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자치경찰제 폐지 법안 발의, 일방적 횡포 다름없다

[데스크논단] 제주 자치경찰제 폐지 추진의 절차적 하자
도민의견 묻지도 않고 발의...제주도 15년은 '실험'이었나

2020-08-09     윤철수 기자
제주자치경찰단

2006년 7월1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탄생한 제주자치경찰단이 창설 15년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자치경찰과 국가경찰 조직을 하나로 합치는 내용의 경찰법, 경찰공원법 개정안이 발의돼 21대 국회에 제출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자치경찰 조직을 별도 신설하지 않고 국가경찰로 일원화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국가경찰은 행정안전부, 제주도에 유일하게 있는 자치경찰은 지자체(제주도) 산하 조직으로 분리해 운영되고 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자치경찰은 경찰청 산하로 편입돼 국가경찰이 된다는 것이다.

일원화된 경찰조직의 사무는 크게 3개 분야로 구분된다. 법안에서는 보안과 정보 업무를 맡는 국가경찰, 강력 범죄 등을 수사하는 수사경찰, 여성청소년 범죄와 교통 등 주민밀착형 업무를 담당하는 자치경찰로 나누고 있다.

국가사무는 경찰청장, 수사사무는 국가수사본부장, 자치사무는 시·도 자치경찰위원회가 지휘·감독하도록 했다. 국가경찰로 편입되더라도 자치경찰은 지자체 산하의 시.도 경찰위원회의 통제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속은 지자체가 아니라 엄연한 행정안전부 소속의 '국가경찰'이다. 그렇기에 이 법안이 통과되면 현재의 제주자치경찰단의 독립적 지위는 상실된다. 사실상 폐지되는 것이다.

제주자치경찰단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창설됐다. 

이의 조직은 현재 △경찰정책관 △생활안전과 △교통과 △아동청소년과 △관광경찰과 △수사과 △교통정보센터 △서귀포지역경찰대 등 '1관 5과 1대 1센터'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 관광지 특성에 맞는 치안을 위해 지난 2012년 '자치경찰 기마대'가, 2016년 '관광경찰과'가 각각 신설되기도 했다. 인력은 2006년 출범 당시 38명으로 시작해 현재 151명으로 확대됐다.
 
주민생활과 밀접한 교통과 생활안전 치안은 물론, 관광 및 산림, 환경, 식품위생 등에 대한 단속 및 수사를 전담해 온 자치경찰이 이번에 갑작스럽게 돌출된 '폐지 법안'으로 폐지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참으로 당혹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법안을 발의한 김영배 의원은 이번 자치경찰제 법안이 66년 만에 이루어진 검경수사권 조정 등 권력기관 개혁의 후속 조치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의 마지막 퍼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는 지역의 특성 및 현실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 법안 소식이 알려지자 지역의 기능을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6일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지역주민의 생활 안전과 질서유지 업무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치경찰이 국가경찰화 되면 조직 비대화와 경직화로 지역특색을 반영한 업무, 주민생활과 밀착 되는 여러 사안들에 신속히 대응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물론, 국가경찰로 일원화시키는 것이 좋은지, 현행 제주도와 같이 이원화 체계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 지역의 상황에 따른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 법안을 발의하면서 해당 지역 도민들의 의견을 묻는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데 있다. '중앙 논리'의 일방적 횡포에 다름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치경찰제는 전국 시.도에서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도입돼 15년째 운영되고 있다. 존폐의 문제를 담은 자치경찰제 도입 논의를 하면서, 제주도를 '패싱(passing)'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난 15년의 제주자치경찰은 '실험용'이었단 말인가.

제주도를 한낱 '실험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제주도민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일방적 법안 발의는 없었을 터였다.

지난 6일 열린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자치경찰제 관련 현안보고에서는 격한 성토가 터져나왔다. 

"정부가 시범운영해 달라고 할때는 언제이고, 이제와서 헌신짝처럼 버렸다." 

"제주도와 제주도민이 실험대상이냐. 제주특별법에 외교.국방 외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주겠다고 했는데, 차라리 특별자치도 반납하고 말지 계속 붙들 이유가 없다."

"대통령 지방분권 의지 보이고 있지만 중앙부처나 국회는 권력을 지자체에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격한 발언들은 대부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에서 나왔다. 제주도정의 늑장대응도 질타했다. 

하지만, 이번 상황과 관련해 제주도정이나 지방정가 모두 책임론에서 자유로울수 없을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나 도의원들도 모두 지금까지 '무대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영배 의원은 이번 법안 발의는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당·정·청’ 논의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집권여당 소속의 국회의원이나 도의원들 모두 '당.정.청' 논의 진행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참여하는 논의 과정에서 '제주도'는 없었던 것이다. 

반발여론이 커지자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에서는 국회 법안심사 과정에서 제주 특례 조항을 넣는 등의 방법으로 제주 자치경찰제를 존치시키는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이 또한 늑장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지자체나 도민의견 수렴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자치경찰제 폐지 법안 발의는 분명한 절차적 하자이다. 이런 법안이 발의될 때까지 제주도정과 도의회, 그리고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뭘하고 있었나.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