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퇴진', 내리지 못한 '저항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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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퇴진', 내리지 못한 '저항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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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 강호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연구지원실장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문학적 감수성과 표현력도 부족했기에 속 깊은 시인의 뜻이야 알 길이 없었다.  대신 ‘깃발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으로 상징된다’는 참고서의 해석을 달달 외웠던 적이 있다. 그것도 모자라 싯구 밑에다 해석을 써놓는 수준이었다.

대학시절엔 문예일꾼들의 ‘깃발춤’에 매력을 느낀 적이 많다. 학과공부는 뒷전이고 주로 활자와 씨름하는 일을 했던 대학시절 ‘깃발들’의 몸짓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까지는 못가도 활자와의 전투에서 이겨내는 촉매제는 됐다.

4.3항쟁주간이 되면 길거리에 내걸린 홍보깃발도 유심히 관찰했다. 진보적 문화운동단체라는 제주민예총에서 과연 올해는 4.3에다 ‘무슨 의미를 담았을까’ 열심히 살펴보곤 했다.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58주년 깃발이 맘에 들었다.

다시 제주도시 곳곳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이번 주 초부터 거리에서 나부끼고 있다. 무슨 축제가 열리는가 살펴봤다.

제주도의 공식기(旗)가 교체된 모양이다. 40년 만에 바뀐 ‘제주특별자치도기’란다. 제주도의 새로운 상징이란다. 요란한 행사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몰랐다. 도청을 지나다 자세히 보니 내려진 깃발 대신 새로운 깃발이 ‘영어’ 표기였다. 태극기와 나란히 올려진 제주특별자치도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셨던 모자의 로고가 선명해 정겹기까지했던 새마을 깃발이 내려간 자리에는 아태 정상회담 깃발도 펄럭거리고 있다.

난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해 영어를 못한다. 하지만 그 기준은 애매모호하나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도정답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영어공용화’가 제주의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을 ‘깃발’에라도 표현하고자 했나 싶었다.

‘Hi Seoul', 'Happy Suwon'도 한다는데 ’제주어‘로 ‘놈들도 다 영어 썸신디게’라며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다.

김태환 지사께서는 22일 공식 ‘깃발’ 교체식에서 "제주도민 모두의 가슴에도 새로운 제주특별자치도기가 희망의 깃발로 펄럭이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특별자치도 다운 특별자치도 창조를 향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도청을 다시 지나가다 ‘이정표’까지는 그렇고 ‘지사님 말씀’처럼 희망의 깃발로 펄럭거리면 좋겠다는 마음도 잠시지만 가져봤다.

#내리지 못한 저항의 깃발

그런데 도지사의 의도와는 달리 희망 대신 저항의 깃발을 여전히 펄럭이는 사람들이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퇴진 김태환’ 깃발을 펄럭이며 집회도 한다.

강정마을회관에 가보면 입구에 ‘퇴진 김태환’이라는 구호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21일 집회에도 여전히 해군기지 철회 깃발과 함께 새로운 ‘제주특별자치도기’가 게양될 도청 앞에서 그 깃발은 여전히 힘차게 나부꼈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강정주민들의 외침처럼 퇴진 깃발은 아직 내려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도지사로서는 퇴진 깃발에 대해 기분이 좋을리는 없을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해에는 ‘퇴진 김태환’ 깃발만 내리면 도청 앞 천막도 허용해주겠다고 했던 고위 관료도 있긴 했다. ‘지사님께서 천막 방문하실 때만이라도 ‘퇴진' 현수막을 내려달라’고 읍소했던 참모도 있었다.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도청을 항의 방문할 때면 대문 꼭꼭 걸어 잠구던 참모였다.

합법적으로 1인 시위에 나섰던 주민들의 퇴진 깃발을 불법적으로 철거하려던 불량 공무원도 있었다. 퇴진 현수막 제작 업체를 추적하는 충성스러운 공무원들도 있었다. ‘퇴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홍보물 제작업체까지 수배하는 한심한 공무원들도 있었다.

영리병원, 영리학교 하겠다는 도정이 풀뿌리 지역 경제주체인 중소자영업자들의 영리행위, 즉 영업의 자유를 방해하는 행위인 셈이다.

#퇴진 김태환 깃발을 내리고 싶다면

‘퇴진’이라는 단어는 매우 정치적이다. 정치적 반대세력들이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저항의 뜻을 담기도 한다. ‘명박 퇴진’이야 지난해 거리에서 많이 들어봤다. 정치적 반대세력의 구호가 아니었다. 대부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쓴 표현이다.

강정주민들 역시 김태환 도정의 정치적 저항세력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강동균 마을회장께서는 어느 집회에서인가 “지난 선거 때 김태환 지사를 찍은 손을 자르고 싶다”고 까지 했다. 실제 2006년 도지사 선거결과를 봐도 강정지역을 포함한 선거구에서 표가 적지 않게 나왔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돌아보니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태환 지사의 정치적 반대세력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2006년 선거에서 김태환 후보를 지지한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없다. 그러나 주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물어보면 김태환 후보를 지지한 사람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후보보다는 많았다.

군사기지대책위 시절에는 군사기지 논의를 유보해 달라는 김태환 지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찬반 논의기구를 만들자고 해서 동의하면서 공동으로 군사기지 문제를 논의한 적도 있다. 아직도 강정주민들이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2년 넘게 ‘도지사 퇴진 깃발’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를 도지사만 모르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요구이다. 민주주의 하자는 것이다. 탈도 낳고 허점도 많은 여론조사로 강정마을을 해군기지로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도지사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도나 낮으니 도지사 물러나라고 하면 할 것인가?

도지사에는 고작 4년 임기가 걸린 문제지만 강정주민들에게는 100년, 아닌 1000년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같은 논리다. 다시 공정하게 주민투표해서 강정마을 주민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물어달라는 내용일 뿐 이다. 찬성이 단 1%라도 많으면 반대대책위원회도 해산하겠다는 의사표명까지 하고 있다. 왜 국방부와 해군에는 희망을 주면서 강정주민들에게는 희망을 주지 못하는가?  주민들이 뽑아준 도지사 아닌가?

강정마을에 퇴진 깃발과 구호가 하루 빨리 내려지고 사라지기를 희망한다. 더 이상 도청 앞에서 ‘퇴진 김태환’ 깃발과 ‘특별자치도’ 깃발이 지는 해에 겹쳐지면서 엇갈리는 장면을 보보 싶지는 않다.

집회 때 전기선 안 뽑아줘도 좋다. 그것 대신 다시 뽑고 싶은 도지사로 돌아오길 바란다. 제주도민 모두의 가슴에 새로운 제주특별자치도기가 희망의 깃발로 펄럭이게 되기를 기대한다면 말이다.<헤드라인제주>

<강호진 사단법인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연구지원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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