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오늘]<29>악성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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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29>악성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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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하던 날씨가 슬슬 더워지기 시작한 지난 5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 곳곳에서는 6.2 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간의 거리유세와 선거운동원들의 응원전이 월드컵을 방불케 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재밌어 같이 호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 열광적이기 때문에 시끄럽게 느껴 인상부터 찌푸리는 사람들처럼 아주 대조적인 반응들이 나왔다.

솔직히 말해 나에게는 관심 없는 광경들이다. 그저 4년마다 한번씩 치러지는 행사일 뿐이었다. 내가 임시 두 달 동안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을 하기 전까지는 ...

어느날 내가 활동하고 있는 제주지체장애인협회에 잠시 들렀는데, 아르바이트 형식의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한다. 그냥 내가 하고 있는 수필에나 집중 하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어떤 일인지 들어보기나 하라기에 마지못해 듣다보니 사이버상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각종 부정선거 게시물을 사전에 차단하는 일이란다. 말하자면 건전한 사이버 선거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사이버부정선거감시단'이란다. 듣고 보니 인터넷 상에서 잠깐 본 적 있는 듯 했다.

선관위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2월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이버부정선거감시단'을 모집해 운영 했는데, 선거를 두 달여 정도 남겨 두고 장애인을 대상으로도 3명 정도 모집한다고 하기에 속에 잠재돼 있던 동심이 자극되어 정의로운 일에 일조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하겠다고 했다.

‘웬만한 인터넷 검색 정도는 무난히 해왔는데 별 어려움이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우리가 흔히 하는 스포츠 검색이나 연예, 사건 사고 등을 검색하는 것과는 사뭇 달라 처음에는 생소하고 낯설어 적응하는데 며칠 동안은 힘들어 내가 이일을 왜 하겠다고 했는지 후회도 들었지만 자세하게 설명도 듣고, 관련 책자와 유인물을 읽으면서 조금씩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하는 일은 인터넷으로 여러 언론매체와 예비 후보자들의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에서 공약이나 정책들이 제대로 공표되고 있는지를 검색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순조롭게 출발했으나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후보자 윤곽이 들어나면서부터는 댓글 수가 배로 늘었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처음 하는 일인지라 실수의 연발에 상사들이나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옆에서 꾸준히 도와주고 회식자리에서 가족처럼 대해 주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후보들 간의 단순한 의견 개진에서부터 타 후보에 대한 비방은 물론이고, 선거와는 무관한 사생활문제까지 끄집어 흠집내는 글도 많았다.

이처럼 선거가 과열되다보니 선의의 경쟁, 정책대결을 하자고 방송에서는 연일 외쳐보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그저 거리유세에서나 보는 것과는 달리 사이버 상에서의 악성댓글은 과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댓글을 검색하다 보면 정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로 무의미하게 사이버 상을 도배하는가 하면, 어떤 글은 한글 맞춤법이며 문법을 완전히 무시한 채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글을 쓰는지 자질을 의심할 정도였다.

한동안 유명 연예인들이 악성댓글로 인해 목숨을 끊었다는 우울한 소식들이 많았다. 그때는 ‘도대체 어떤 글로 고통을 받았기에 목숨까지 던져야 하나 무시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하고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그들의 고통스런 심정을 이제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장난삼아 우물에 던진 돌에 개구리는 그 돌에 맞아 죽는다는 말이 여기서 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좁은 모니터를 사이에 둔 공간이지만 네티즌들이 예의와 규범을 잘 지킬 수 있다면 온라인상에서도 웃음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두 달 이라는 기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두 달 이상의 값진 경험이었다.

짧은 시간 같이 일했던 동료들 얼굴이 새록새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헤드라인제주>

이성복 수필가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이성복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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