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오늘] <28> 전화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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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 <28> 전화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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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만큼 모든 것이 시작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올해 내가 맡은 일을 시작부터 크게 실수하고 말았다. 나에겐 다시금 새롭게 시작된 일이라 잘해야 한다는 과욕이 신중하지 못해 실수로 이어진 것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오면 사람들은 송년회다 망년회다 하면서 새해를 맞을 준비로 술잔을 기울이는 모임을 갖는다. 작년 연말에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가 모임시간이 되어 친구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가는데 같이 동승한 한 후배가 약속이 없으면 모임에 같이 가자고 했다. 친구도 모임 회원들이 모르는 얼굴도 아니니 같이 가서 저녁이나 먹자 한다.

별다른 약속이 없는 나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같이 참석했다. 모임의 회원들은 모두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사실 이 모임은 장애인 친구들로 이뤄진 모임으로 나도 3년 전에 모임 창립 멤버로 활동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탈퇴했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만에 회원이 아닌 손님 자격으로 참석했지만 어색함을 달랠 수 있었다. 내가 활동을 중단한 후에도 회원은 그다지 늘어나 있지는 않았다.

한 해를 정리하는 술잔을 함께 기울이며 옛 모임 친구들과 오랜만에 함께 하니 마치 내가 계속해서 모임을 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없이도 계속 이런 분위기로 모임을 이어 온 것에 대한 질투심과 부러움이 교차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한 친구가 술을 한 잔 권하며 나에게 예전처럼 다시 모임에 들어와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이 언제 나오나 기다렸던지라 속으로는 ‘그래 그러자.’하고 외쳤지만 겉으로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생겨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그러지 말고 그냥 다시 들어와라, 오늘 와서 보니까 분위기 좋지 않냐?”며 입회하라고 독촉했다. 못 이기는 척하며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그래 알아서 생각해라.”고 했으면 ‘어쩔 뻔했냐?’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진행되자 현직 총무가 결산보고와 함께 신임 총무를 뽑는다고 한다. 총무 맡을 사람 손들라고 하자 아무도 없다. 그럼 추천하라고 하자 한 녀석이 나를 추천한다. 술잔을 기울이던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모든 회원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애써 시선을 피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모르는 모임도 아니고 3년 동안 활동을 안 한 죄로 한해 총무를 맡아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만장일치로 내가 총무가 되었다.

신임 총무의 인사말로 “좋아, 내가 활동 안 한 죄로 맡겠는데, 다 말아 먹을 거다 각오해라.”하자 “말아먹든 삶아먹든 알아서 해라”하며 한바탕 웃음 바다가 되었다.

원래는 소모임이라 회장은 없고 총무만 내정해 1년에 한 번씩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내가 활동을 안 하는 동안 한 번씩 다 돌았다고 했다.

망설이기도 했지만 ‘몇 년 동안 활동 안한 나를 선뜻 받아주고 잊지 않은 친구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새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하자.’하고 나름 혼자 들뜬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곤 다음 날부터 전직 총무로부터 장부를 받아 보니 재정상태는 제로였고 장부 정리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 나름 뽐낸답시고 컴퓨터로 장부를 만들어 프린트하고 첫 모임을 준비했다.

그런데 첫 모임부터 실수하고 말았다. 모임 며칠 전에 모임 장소를 정하고 회원들간 시간 조율을 해 문자메시지로 알려주고, 모임 시간이 되어 모임 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회원들에게서 늦는다거나 알았다는 답신이 오는데, 뭔가 내 머릿속을 띵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내가 문자 메시지를 한꺼번에 보내다 보니 전직 총무에게만 장소와 시간의 메시지를 못 보낸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연락을 취했지만 통화가 되질 않아서 마음이 쿵쾅 거렸다. 정말 미안하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괜히 총무를 맡아서 이게 뭐냐?’하며 계속 통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전직 총무를 데리고 온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얼굴조차 제대로 못 쳐다보고 미안하다고 하자 “안 오젠 허당 와수다예 무사 나만 똘라불젠 해수꽈.”하며 웃으며 다음부터 잘하라며 오히려 나를 다독거렸다.

다행히도 내가 총무직을 맡은 첫 모임에 회원 전원이 참석했고 모임은 순조롭게 끝낼 수 있었다.

소모임이지만 내게는 중책인 총무직을 맡아 새해 첫 시작을 하는 자리인데 하찮은 실수로 첫 모임을 망쳐버리고 나를 믿어준 친구들에게도 신임을 잃을 뻔한 아찔한 하루였다.

이 일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올해는 불혹이라는 나이에 접어 든 만큼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한 해를 보내기를 다짐해 본다. <헤드라인제주>

 

이성복 수필가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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