에는 과도 있었다"면서 "지금 75주년을 맞은 광복절 이때에, 역사의 한 시기에 이편 저편을 나눠서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단죄받아야 하는, 그런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조각내고 국민을 다시 편가르기 하는 그런 시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원 지사의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이런 식의 (광복회장) 기념사를 또 보내온다면, 저희는 광복절 경축식에 모든 계획과 행정집행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광복절 경축식 행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발언이다.

그는 "(광복절 경축식은) 특정 정치견해 집회가 아니다. 바로 이 75년 과거의 역사의 아픔을 우리가 서로 보듬고, 현재의 갈등을 통합하고 미래를 위해 새로운 활력을 내야될 광복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열망한다"고 말했다.

제75주년

이날 원 지사의 발언은 친일 청산 문제에 대해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향후 경축식 개최 안할 수도 있다는 '엄포'까지 가해지면서 부적절 논란을 자초했다.

현장에서 원 지사의 발언을 듣던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항의와 고성이 이어졌다. 독립유공자 손자는 원 지사 발언 도중 분통을 터뜨리며 강력히 항의했다.

도의원들 중 일부에서도 항의하며 퇴장했고, 일부 의원들은 도지사에게 발언 그만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장내가 극도로 경색되고, 파행 분위기로 흐르자 막바지 좌남수 의장과 이석문 교육감은 '만세삼창'에 앞서 잠깐씩 발언기회를 얻고 원 지사를 향해 우회적 비판을 가했다.

좌 의장은 "오늘 광복절이다. 광복절은 선조들이 피땀흘려 일궈낸 기념일이다. 그런데 오늘 아쉽게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자리로 변모했다"며 "광복회나 지사님이나 서로가 다름을 인정할때만 진정한 독립.광복.평화가 올 것이다. 우리 모두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돌출적 발언을 쏟아낸 원 지사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석문 교육감도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했다.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이 되는 해이다. 365일은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 만큼은, 이 시간 만큼은 선열들의 뜻에 함께한다"고 말했다. 

이날 경축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좌석간 2m 거리두기를 하면서 참석 인원은 100명 이내로 제한됐다.
 
이번 일련의 소동의 상황은 제주도에서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경축행사 실황을 생중계하면서 전파됐다.

행사에 참석한 도의원들은 "설령 기념사의 내용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경축식 행사자리에서 돌출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면서 "특히 경축식을 앞으로 안할 수도 있다는 발언은 도지사로서 매우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