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오늘]<22>경쟁심
상태바
[이성복의 오늘]<22>경쟁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던 중 잊어버리고 살던 친구로 부터 너무나도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지나친 경쟁심으로 인해 잃었던 친구였다.

집 전화라 발신번호도 확인 못하고 연락처도 물어보기 전에 내 안부만 묻고는 다시 전화한다며 끊어버렸다.

사람의 내면에는 누구에게나 지고 싶지 않은 경쟁심을 갖고 있다. 세상에 나오기 전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기 위해 모체의 뱃속에서 부터 태아로 자리 잡으려 수 천 만분의 일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심은 서로간의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지나치면 아주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친한 사이일수록 서로 신중했어야 했는데, 친구와의 경쟁심 때문에 친한 친구 한 명을 잃고 말았다.

내가 20대 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국가에서 시행하는 공공근로를 신청하고 컴퓨터 업무를 주로 하는 한 회사에 8개월 계약을 하고 근무를 하던 중 나보다 한 달여 정도 늦게 입사를 한 장애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역시 나와 같은 공공근로로 계약직으로 입사한 것이다. 내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같은 계약직으로 들어온 직원들의 나이며 전직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상당수라 서로가 가까워지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나도 원래 내성적이었지만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 잘 못하는 술자리나 회식등 각종 모임에 참석하며 노력하다 보니 동료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적응하는데 그 장애인 친구는 너무 내성적이라 동료들 모임이나 회식에 동료들의 권유로 마지못해 참석해서도 혼자 구석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않고 없이 조용히 있다 가곤 했다.

보다 못한 내가 어느 날 슬쩍 다가가 커피 한잔과 함께 말을 건네자 깜짝 놀라며 어색한 표정으로 반기는 것이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참살이라 학교는 우리 또래랑 같이 다녔단다. 그래서 앞으로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매일 내가 먼저 다가가 말도 걸고 장난도 치다 보니 서서히 자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워낙 사람을 가리는 편이라 둘만 만나서 소주 한 잔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형제들은 없고, 달랑 혼자인 외아들인데, 자기를 그렇게 아껴주셨던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성격은 내성적이었지만 고학력에 일도 잘하고 참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자존심 또한 무척 강했다. 남한테 지고 못사는 성격이란다.

그날 이후 우린 점점 가깝게 지냈고, 쉬는 날이면 만나서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으며 둘이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집으로 초대해서 가보니 방에 책이 어마어마하게 진열이 되어 있었다. 무슨 책이 이렇게 많냐고 물었더니 어려서부터 다 읽은 책이란다. 어머님을 여의고 친구없이 책과 함께 지내왔단다. 또 책장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자기가 나름 써온 글이라며 시, 수필, 심지어 소설까지 많은 글을 보여주었다. 읽어보니 거의 작가 수준의 좋은 내용들이었다.

내 취미도 독서와 글 쓰는 것이라고 하니까 잘 됐다며 같이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와 만날 때마다 서점에 들러 각자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골라 읽으며 서로의 감상평을 주고 받으며, 점점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생길 즈음 어느 순간순간 나를 견제하는 듯한 행동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나만의 오해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자꾸 책을 구입하고 읽을 때면 누가 빨리 읽나 내기를 하자고 하지 않나 읽고 나서 서로의 평을 얘기하다보면 처음과는 달리 그 정도 밖에 평을 못하냐며 약간의 비아냥을 하곤 했다.

또한 글을 써서 서로가 바꿔 읽고 난 후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평가를 했지만 난 좋은 지적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데 뭔가 하나의 일을 같이 하게 되면 무조건 경쟁 하자는 것이다. 친구끼리 누가 잘 하는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싫다고 하면 그렇게 자신감이 없냐며 자꾸 나를 자극시켰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심 때문에 나 또한 내 몸 속에 내재돼 있는 경쟁심이 발동됐다. 그리고는 그 친구에게 모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응모 하니 너랑 나랑 같이 해서 한번 결과를 보자고 제안했다. 친구는 자신감이 넘치듯 흔쾌히 승낙하고는 서로가 글을 써서 응모했다.

결과는 내가 가작으로 당선이 되었고, 그 친구는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이겼지. 다음부터 우리 친구끼리 누가 잘하는지 경쟁하지 말자”하고 전화를 했더니 아무런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자존심이 무척 강했던 친구였기에 다음 날 회사에서 봤는데도 어색함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좀 나아질 때까지 그냥 두기로 하고 내버려 뒀는데, 다음 날 돌연 회사를 그만 두어 버렸다. 그리곤 연락을 계속해 봤지만 연락이 되질 않았고 나를 피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서로에게 소홀하게 되었고, 어느 날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더니 미안하다며 조용히 지내고 싶으니 연락하지 말란다.

새롭게 만나 마음을 터놓는 둘도 없는 친구였기에 지나친 경쟁심이 불러온 친구와의 불화는 지금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로 남아있다.

 

이성복 수필가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이성복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Lovie 2012-01-27 04:17:28 | 166.***.***.159
You really saved my skin with this ifnoramtion.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